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믿음 편 15

사찰에 가면 사자 등을 타고 있는 동자의 형상이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문수보살이다. 오래 전 문수보살을 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그렸으며,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다 철학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을 읽고서 나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을 낙타와 사자, 어린 아이 세 단계로 구분하였다. 먼저 낙타는 기존의 관념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는 정신을 상징한다. 인간이 낙타 등에 짐을 실으면 순순히 길을 가는 상황에 빗댄 것이다. 반면 사자는 낙타처럼 ‘너는 해야 한다(You should).’는 정신이 아니라 ‘나는 하고자 한다(I will).’는 자유의지를 상징한다. 그리고 사자보다 위대한 정신은 놀랍게도 어린 아이다. 니체는 어린 아이가 약해보이지만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I am)에서 ‘신’으로 상징되는 낡은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힘을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니체가 가장 높이 평가한 어린 아이가 사자 등에 타고서 해맑게 웃고 있다. 어른이라면 사자가 무서워서 도망갈 텐데, 문수동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솔직함과 당당함이다. 어린 아이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어른처럼 눈치를 보지 않고 솔직하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문수보살을 동자로 표현한 이유와 의미를 나는 여기에서 찾고 싶다.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서 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를 줄인 말이다. 범어로는 만주슈리(Manjushri)인데, 만주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 길상(吉祥)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문수는 지혜가 훌륭하고 복덕을 지닌 보살이라는 의미다. 사찰 대웅전에서는 석가모니불 좌측에, 대적광전에서는 비로자나불 좌측에 모셔져 있다. 문수신앙이 강한 도량에는 문수전이 따로 있기도 하다.

지혜의 상징답게 문수보살에 대한 신앙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경전은 <화엄경>이다. <화엄경>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에는 문수보살이 동북방의 청량산(淸凉山)에서 1만의 권속을 거느리고 항상 설법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청량산은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알려진 중국 산시성(山西省)의 오대산(五臺山)이다. 신라 때 화엄종 승려들이 중국으로 공부하러 가면 제일 먼저 참배했던 곳이기도 하다. 오대산은 보현보살의 상주처인 아미산(峨眉山),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과 함께 중국의 3대 영산으로 꼽히고 있다.

문수신앙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인물은 신라의 자장율사(慈藏律師)다. 그는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를 하고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그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강원도 오대산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건립하여 이곳을 문수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이곳 오대산에 오만의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신앙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데, 이는 곧 이 땅이 지혜의 터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문수신앙은 관음이나 미타신앙에 비해 그리 유행하지 않았다. 지혜를 중시하는 불교와 잘 어울리는 신앙인데 왜 그런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관음이나 미타신앙에 비해 기복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 불교가 그만큼 기복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문수신앙이 성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붓다나 훌륭한 승려들의 법문을 사자후(獅子吼), 그분들이 앉는 좌석을 사자좌(獅子座)라고 한다. 사자루, 사자암과 같은 전각이나 암자도 많다. 모두 지혜를 상징하고 있다. 지혜를 상징하는 색은 푸른색이다. 문수보살이 청색 옷을 입고 푸른빛을 띠는 사자 위에 타고서 한 편의 멋진 시를 전해준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지혜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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