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인과응보(因果應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선악에 대한 결과는 반드시 받게 된다’는 뜻이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따르고’, 반대로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따른다’고 하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와 같은 뜻이다. 주로 선행보다는 악행을 했을 때, 죗값을 치른다는 개념으로 쓰이는 사자성어다.

인과응보, 선인선과, 악인악과는 불교경전에 가장 많이 나오는 명구이다. 그래서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들릴 수도 있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지겹도록 듣던 말이기도 하고 절이나 교회, 성당 등에서도 가장 많이 가르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인과응보 같은 말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에게나 하는 말이라고 폄하하는 이도 있다.

조과선사(鳥洲禪師, 741~824)와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백낙천(白樂天, 772-846)과의 일화가 있다.

백낙천은 이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가 항주 자사(도지사)로 부임했는데, 마침 근처에 조과선사라는 고승이 있었다. 하루는 백락천이 조과선사를 찾아가서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좋은 말씀을 부탁했다. 좌우명이라면 누구보다도 지식의 백과사전인 백낙천이 더 많이 알고 있을 터였다. 조과선사는 다음과 같은 한 구의 게송을 써주었다.

“악을 짓지 말고, 착한 일을 행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오(諸惡莫作 衆善奉行(……) 是諸佛敎)”

“기거야 세 살 먹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말이 아닙니까?”

백낙천은 실망했다. 너무나도 흔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삼척동자도 알지만 팔십 노인도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오.”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법. 백낙천은 그제야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고 큰 절을 했다고 한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잘 모르고 살아간다. 무엇이 바른 것이고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의(義)이고 불의인지, 그리고 무엇이 공(公)이고 사(私)인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거의 없고 하루하루 밥이나 먹고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치열한 경쟁구조,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남에게 주는 피해쯤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매일 같이 아우성이다.

우리는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남의 행복도 중요시해야 하는데, 남의 행복은 관심 밖이다.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가까운 친인척이나 친구 돈도 떼먹는다. 사기를 치고 공익을 도외시하고 사욕을 챙기는 등 부정한 짓을 한다. 윤리 도덕(Morality), 도덕적 해이(道德的解弛, Moral Hazard)가 제로 수준에 가깝다. 도덕성과 비도덕성에 대한 인식이나 구분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과응보, 선악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부메랑(Boomerang)’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했는데, 나쁜 결과가 되어 되돌아오다’ 또는 ‘어떤 정책을 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났다’ 등의 뜻이다.

부메랑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사냥이나 전쟁을 할 때 쓰는 굽은 막대 모양의 무기라고 한다. 무기의 일종으로 힘껏 던져서 목표물에 맞으면 되돌아오지 않지만, 맞지 않을 경우에는 자기에게로 되돌아오는 특성을 갖고 있는 신기한 무기 겸 장난감이다. 던진 사람에게로 되돌아오는 관성을 지닌 부메랑의 법칙은 곧 인과응보의 이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콩 심으면 콩이 나오고 팥 심으면 팥 나온다’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오게 되고, 악한 짓,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이다.

또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되돌아간다(出乎爾, 反乎爾)’는 말도 있는데, 매우 좋은 말이다. 작은 악, 대수롭지 않은 악이라도 반복하다보면 큰 악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그 악은 부메랑이 되어 그 사람의 인생을 늪으로, 구렁텅이로 몰고 간다. 자승자박. 결국 죽어야 끝나게 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