최 소피아 수녀

수행자로 살면서 다른 종교 수도자이지만, 헌신적인 봉사행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 자체에 큰 감동을 받은 이가 있다. 바로 최 소피아 수녀이다.

연락이 끊긴 지가 오래돼,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쯤 80세가 넘었을 것이다.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상노인이겠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3년 전까지 마산 진동에서 ‘술꾼,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병환이 깊어 포항의 천주교 요양원에서 힘들게 지낸다고 들었다. 최 소피아 수녀는 원래 1989년 대구 교동시장 입구에 무료급식소를 차렸다. 그녀가 6·25전쟁 때 고향에서 거지들에게 된장과 고추장을 퍼주다 모친에게 야단을 맞았듯이 급식소 일을 시작할 때도 포항예수성심시녀회에서는 “불쌍하다고 어떻게 다 도와준다 말이오”라고 꾸중했다고 한다.

소피아 수녀가 속한 예수성심시녀회의 총원은 대구에 있다. 원래는 1935년 영천서 시작해 1950년 포항으로 갔다가 1992년 대구 남구로 옮겼다. 이곳은 ‘주님 손안의 연장’이 되기를 맹세하고 믿음과 겸손으로 기다리는 시녀가 되는 것이 기본 철학이라고 한다. 나는 소피아 수녀를 볼 때마다 ‘시녀’라기보다는 ‘남자 시종’의 느낌을 받았다. 남자 같은 외모와 투박한 말씨, 호탕한 웃음도 그렇지만 그녀는 정말 박력 있고 진취적인 삶을 살았다.

내가 최 소피아 수녀를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5월 24일이었다. 당시 내가 지도법사를 맡고 있던 대구 진여원 포교당 청년회 회원들과 함께 천주교서 운영하는 대구시립희망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부처님오신날인 11일 청년회에서 불우이웃돕기 가두 모금 운동으로 모은 40만원으로 건빵, 칫솔치약, 비누 등 생필품을 마련해 희망원 원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대구시립희망원은 걸인과 정신이상자, 무의탁 지체부자유자 등을 수용하는 복지시설로 1980년 4월 대구시로부터 천주교 대구교구가 운영권을 넘겨받아 운영해 오고 있었다.

최 소피아 수녀는 희망원 개원 이래 스님의 방문은 처음이라면서 내 손을 부여 잡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 자리에서 최 수녀는 “천주교나 불교는 사랑을 실천하는 근본정신에는 똑같다”면서 종교나 교리를 떠나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힘들게 사는 어려운 이웃들을 구제하는데 힘을 합하자고 말했다. 나도 최 수녀에게 “사랑과 나눔의 미덕을 몸소 실천해 보이시는 수녀님께 그 정신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최 수녀는 그다지 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당시 750여 원생을 수용한 대구시립희망원은 마더 테레사 수녀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한국서 가장 불행한 데서 하루를 보내겠다며 선택해 첫날밤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테레사 수녀는 그곳을 떠나면서 “한국에도 성녀가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형제처럼 보살피는 최 소피아 수녀가 바로 성녀다”라고 말할 정도로 정말 내가 본 최 수녀는 성녀 그 자체였다. 실제로 최 수녀의 팔과 다리는 온통 상처 투성이었다. 주사를 놓거나 치료를 하려 할 때 환자들이 위해를 가해 생긴 상처들이었다. 그간의 노고와 애환은 몸에 난 상처들이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한번은 최수녀가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 주었다. 어떤 정신 질환자가 “어떤 사람이 진정한 성녀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갑작스런 질문에 최 수녀가 당황해서 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자신이 대답하겠다면서 일어서더니 최 수녀를 향해 “당신은 사기꾼이다. 사탕을 갖다준 신도들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진짜 성녀다”라고 했다고 한다. 최 수녀는 원생이 자신에게 사기꾼이라고 이야기 했다는 말도 숨김없이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나는 그 당시 그 얘기를 들으면서 최 수녀의 수행자로서 솔직하고 올곧은 기품을 물씬 느꼈다. 남이 하기 어려운 선행을 실천하면서도 나태와 자만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정상치 못한 원생들 말 한마디에도 자극받고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최 수녀의 모습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그 경지까지 오르기 위해 얼마나 인내하면서 오랜 수련을 했을까 하는 마음에 존경심이 들었다.

그런 최 수녀의 행동과 마음에 깊이 감화 받아 나도 원생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1달에 한 번씩 설법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열심히 방문했다. 하지만 천주교가 운영하는 곳이라 불교적 포교 활동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이렇듯 최 수녀는 산전수전을 겪는 동안 수행의 도가 점점 높아져 예수 성심의 사랑을 전하는 수녀로부터 소외당한 이들을 섬기는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소피아 수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의 마음은 변해있었다. 그렇게나 밉던 주정뱅이들이 어느덧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최 수녀를 보면서 드러내지 않고 희생과 봉사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도 깨닫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최 수녀의 숭고한 봉사 정신을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 내보니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기억속에서나마 다시 천사를 만났기 때문이다. 예쁘지도 젊지도 않은 천사. 살결도 뽀얗지 않고 검고 쭈글쭈글한 천사. 하지만 살아있는 진짜 우리들의 천사였다.

박삼중 스님(사진 왼쪽)이 최 소피아 수녀에게 ‘진인사 대천명’이란 서예작품을 선물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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