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담긴 진리를 바라보라
자연에 담긴 진리를 바라보라
  • 김원숙 미학자
  • 승인 2019.04.1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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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과 바닷가의 수도승
〈바닷가의 수도승 Der Monch am Meer〉, 110x172cm, 1808-10과 〈참나무 숲 속의 수도원 Abtei im Eichwald〉, 1110x172cm, 1809-10

광대무변 우주와 인간의 왜소함
텅빈 여백 속의 확장성 묘사
바다 바라보는 향일암과 동일해

세상의 사물들은 저마다의 존재방식을 가진다. 동백꽃이 질 때는 꽃송이 채 느닷없이 툭 떨어진다. 동백은 꽃잎 하나하나가 일일이 바람에 흩날리며 지는 여느 꽃나무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가는 봄날의 아쉬움을 더한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향일암 가는 길을 서둘렀으나 구름과 안개가 짙어 아침 해는 보지 못했고, 바위 여기저기에 떨어진 동백꽃들만 붉었다.

해돋이가 아름다운 바닷가 바위산 조그만 암자인 향일암. 옛 책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원효대사가 ‘원통암’이라는 암자를 이 자리에 세웠다. 이후 임진왜란에 불타서 없어진 것을 조선 숙종 때 인목대사가 다시 지으면서 ‘해를 바라보는 암자’라는 뜻으로 ‘향일암’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비옷을 입고 얼굴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간간이 닦아내며 관음전 난간에 서서 앞을 바라보는 풍경은 천지에 온통 하얀 안개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도 보이지 않고 떠오르는 해도 보이지 않았다. 소나무 숲과 동백 숲이 짙푸르고 희끗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맑은 날, 향일암에서 바라보는 여수 바다는 햇살이 가득하고 눈부시게 빛난다고 들었다. ‘해탈의 문’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좁다란 바위틈을 지나 암자를 오를 때는 귀로 들어 상상하던 풍경을 애써 떠올리며 갔지만, 바다 안개는 점점 짙어지더니 마치 솜이불처럼 천지를 덮어 버렸다.

비 내리는 날, 남해 바닷가 한 암자에 갇혔다. 그런데 눈을 베일 듯 한 수평선과 눈부신 풍경 대신 희뿌연 안개의 휘장 너머로 그림 한 점이 떠올랐다.

“세상의 어떤 장소도 이곳처럼 슬프고 불편할 수는 없다. 죽음의 광막한 제국 안에 있는 오직 하나뿐인 생명의 불꽃, 외로운 원 안에 있는 고독한 중심점.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그 이미지는 두세 개의 비밀스러운 대상과 함께 놓여 있다…그리고 그것은 균일하고 경계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바라볼 때 마치 눈꺼풀이 잘려 나간 듯함을 느끼게 된다.”(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작품 <바닷가의 수도승>이 당대의 한 시인에게 던져준 인상이었다. 모래톱 위에 한 사람이 서 있고 바다는 검게 넘실거리는데 그 위에 광활한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 그림에는 전통적 풍경화에서 볼 수 있는 나무, 풀, 돌 등 전경은 과감히 생략되었다. 심지어 그는 애초에 그려 넣었던 수평선 위의 두 척의 범선조차 물감을 덧칠하여 화면에서 지워 버렸다. 커다란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구름이 가득한 청회색의 넓은 하늘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광대무변한 우주와 대면한 인간의 왜소함과 고독감이다. 당시의 평자들은 이처럼 이 그림에서 세상의 종말을 연상하게 하는 단조로움과 가없음을 느꼈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에서 나타난 자연은 시대적 격변과 삶의 덧없음에 대한 우울한 우의(寓意)고, 모든 사물을 덮는 자욱한 안개는 세상의 유혹 및 신과의 거리, 또는 우울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수도승>은 이 캔버스 밖에 결코 다 담길 수 없는 무한한 공간이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르네상스 원근법이나 아카데믹한 색채 사용에서 벗어난 이 단순한 풍경화는 어쩌면 서양 풍경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구도로, 한국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시각적으로는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말하자면 화면 전체가 텅 빈 여백이다. 서양화에서 여백은 의미 없이 비어있는 공간으로 피해야 할 요소인 반면, 한국의 옛 그림에서는 여백은 그림에 있어서 완성되지 못한 상태가 아니다. 비어 있지만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표현으로 다하지 못하는 것을 여백으로 남겨 둠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시각적 여운을 살리도록 하는 미적 요소이다. 다시 말해, 여백은 대상의 형체보다는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프리드리히의 막막한 텅 빈 공간은 보는 이에게 무한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고작 110 × 171 cm 크기의 캔버스에 유채로 그려진 <바닷가의 수도승>를 보고 있으면, 마치 하늘과 바다가 화폭 바깥으로 무한히 확장된 듯한 공간감을 느끼게 된다. 수평선으로 제시된 하늘과 바다는 측정 불가능한 깊이와 넓이를 가진 심원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화면상 유일한 수직선으로 표현된 유한한 인간 존재의 대비는 우리의 시선을 자연의 이면에 있는 불가사의한 힘에 대해 주목하게끔 한다.

