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약사여래 바라보는 도량 / 원효·의상·도선·진각 ‘四聖’ 머물러
동방 약사여래 바라보는 도량 / 원효·의상·도선·진각 ‘四聖’ 머물러
  • 박재완 기자
  • 승인 2019.04.20 0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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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전남 구례 사성암(四聖庵)

 

해발 530m 기암절벽 유리광전
원효 스님 손톱으로 마애불 새겨
도선 스님 풍수철학 완성한 곳
신라부터 고려까지 선지식 수행처

 

중생은 아프다. 아프니까 중생이다. 아픈 중생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그 아픔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으로 이야기하면, 성불하여 정토에 나는 것이다. 하지만 중생에게 성불과 정토는 어려운 문제다. 정토를 구현하기 위한 성불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그것이 중생에게는 쉽지 않은 일대사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 쉽지 않은 길에는 여래가 한 분 계시다. 약사여래다. 동방의 정유리세계에 계시는 약사유리광여래다. 모든 여래가 중생을 위해 존재하지만 특히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과 재앙을 걱정하는 여래다. 약사여래의 가피를 입는다면 정토로 가는 길이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을까. 질병과 재앙으로 시작되는 번뇌만큼은 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길을 시작할 수 있는 도량이 있다. 동방의 약사여래가 바라보고 있는 도량, 전남 구례 사성암이다.

선지식의 도량, 원효ㆍ의상ㆍ도선ㆍ진각
해발 530m의 오산. 그 꼭대기에 사성암이 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사성암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지그재그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이다. 길마다 봄 햇살이 가득하다. 산은 이제 서서히 꽃들을 물리고 꽃잎이 지나간 자리엔 초록의 새순이 돋고 있다. ‘남쪽’의 봄은 꽃이 한창인 ‘위쪽’의 봄과 달랐다. 같은 계절 속에서 다른 풍경을 만난다. ‘시간’과 ‘시절’이 다르고 ‘시절’과 ‘세월’이 또 다르고 ‘세월’과 ‘계절’이 또 다른 것이었다.

부처님오신날을 알리는 오색연등이 줄지어 보이기 시작한다. 도량에 가까워졌음이다. 연등의 도열 끝에서 마침내 길은 끝나고 하늘이 열린다. 그리고 그 하늘 밑으로 기막힌 암벽과 기막힌 법당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법당과 함께 산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사성암이다.

사성암에 오르면 구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첩첩 봉우리들과 섬진강의 반짝이는 물길이 절경이다. 구례 10경 중 하나인 사성암은 544년(백제 성왕 22년) 연기 스님이 ‘오산암’으로 문을 열었고, 이후 원효ㆍ의상ㆍ도선ㆍ진각 네 분의 스님이 머문 후 도량의 현판이 ‘사성암’으로 바뀐다. 어느 도량이나 선지식의 흔적은 있기 마련이지만 사성암의 내력은 그 이야기의 행간에 진한 선지식의 법향이 흐른다. 오십삼선지식을 모신 또 하나의 법당 ‘오십삼불전(五十三佛殿)’도 그 행간의 큰 어미 중 하나일 것이다. 법당엔 현재 서른 세분의 선지식만이 남아있다.

원감국사 <문집>은 “사성암이 있는 오산 정상에는 참선하기 알맞은 바위가 있는데 이들 바위는 도선과 진각 스님이 연좌수도 했던 곳이다”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볼 때, 사성암은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까지 많은 선지식이 참선을 위해 머물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도선국사는 이곳 사성암에서 자신의 풍수철학을 완성했다. 스님이 정립한 풍수철학은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한국 풍수철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우리 풍수철학의 큰 그늘인 도선 스님은 매일 이곳에서 선정에 들었다. 도선 스님이 찾아내고 머물렀다면 그 자리의 의미는 다름 아닌 ‘여법한 자리’일 것이다. 산왕전 옆에 도선 스님이 참선수행했다는 ‘도선굴’이 있다.

선지식의 눈은 한가지였을까. 원효 스님 역시 이 자리에 진한 흔적을 남겼다. 스님은 기암절벽에 마애불을 남겼다. 사성암 마애약사여래(전남유형문화재 제220호)다. 이렇듯 사성암엔 한 시대의 스승이었던 선지식들의 발자국이 곳곳에 남아있다.

아픈 중생을 위한 도량
약사여래가 머무는 동방의 정유리세계를 비롯해 모든 정토는 당장의 중생에게는 보이지 않는 머나 먼 세상이다. 하지만 그 먼 곳으로 가는 길은 늘 우리 곁에 있어왔고, 지금도 수없이 많다. 불법(佛法)을 늘 가까이 두고 산다면 그 길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며, 그 길에 들어서는 순간이 정토로 가는 길의 시작일 것이다.

