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산골에서 머물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상수도가 고장 났다. 나는 집 근처의 절에서 들통 두 개로 물을 길어와 한 통은 데워 온수로, 또 한 통은 냉수로 세수, 머리 감기, 걸레를 세탁하고도 물이 남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남아 있는 물을 바라보며 작은 들통 두 개의 물로도 가능한 일이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 앞에 조금은 놀랐었다.
그러나 도시로 돌아오고 나는 들통에 물을 받아서 쓰는 행위와는 아주 멀어져 버렸다. 가끔 운동화나 작은 빨래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세면기의 수도꼭지나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사용한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탕에 물을 받아 놓고 목욕을 했다. 목욕을 위해 욕조 가득 채워진 물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는 일은 마음에서 미뤄두었다.
이제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고 탕 목욕의 횟수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샤워나 목욕으로 소비하는 물의 양은 만만찮다. 절수용 샤워기를 사용하고 변기에 1.2㎖ 페트병에 물을 채워 넣어두는 등의 작은 실천들은 계속 이어오고 있지만 샤워나 목욕으로 흘려보내는 많은 물에는 속수무책이다. 우리나라 물 소비량 세계 1위의 기록에 내가 한몫을 하는 건 아닌가 싶어질 때면 수도가 고장 났던 시골에서의 어느 날을 떠올려 보게 된다.
지구 한편에서는 마실 물이 턱 없이 모자란다. 누군가에겐 식수인 물로 샤워를 한다고 생각하니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습관이 된 샤워를 멈추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주 재미있는 실천 방법이 있다.
샤워할 때 소변을 보는 것이다. 샤워 중 소변은 아주 개인적인 행동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지구를 위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1만 5천명의 사람이 하루에 한 번씩 샤워 중에 소변을 본다면 ‘올림픽용 수영장 26개’를 가득 채울 만큼의 물을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브라질의 환경단체인 SOS마타아틀란티카는 ‘샤워 중 소변보기’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또 우리가 샤워나 목욕 횟수를 줄인다면 물을 데우는데 사용하는 전기를 아낄 수 있다. 200ml의 목욕물을 데우는 전기로는 천막교실에서 100촉짜리 백열전구 하나를 70시간 밝힐 수 있다. 내가 별도로 나눔을 하지 않더라도 단지 샤워 시간을 줄이고, 목욕 횟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이웃들에게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길이 된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는 매일 샤워하는 습관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추세는 프랑스, 호주, 멕시코 등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중이라니 다행스런 일이다. 일주일에 매일 샤워하던 사람이 샤워 횟수를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이면 물 사용량이 4분의 1 가량으로 줄어든다.
초여름이 다가온다. 시원한 샤워가 더욱 생각나는 계절, 우리의 샤워 시간을 단 1분만이라도 줄인다면 샤워를 할 때마다 마실 물이 없는 지구 저편을 생각하는 공생, 공용의 태도와 품격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