특히 독일의 낭만주의 회화는 기본적으로 ‘숭고(sublime, Das Erhabene)’의 개념과 결부되는데, 이러한 예술미를 가장 잘 표현한 화가 중 한 사람이 바로 프리드리히였다. 18세기의 숭고는 거대한 자연에 대한 경이감, 유한한 인간 존재의 무상함에서 비롯되는 비극적 슬픔과 고립감을 통해, 자연의 이면 너머 신의 질서나 우주적 화합 등의 진실을 향해 열려 있었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에 등장하는 바다, 하늘, 바위, 산과 같은 자연적 요소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초월적 정신성의 투영이기에 풍경화라기보다 오히려 범신론적 종교화로 불리기도 했다.

여러 미술사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 수도사는 프리드리히의 자화상이다. 어떤 사람은 그림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작품과 관객 사이의 어느 중간 지점에 있다고 말한다. 좋은 감상의 경험에서는 작품의 객관적 조형미와 감상자의 내면적 주관성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훌륭한 미적 정서를 이끌어 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보는 이들은 작품과의 심리적 거리를 넘지 못하고 유리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프리드리히의 이 그림 속에 황량하고 고적한 대자연 앞에 선 한 인간의 뒷모습은 그림을 응시하는 관람객의 시선과 겹친다.

프리드리히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바닷가의 수도사’와 마찬가지로 황량하고 고적한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한편으로 작품 앞에 선 감상자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시선의 이중적 층위구조이기도 하다. 나아가서 프리드리히 작품 속 뒷모습의 인물들은 그림 속 세계에 대한 안내자로서, 신비하고 초월적인 체험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어둡고 황량한 해변과 검게 넘실거리는 바다의 물결 이 모든 것이 프리드리히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그리고 세속의 삶과 구원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프리드리히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처럼 당시 독일 화단의 낭만주의적 이상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화필을 든 신비주의자’로 소개되는 그는 독일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다. 이 그림 <해변의 수도승>은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 특히 걸작으로 손꼽히며 동시대의 독일 낭만주의 회화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대담한 시도의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그림과 한 쌍으로 제작되었던 ‘참나무 숲 속의 수도원’과 나란히 1810년 베를린 아카데미의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에는 중세적 어둠과 내면의 고독, 그리고 삶에 대한 비관적인 성찰이 엿보인다. 거대한 자연 앞에 홀로 선 유한하고 왜소한 존재인 인간, 항거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무력감과 절망은 프리드리히 작품의 특징이다.