오산 꼭대기에 자리한 사성암은 약사여래를 모신 도량이다. 모셨다기보다는 약사여래가 다가와 머문 도량이다. 사성암의 본당인 유리광전의 약사여래는 마애불이다. 위에서 말한 원효 스님이 남긴 흔적이다. 원효 스님은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바위에 약사여래를 새겼다고 전해온다. 전설의 시비는 중요하지 않다. 마애불의 실존이라는 중요한 사실이 우리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존에는 적어도 육안이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세월’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시비를 떠난 일인 것이다. 한 손에 약사발을 들고 중생의 아픔을 걱정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눈앞에 서면 더욱 ‘시비’라는 얄팍한 경계는 쓸모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마애불’이라는 불사는 불모를 통해 조성한 불상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의미가 있다. 불가적 인연법에서 바라보면 ‘마애불’은 ‘조성’보다는 ‘인연’이라는 말에 끌린다. ‘모셨다’는 말보다는 ‘찾아냈다’는 말이 왠지 더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니 마애약사여래가 머물고 있는 사성암은 약사여래를 모신 것이 아니라 약사여래가 터를 잡은 것이다. 원효 스님이 약사여래를 찾아낸 것이다. 더구나 사성암의 유리광전은 마애약사여래로 비롯된 불사이기에 마애불의 의미는 더욱 그쪽으로 끌린다.

기암절벽에 붙어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사성암 유리광전은 20여 년 전 진실 스님이 마애약사여래의 인연에 인연을 이은 불사로, 마애불의 전설만큼 그 실존이 불가적 인연으로 다가오는 불사다. 도저히 일반적이지 않은 불사다. 동방의 약사여래를 모시겠다는 일념의 불사다.

유리광전 중수가 한창이다. 인연에 인연이 이어진 불사는 또 한 번의 불사를 이어가고 있다. 세월을 따라간 단청과 오늘에 필요한 불단을 위해 유리광전은 붓질과 손질이 한창이다. 마애약사여래의 자리도 넓혔다.

“이 자리는 아픈 중생을 걱정한 약사여래가 멀리 동방에서 바라본 곳입니다. 그 옛날, 사성의 이름으로 남은 선지식의 시절을 포함해 오랜 세월 아픈 중생의 의지처였던 도량입니다. 원효 스님의 표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붓질을 하고 손질을 하는 것은 더 많은 대중을 위한 것입니다. 약사여래의 가피를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처음 법당이 섰던 날의 공덕인연을 이어받은 소임자로서 공덕을 잇는 것입니다.”

1년여 전 부임한 주지 대진 스님은 사성암이 약사도량으로서 더욱 많은 대중의 발걸음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대진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사성암은 각 법당에서 철야기도를 올리고 있다. 관광사찰이 아닌 진정한 기도처로서 도량을 찾은 대중이 기도공덕의 가피를 받고, 그 공덕이 다시 기도불사로 회향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약사여래를 부르며
오산 기암절벽에서 원효 스님이 찾아낸 약사여래는 동방의 정유리세계에 머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모든 재앙을 소멸시키며, 부처님의 원만행을 닦아 무상보리의 묘과를 증득하게 하는 부처님이다. 약사여래는 왼손에 약병을 들고 오른손으로 시무외인의 수인을 보이기도 하고, 왼손에 약그릇 또는 무가보(無價寶)를 들고 오른손으로 삼계인의 수인을 보이기도 한다. 약사여래는 과거세에서 약왕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한 12가지 대원을 세웠다. 그 대원의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고 중생을 고통 속에서 구제할 수 있게 되었다.

선덕여왕이 병에 걸려 의약이 무력하자 밀본법사는 여왕의 침전 밖에서 <약사경>을 염송해 여왕의 병을 낫게 했다. 고려시대에도 개인의 평안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위기가 닥칠 때마다 약사도량은 늘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약사여래의 명호를 부르고 그의 가호를 간절히 바라며 기근과 전란 등 힘들고 아픈 시간을 지나왔다.

중생이 아프지 않았을 때가 있었던가. ‘오늘’이라는 시간은 늘 힘든 시간이었다. 중수불사로 인해 유리광전의 약사여래를 볼 수 없어 아쉬워하는 불자들이 법당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약사여래의 명호를 가슴으로 부른다.

오십삼선지식을 모신 사성암 오십삼불전. 현재는 33불만 남아 있다.
오십삼선지식을 모신 사성암 오십삼불전. 현재는 33불만 남아 있다.
원효 스님이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새겼다는 사성암 마애약사여래입상.
원효 스님이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새겼다는 사성암 마애약사여래입상.
산왕전 기둥옆 작은 공간이 도선 스님이 수행했던 ‘도선굴’이다.
산왕전 기둥옆 작은 공간이 도선 스님이 수행했던 ‘도선굴’이다.

 

사성암으로 가는 길
해발 531m 오산, 정상의 사성암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굽은 길이다. 걸어서 가기에는 다소 힘겨운 길이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절 앞에까지 자동차 진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차장이 작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사성암 마을버스 매표소’에서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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