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자기의 그릇을 아시고 그저 겸손하게 살아 보세요
참자기의 그릇을 아시고 그저 겸손하게 살아 보세요
  • 대행 스님
  • 승인 2019.04.1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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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거를 당신 주인공에 둘 아니게 맡겨라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3(남) 저는 불자로서 생활하면서 부딪치는 숙제라고 그럴까, 그런 어려움에 관해서 한 말씀 질문을 드릴까 합니다. 우리는 착한 행을 하면 복이 온다 해서 항상 착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 뜻이나 나의 성품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일이 거꾸로 돌아가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때에도 인연법에 따라서 ‘이것이 인연이니’ 하고 나 스스로 나의 본성을 죽이고 저항 없이 그냥 따라가야만 하는 겁니까, 아니면 여기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해야 되는 것입니까?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이 염주알은 따로따로 있으나
한 줄에 꿰여 있으니
너 나가 둘이 아니구나.

큰스님 말씀하시는 것이 똑똑히 들리진 않았지만 어슴푸레하게 듣긴 들었습니다. 하여튼 방향이 제대로 나가지 않는 것은 이렇게…, 맷돌 축 있죠? 축을 갖다가 제대로 꽂지 않았으면 물건을 넣고 갈아도 제대로 갈려서 나오지가 않습니다. 딴 방향으로 나갑니다, 마구 그냥 쏟아집니다. 그와 같습니다. 똑바로 끼워야죠. 아래 위가 똑바로 심봉이 끼워져야 제대로 일하며, 전자와 전자줄이 한데 제대로 이어져야 불이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진짜로, 그대로 끼워져 있는 거니까 그대로, 저 나무뿌리가 있으니까 나무가 있듯이, 그대로 돼 있으니 그대로 철저하게 믿어라 이겁니다. 왜 자기 뿌리를 안 믿어요? 그렇다면 형상을 믿을 겁니까? 그래, 형상도 내 몸과 저 형상이 둘이 아니다, 부처님 형상이 내 형상과 둘이 아니요,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과 둘이 아니요, 또는 부처님의 생명이 내 생명과 둘이 아니니 그저 둥글게, 모나게 하지 말고 둥글게, 일정례(一頂禮)를 하더라도 둥글려서 일심(一心)으로써 진실하게 일배를 올려도 올려라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방향이 딴 데로 나가는 거는 잘못 끼웠기 때문입니다. 즉 말하자면 마음 내기 이전의, 내 마음의 선장을 올바로 투시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욕심대로 나가는 생각이 80%라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건 3%밖에 안 되니까, 비중이 더 큰 데로 돌아가죠.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마시고 진짜 크게 먹으려면 진짜 여기서 (염주를 들어 보이시고), 이 줄에서, 뿌리에서 그 싹을, 전체를 살리고 있으니까 ‘너밖에 할 수 없다.’ 하고 다 맡기고 심부름꾼으로만 사세요. 시자, 관리인! 사실 따지고 보면 관리인입니다, 심부름꾼이고. 따지고 보면 속의 생명들의 심부름꾼이기도 합니다. 또 이 사람 전체 몸뚱이의 심부름꾼이기도 합니다, 여러 생명들이. 그러니까 그것도 또한 둘이 아니죠.

그러니 마음 쓰기에 달려 있으므로 이 몸뚱이 속의 모든 의식들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아주 고정적으로 입력이 돼 있는 의식들이 마음 씀씀이에 의해서 바로 화(化)해서 달라진단 말입니다. 자기 마음을 따라 주게 해야 업보성, 인과성, 유전성, 영계성, 세균성 이 모두가 무너지고, 내 마음 하나로 돌아가게끔 돼야 딴 데로 흩어지질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부처님이 되지 못한 사람이지만 다 같이 이름해서 부처죠. 나도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날까지…, 그래서 내가 그랬죠? 분수를 알아서, 내가 얼마만한 그릇이란 거를 알고 해라 이겁니다. 내가 내 그릇에 이만한 걸 담아도 손색이 없을까 하는 걸 미리 알아차려라 이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냥 분수도 모르고 요만한 그릇에다가 (컵을 가리키시며) 드럼통으로 하나를 갖다가 집어넣는다면 이게 담겨집니까? 그러니까 첫째 분수를 알고, 진짜로 믿는다면 그냥 믿는다 안 믿는다도 없이, 진짜로 믿는다면…. 나는 내가 하려고 한 것에서 벗어난 예가 한 번도 없어요.

