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법 스님/ 세존불교학술연구원장

성법 스님은… 20세에 출가해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수료하고 현재 고양시 용화사 주지로 있다. 2001년부터 경전 전산화 불사의 원을 세워 초기불교부터 대승경전의 다양한 해설까지 아우르는 불교경전총론 세존사이트를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7년부터는 세존학술연구원을 창립해 세계 최고 학자들의 연구들을 번역·소개하는 ‘세존학술총서’ 불사를 진행 중이다.

20여 년 전 유명했던 TV광고의 한 대목.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좋다.” 지금 없어진 증권회사 광고지만, 당시 세간에서는 제법 유명세를 떨쳤다.

왜 유명했을까. 일반적으로 한국사회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생각해 반대 입장을 이야기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경직됐던 당시 파격에 가까운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기실 집단은 ‘애빌린 패러독스(Abilene paradox, 이의를 제가하는 사람이 없으면 반대 의견이 없다고 생각해 다수가 침묵하는 현상)’를 경험하기가 쉽다. 이는 일반 세속의 조직문화뿐만 아니라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교조의 가르침이라고 내려오는 교리나 사상들에 의문을 갖는 것은 불경한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 성현들은 기존 문화에 ‘아니오’와 ‘왜?’를 화두로 던진 인물들이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삶을 버리고 출가 수행자가 된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 기존 관습과 바라문교에 꾸준한 의문을 갖고 파격적 행보를 보였다. 확고했던 카스트 제도를 무시하고 출가 순서대로 사제 관계를 정리했고, 금기됐던 여성출가를 허용했다. 부처님은 잘못된 집단사고와 가르침에 ‘왜’라는 비판적 질문을 던지고 ‘아니오’라고 말한 뒤 자신의 법을 정립하고 포교한 것이다.

세존학술총서 발간 원력
세계 수준의 불교학 연구 성과들
지난해부터 번역… 총서로 발간
매크래 교수 저서는 우수도서로
목표 30권이지만 1차로 10권만
30대 불자 시주로 나온 결과물
“외형적 불사보단 법보시 중요”

경전총론 세존사이트에 대해
경전 전산화 기치로 2001년 제작
經총론부터 미술·과학 연계까지
웹페이지만 15만여 페이지 상회
각 게시판 운영하며 대중과 토론
폐쇄 위기 겪었지만 현재는 운영

“무엇이 불설인가” 고민을
굳이 서설(序說)을 이같이 풀어 놓는 이유는 이번 인터뷰이도 평소 ‘네’보다는 ‘아니오’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엇이 불설인가”라는 화두를 한국불교에 끊임없이 던진다. 바로 세존학술연구원장 성법 스님의 이야기다.

불교경전총론 세존사이트의 운영자로도 잘 알려진 성법 스님은 최근에는 ‘세존학술총서’를 발간하며 세계 유명 불교학자들의 연구 성과들을 번역·출간해 국내에 알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시이 슈도의 <송대 선종사 연구>와 존 매크래의 <북종과 초기 선불교의 형성>이 발간됐다. 올해에도 G.C.판데의 <불교의 기원>과 폴 윌리엄스의 <대승불교-교리적 토대와 성립>이 나왔다.

특히 <북종과 초기 선불교의 형성>은 2018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학술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불교에 논쟁점을 제시한다. 존 매크래는 초기 선종사를 다루며 북종과 남종부터 신수·혜능의 법통 문제 등에 새로운 주장을 내놓는다. 오조 홍인의 문하에서 신수와 혜능은 동시에 공부하지도 않았고, 전법이 이뤄지는 말년에는 신수와 혜능 누구도 홍인과 같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전등에 관련한 전설이 초기 선불교의 중요한 발명품”임을 연구자들이 상기할 것과 전설과 역사를 구별할 것을 주문했다.

불교를 조금 접한 불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육조 혜능의 전등담이 ‘허구’라는 것이다. 이 같은 비판적 문제 제기와 논쟁이 성법 스님이 추구하는 지점이다.

“제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불교가 역사적으로 잘 구현됐는가’입니다. 저는 이 같은 의문을 경전을 통해서 확인합니다. 경론에 근거없이 맹목적으로 요구하는 믿음이나 수행을 부정합니다. 저는 세계 최고의 석학들의 연구들을 소개하고 이릍 통해 한국불교 내에서 전통의 ‘불설 교학’이 바로 서길 바랍니다. 또한 발간되는 총서를 통해 활용도 높은 현대의 논장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이 같은 스님의 지향점은 통렬한 한국불교의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몇몇의 저서 등을 통해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이번에 발간한 학술총서 간행사에서의 지적도 날카롭다.