이는 어쩌면 프리드리히 자신의 개인사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스웨덴 왕국의 일부였던 발트해의 작은 항구이자 대학도시인 그라프스발트에서 비누와 양초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마주했다. 7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 소피 도로테아 베힐리가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에 누이 엘리자베드가 죽었다. 9년 후에는 두 번째 누이 마리아가 발진티푸스로 죽었다. 그 와중에 가장 커다란 비극은 13살 무렵 목도했던 동생 요한 크리스토퍼의 죽음이었다. 동생이 얼음이 깨진 차가운 호수에 빠져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고통스런 경험은 평생토록 프리드리히를 따라 다녔다고 전해진다.

또 프리드리히가 작품 활동을 하던 시대의 독일은 나폴레옹의 압제 하에서 신음하였기에 독일의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여러 사상들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나폴레옹의 패퇴 이후, 빈 체제에서 메테르니히의 치세가 유럽을 거머쥐자, 오히려 복고주의가 새로운 시민사회에 대한 욕구를 억압하였다. 때문에 프리드리히의 그림 중에는 압제를 벗어난 새로운 사회로 향한 정치적 이상을 표현하는 듯한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혹독한 검열과 처벌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표현 방식은 사뭇 암시적이고 간접적이다.

그리스, 로마의 문명적 전통에서 예술미의 본질을 발견하고자 했던 이전 시대의 고전주의와는 달리, 괴테로 대표되는 독일 낭만주의의 문인, 예술가들은 중세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찾아 다녔으며, 독일 신화와 전설에서 자신들의 예술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았다. 프리드리히는 괴테와 오랫동안 친분을 가지며 예술 정신을 교류했다. <해변의 수도사>와 나란히 전시된 <참나무 숲 속의 수도원>은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내면의 어둠과 심미적 희열, 성과 속의 대립, 일상의 우울과 환멸, 그리고 탐미적 쾌락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결국 구원을 희구하며 죽음의 고요한 정적으로 사라져 가는 인간 존재의 숙명적 비극성이 당시 독일 낭만주의 예술을 관통하고 있다.

해변은 어딘가를 향해서 떠나가거나 먼 여행에서 돌아오는 장소이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는 흐릿한 아침 안개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떤 먼 곳을 향해서 출항하거나 얼음 바다 위에서 좌초되어 있다. 혹은 어떤 그림에서는 하얀 바위 절벽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 눈부신 흰 돛을 단 배들이 떠 다니기도 한다.

프리드리히의 이 그림은 한편으로 종말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고, 바다는 탄생과 죽음 사이의 간단없는 여정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차안과 피안의 위태로운 경계에 선 존재가 인간의 삶이다. 바닷가의 수도승은 그 고적한 기슭에서 넘실거리는 검은 파도를 조용히 바라보고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 파도 소리를 귀로 들으며 그저 그 곳에 서 있을 뿐이다. 그는 온 우주의 무게만큼의 고독을 마주하고 묵묵히 서 있다.

향일함에 내리는 비는 그치지 않았고 안개는 더 짙어졌다. 눈으로 사물을 볼 수가 없으면 귀가 더 밝아지는 것인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와 함께 스님의 목탁염불소리는 더 또렷해졌고, 관음전 안에서 난간에 기댄 나를 내려다보시는 관세음보살 또한 고요하다. 이내 소나무 숲과 붉디 붉은 동백 숲마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천지를 가득 채운 고요 속에서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보고, 들리는 것 너머의 것을 듣고자 했다. 정작 가슴에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눈을 감고 봐야 한다고 했던가? 마음은 본래 형상이 없으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만물이 바로 마음이었다.

유수하산비유의 (流水下山非有意)
편운귀동본무심 (片雲歸洞本無心)
인생약특여운수 (人生若得如雲水)
철수개화편계춘 (鐵樹開花遍界春)

개울물이 산 아래로 내려감은 무슨 뜻이 있어서가 아니요
한 조각 구름이 마을에 드리움은 별다른 생각 없이 무심함이라
인생이 물, 구름과 같을 수 있다면
무쇠나무에 꽃피어 온 누리에 봄이 가득하리.

차암수정(此菴守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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