내가 지난번에 얘기했지요? 처음에 여기 왔던 해에 김장할 다라가 없어서 ‘다라가 없으니 어떡하나? 김치를 해서 오는 사람들을 모두 줘야 할 텐데….’ 하니까, 그 이튿날 어떻게 된 줄 아세요? 다라가 열 개가 들어왔어요. 왜냐? 그게 이심전심이죠. 이 모두가 이심전심으로 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내 마음 내기 이전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난처하게 생각 마시고요. ‘왜 나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번연히 알고도 이렇게 딴 데로 가나.’ 이러지 마시고 죽든지 살든지 진짜로 믿으세요. 아니, 더 잘 살려고 아무리 해 봐도 그렇다면 차라리 아예 ‘이젠 너 알아서 해!’ 하고, ‘나는 부지런히 뛰어줄게! 너 알아서 해!’ 하고 거기다가 맡겨 놓는 게 더 상책이 아닐까요? 더 살기가 편안하고요. 이거는 ‘내가 한다, 내가 짊어지고 내가 산다, 내 거다, 내가 망했다’ 이런다면, 어휴! 그거 사람이 한 생 사는 데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그러니까 아주 푹 쉬고 저 세 살 먹은 애, 다섯 살 먹은 애가, 학교에 다니는 애들도 그렇고,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믿고 그냥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 보세요. 그리고 책이 없어도 ‘아, 아버지가 사 줄 테지.’ 하고 말이에요. 공책이 없다면 ‘공책이 없어, 아버지!’ 그러면 사 주듯이, 이렇게 편리하게 사세요. 그러면 딴 방향으로 안 갈 겁니다.

질문자3(남) 두 번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부처님으로 볼 수 있습니까? 내가 부처님이 되어야 상대도 부처님으로 보인다고 하지만 공부하는 과정에서 분별심이 없어지지 않고 잠재의식이 사라지지 않으니까 대인관계에서 큰 손해를 보고, 급기야는 자기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여기서 한번 뛰어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태어난 것이 시발점이 돼서 종교를 믿고 이렇게 가는데, 여기까지 (염주의 매듭 부분을 가리키시며) 와 가지고 여기를 한 번 뛰어넘어서…, 이게 말하자면 생사에 관한 건입니다. 물질세계에서 이리로 와서 여기를 다시 뛰어넘으면 이제 피안의 세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넘어간다 이런 소리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살아서 열반이라고 하는 경계입니다. 죽어서 열반은 없어요. 그러니까 한번 내가 모든 거를 놔서 죽은 세상까지 돌아야, 살아 있는 세상과 죽어 있는 세상이 동시에 같이 있는데 거기를 찰나찰나 이렇게 한 바퀴 돌 줄 알아야, 모가 나지 않게 돌아갈 줄 알아야, 50%와 50%를 합쳐서 100%를 같이 굴릴 줄 알아야 이게 됩니다. 지금 뭐라고 그러셨죠, 처음에 물으실 때? 허허허….

질문자3(남) 어떻게 상대를 둘로….

큰스님 내 듣고도 또 말하면서 잊어버렸죠. 그래서 한 바퀴 돌아와야 그 둘이 아닌 도리를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이 세상에 나와서 자식이 됐다가 부모가 돼요. 부모가 됐다가 또 한 번 옷을 벗고 한 번 돌아요. 돌아서 다시 탄생을 해 보니까 딴 부모한테 또 태어났어요, 인연에 따라서. 그러니까 또 딴 부모의 자식이 되더란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딴 모습으로다가, 짐승의 모습을 가지고서 짐승의 자식이 돼서 또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돌고 돌다 보니까 내 자식 아닌 게 하나도 없고, 내 부모 아닌 게 하나도 없고, 내 형제 아닌 게 하나도 없더라. 공동묘지에 가 보니까 남녀노소도 없고 그대로 늙었더라.”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것 또한 깨쳐야 알겠죠.

그러니까 지금 이 줄과 염주알이 둘이 아니다, 뿌리와 싹이 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뿌리의 세계를 알아야 뿌리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나오면서 자꾸 화(化)해서 모습이 바뀌어서 나오는 거, 인연이 바뀌어서 나오는 거, 그런 거를 다 이렇게, 50%만 아는 게 아니라 100% 돌아가면서 알아야 ‘아! 모두가 둘이 아니로구나!’ 이렇게 진실하게 알지, 내가 직접적인 행을 해 보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먹어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둘이 아닌 줄 알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죽었다 깨어나고, 깨어났다가 죽고 이러는 도리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이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도리를 알게 됩니다. 내 과거에 살던 나와 현실에 살던 자기와 둘이 아니게 상봉을 해야 진짜로 그런 도리를 공부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알게 되는 겁니다. 스스로 알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너 나가 없이 자비를 베풀 수가 있고, 네 부모 내 부모 아님이 없이 자비를 베풀 수가 있고 마음을 낼 수가 있지,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너 나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고, 둘이 아니다!’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습이 둘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둘이 아니다, 영혼이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영혼이 둘이 아니라면 진짜로 자비를 베풀 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모습은 따로따로 각각 있을지언정 한 줄에 꿰였다 이겁니다, 한 줄에. ‘이 염주알은 따로따로 있으나 한 줄에 꿰여 있으니까 너 나가 둘이 아니구나,’ 이렇게 알려지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도 또한 발견을 해야 아시겠죠, 확실하게!

그러나 발견을 못 했어도 ‘진짜로 뿌리의 세계는 그렇게 둘이 아니구나. 영과 영이 만 개가 한데 합쳐도 영은 영이고 바로 둘이 아니구나!’ 이런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모두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을 증오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이렇게 항상 하신다면 자식의 업보도, 남편의 업보도, 아내의 업보도, 부모의 업보도 다 사라지게 돼 있는 것입니다. 여기 실천을 아주 잘하고 가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면서도 실제로 체험하고 가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죠. 그러나 자기가 그만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거는 알고 있을 거예요. 컴퓨터에 입력하는 거와 비교를 해서 얘기해 드렸으니까요. 한 찰나에 없어지는 것은 그거와 같다 이겁니다. 입력이 돼서 나오는 데다가 다시 입력을 한다면 앞서의 입력은 없어진다는 사실을 그대로 얘기해 드렸으니까요.

내가 대답을 서투르게 해 드리더라도 여러분은 좀 지혜롭게, 너그럽고 둥글게, 이렇게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난 배우지 못해서 그런지 그 용어를 방편으로 빨리빨리 대치를 해서 얘길 할 줄 모르지 않습니까? 하하하….

질문자4(남) 스님, 감사합니다. 저는 여기 나온 지가 한 5년 됐는데요. ‘좀 더 일찍 왔으면 더 좋았을 건데….’ 하고 항상 후회하면서 지금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데 잘되지는 않습니다. 몇 가지 질문 좀 올리겠습니다. 저희들이 공부할 때도 항상 스님이 말씀하시는 것보다도 스님의 모든 제스츄어라든지 그런 데 오히려 눈길이 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제가 먹어 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이 사과가 맛있다고 이야기하면 그게 얼마나 맛있는가 하는…, 제가 사실 먹는 방법을 배우러 왔는데 그 방법이 확실하게 제게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좀 가르쳐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큰스님 지금 선생님 영혼이 없으면 그 몸뚱이가 송장이 돼서 말도 못할 텐데, 그걸 모르세요? 하하하…. 바로 뿌리와 싹이 한데 붙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도 할 수 있고 그런 겁니다. 알고도 싶고요. 그런 거니까 자기 영혼의 뿌리를, 즉 말하자면 불성을 진짜로 믿고요, ‘다른 데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나하고 바로 밀접하게, 뿌리와 싹이 같이 붙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붙어 있구나. 그러니 진짜로 믿어야겠다.’ 하고 거기다가 전부 놓으십시오. 이 생활하는 것을 몽땅 말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이 전부 이 세상에 탄생을 했기 때문에 있는 거지, 탄생을 안 했더라면 무효지 뭐가 있습니까? 여기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고, 아예 이름조차도 없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어쩌다가 탄생을 했으니까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싹이 있기 때문에 뿌리가 있는 것이지 아, 싹이 없는데 무슨 뿌리가 있겠습니까? 뿌리도 싹도 없을 텐데.

그러니까 뿌리를 진짜 믿으시고 ‘이끌어 가는 것도 너고, 또 나를 형성시킨 것도 너니까 깨닫게 하는 것도 너다.’ 이렇게 모든 거를 거기다 맡겨 놓으시고 겸손하게, 진짜 자기 그릇대로 사세요. ‘불구(佛具, 法器)대로’ 이렇게 하면 또 여러분 마음에 그르쳐질까 봐, 하하하…, 어떤 때는 주저주저하고 그래요. 그릇대로, 참자기의 그릇을 아시고 그저 겸손하고 진실하게 살아 보세요. 그런다면 반드시…, 그건 거짓이 없습니다. 영원한 자기의 보배인 부처는 거짓이 없어요. 이 세상 살아나가는 데 우연히도 없고요. 아주! 아주! 우연이라는 건 없습니다. 절실히 느끼는 겁니다, 제가.

질문자4(남) 한 말씀 더 올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나이가 쉰둘이거든요. 사실 대학교 다닐 때까지는 자기 자신의 생활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애기 낳고 하다 보니까 그때부터 나의 생활로 생각되는데, 저의 과거를 생각하면 과거는 저의 부모로 생각되고,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걸 현재로 생각할 것 같으면, 저희 자식이 미래라고 생각되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게 옳은지 안 옳은지 모르겠지만….

큰스님 아, 그거야 사실이죠. 사람이 사는 데서….

질문자4(남) 그런데 열심히 노력하고 살다 보니까 자식들의 즐거움이 저의 즐거움보다 더 좋은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 공부하고 하는 것도 자식들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옳은 건지 아닌지 말씀 좀 부탁하겠습니다.

큰스님 아버지이니까요! 하하하…. 이 세상의 어떤 회사든 중역으로 돼 있는 사람은 중역이기 때문에 직원을 다스려야 한다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죠? 또 댁도 아버지가 됐기 때문에, 아버지가 되기 전하고 아버지가 돼 가지고는 다릅니다. 아버지가 됐기 때문에 자식들한테 사랑을 베풀 수 있고, 더러운 것도 볼 수 있고, 망나니 같은 것도 볼 수 있고, 그렇게 너그러움이 있는 거지, 만약에 장가들기 전이라면 딴 자식들이 그럭하는 거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됐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머니나 아버지가 돼서 자식들을 사랑하고 내 생명보다도 더 귀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니라! 그러니 곤충에 이르기까지 개개인이 다, 자식을 생각하고 사랑을 하는 그 부처의 마음은 모두 갖춰 가지고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마음은 찰나찰나 나투면서 아니 되시는 게 없기 때문에 청수에다가 비유를 하고 또 바다에다가 비유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이란 그저 내 자식, 내 재산, 내 것만 아는 개별적인 그릇으로서만의 얘기고, 부처님께서는 삼라만상 대천세계의 모든 생명들이 다 내가 될 수가 있고, 나로서 행할 수가 있고, 나로 나투면서 이끌어 주시는, 즉 말하자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뭐, 갖은 이름의 일체 보살이 다 될 수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또 일체 각계각층 중생들이 다 될 수가 있으니까 부처인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여서 그런 거니까, 그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시라는 점에서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말로 행으로, 또는 돈을 잘 주거나 옷을 잘 입히거나 잘 먹이거나 이러는 것이 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사랑을 하는 것은 정신력을 길러 주는 것이고, 그 보배를 찾게 하는 것은 전 세계, 전 우주를 맡겨 주는 거나 다름없는 겁니다. 재산 물려주는 것보다도 더 좋은 거죠.

그러니까 내가 항상 이렇게 말을 하죠. “여러분 가정에서 부부지간에 사랑이 없고 어떠한 문제가 있더라도 그대로 사랑하면서, 그대로 부드럽게 행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부드럽게 하면서 거기다가 다 맡기면, 서로 남편이다 부인이다 하는 가설이 돼 있기 때문에 바로 거기까지 불이 들어오게 돼 있다. 그래서 망하게 하는 모든 나쁜 습성을 고칠 수 있게끔 돼 있으니까 그렇게 하라. 또 자식도 몸을 잡아서 되는 것도 아니고 말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잘해 줘서 되는 것도 아니다. 단 하나, 그 모든 업식을 녹여 주면 스스로 밝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거를 당신 주인공에 둘 아니게 맡겨라.” 하는 겁니다.

바로 거기서만이 부드럽게 행하게 하고, 아주 정말 보배스러운 인간으로서 자유인이 되게끔 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게 하고, 모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고, 자비하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뿌리를 싱싱하게 키워 주고 보배를 찾게 해 주는 것이 원칙이죠. 그건 거짓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연방 해 보세요.

나가서 뭐, 어떻게 하고 다니더라도 절대로 욕하거나 때리지 마세요. 또 부부지간도 그렇고 다 그래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시고, 저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저 속에 들어 있는 업보가 그러는 거니까, 바로 의식들이 그러는 거니까 ‘주인공! 그 뿌리는 너하고 나하고 둘이 아니야. 그러니까 주인공만이 그걸 해결할 수 있다.’ 즉 말하자면 뿌리만이 싹을 푸르르게 살게 할 수 있다 이 소리죠. 그러니 그렇게 해 주면서 겉으로는 부드럽게, 진짜 진실로써 그렇게 해 주고 한다면 정말 이 고(苦)의 테두리에서 몰락 벗어날 겁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착한 자식이 되고 화목을 가져오고, 질서를 문란치 않게 할 수 있고,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질문자4(남) 감사합니다. 이 공부를 늦게 알게 된 걸 후회한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지금 아들이 셋인데요. 둘은 이제 대학교 가고 군대 가고 해서 막내 하나 남았습니다. 제가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이걸 활용해 가지고 좀 더 좋은 학교에 좋은 방법으로, 또 현재보다도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후회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막내한테는 스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그대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은, 낮에는 제가 직업 전선에 나가니까 그렇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공부 좀 하려고 그러면 자꾸 잠이 와서 안되고, 친구들하고 술 한잔 먹다 보면 잠이 또 더 오고 그러는데, 잠을 좀 안 자면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으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큰스님 술을 먹으면 이 정신이 흐려지니까요, 생각이 갈팡질팡해지죠? 그렇기 때문에 불가에서 “술을 먹지 마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술을 그렇게 많이 먹어서 좋은 건 아니니까요, 아주 약주로만 드시지 술로 잡숫지는 마세요. 그리고 아까 이심전심이라고 한 것도, 부부지간이나 자식지간이나 부모지간이나 그 모든 걸 거기다가 ‘둘 아닌데’ 하고 맡겨 놓을 수 있고, 거기에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세우신다면 바로 이심전심으로 통한단 말입니다. 다 통하게 돼 있어요. 정말입니다.

여기 와 계신지는 몰라도, 어떤 분이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아주 앙숙이랍니다. 하하하…. 그래서 서로 보려고 하질 않는답니다. 그런 분이 한두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도리에서 ‘어휴! 아버지도 내 마음과 둘이 아닌데, 내 뿌리하고 아버지 뿌리하고 둘이 아닌데 그저 아버지가 사랑을 베풀게 당신만이 할 수 있다.’ 하고 항상 그렇게 했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은 아버지가요, 딱 껴안고는 “이제는 너하고 나하고 둘이 이렇게 살자.” 하더랍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아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망해 가지고 아주 그냥 들어앉은 사람인데, “이제는 너도 살아야지!” 하고 반을 뚝 떼어서 주더랍니다.

어때요? 모두 자비를 베풀게끔 스스로 이렇게 돼야 스스로 부처를 만드는 거고, 스스로 보배를 만드는 거고, 자유인을 만드는 거지, 어떻게 그냥 입으로만 말을 하고…. 이것 보세요. 막 그냥 말을 악착같이 하면요, ‘어휴! 나는 저 사람만 만나면 아주 지겨워.’ 하고 달아나가요. 달아나가게 돼 있다고요. 부부지간이고 자식지간이고 다 그래요. 그러니까 좋다 좋다 해야 그저 따뜻한 데로 고이죠. 추울 때는 따뜻한 데로 고이고 더울 때는 시원한 데로 고이게 마련이거든요. 그러니 여러분, 그렇게 불편스럽게 사시지 마시고 편안하고 즐겁게 사세요. 마음이 답답하게 나오걸랑 ‘답답하게 하는 것도 너니까 답답하지 않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하고 다시 바꿔서 대치해서 즐겁게 사세요. 마음이 즐겁지 못하면 얼굴 빛깔까지도 즐겁지 않아요.

질문자4(남) 감사합니다. 건강이 조금 좋아졌습니다. 마음을 놓다 보니까 그렇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오늘 사실은 책을 보다가 좀 의문 나는 점을 적어오긴 했는데, 생활이 불교이다 보니까 생활에 대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사회자 이것으로써 큰스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94년 4월 3일 법형제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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