현재 한국불교는 승가를 이끌 걸출한 수행자를 배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중략>이는 승가가 선 수행자는 문자에 의지하면 안 된다는 그릇된 전통에 집착한 나머지 경전까지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방임했지만, 실제로는 선 수행을 통한 ‘경지’에 도달한 수행자마저 배출하지 못한 진퇴양난의 결과이다.

‘맹목·無정체성’에 흔들리는 불교
총서들의 간행사와 저서들의 비판에는 불교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그래서 성법 스님의 비판을 더 자유롭게 들어봤다. 스님은 비판없는 맹목적 추종에 알레르기 반응과 같은 강한 거부감을 표했고, 직관만을 강조하는 현재 불교의 수행문화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제기했다. 또한 통불교도 아니고 선이라는 종파불교도 소화하지 못하는 한국불교의 모호한 정체성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성법 스님은 일종의 예시를 들었다. 종이 한쪽에 완벽한 검정이 있고, 다른 한쪽에 완벽한 하양이 ‘바림(gradation)’의 형태로 표현돼 있다. 완벽한 하양이 부처님 재세 당시 불교라면 검정은 현재의 불교다. 실제 2000여 년 동안 불교는 세계 각국으로 전래되면서 중관, 유식, 천태 등 다양한 종파 사상이 만들어져 왔다. 어디까지나 시간 변화를 통해 든 예시다.

“2000여 년 동안의 변화에서 약 100년 동안의 변화는 크게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지역별 거리 차이도 있었고요. 지금은 다릅니다. 총체적인 조망이 가능합니다. 중관에는 어떤 문제가 있으며, 유식은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등등의 비판적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불교는 모든 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입니다. 이것을 통불교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수행에 대해서도 스님은 “부처가 아닌 조사를 앞세운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깨달음은 지혜를 얻기 위함인데 선정에 매몰된다고도 했다.

“수많은 선사들의 입에서 판에 박힌 똑같은 언어가 반복되는 것은 자기 소식이 아니라 앞선 중국 선사들의 묵은 소식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보조국사 지눌은 ‘정혜쌍수’를 이야기했습니다. 현재 한국불교는 ‘정’만 있지 ‘혜’가 없습니다. 깨달음은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인데 선정에 들려고만 합니다. 수행이 이어가기 위해서는 ‘혜’가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도 정각을 이루고 나아간 곳이 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깨친 지혜를 알리고 포교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형이상학적이고 신비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전한 겁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성법 스님은 “보조국사 이후 한국불교에 정착한 간화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문제는 정·혜가 같이 이뤄지고 바라밀 수행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행의 목적은 중생의 안락과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데 설법에서 ‘이 도리를 알겠는가’라는 일방적인 전달을 합니다. 논리와 이해보다는 직관을 내세웁니다. 애초 선은 논리를 넘어서는 것이라고만 하죠. 직관은 중요합니다. 수많은 과학법칙과 발명품들은 직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바탕에는 논리와 경험이 있었습니다. 논리를 통해 쌓인 통찰과 직관이 현대 한국불교에는 필요합니다. 논리는 경전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논리는 없고 오직 믿으라고만 하면 현대인들은 외면하게 돼 있습니다. 논리와 직관이 함께 있어야 불교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전산화·학술총서, 바른 불교 알리는 노력들

한국불교 문제점은 무엇인가
부처보다 조사 앞세운 현재 세태
“경전 무시하니 불교가 바로 서”
정체성 모호… 문제 모르는 게 문제
최신 연구서 발간해도 논쟁도 全無
“부처님 말씀 바탕한 수행·신행을”

시주가 조금만 더 있다면…
사이트·총서, 사재 털어 겨우 진행
“출가자로서 내가 유일하게 할 일”
건강 악화에 수 억여 원 빚만 남아
30년 지닌 신라금동불 보낼 생각도

세존 사이트를 모니터에 띄운 세존학술연구원장 성법 스님이 사이트 관리를 하고 있다.

인터넷 경전 전산화 선구자
성법 스님은 불교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바른 불교’를 알 수 있게 하는 논의의 장이 많아져야 한다고 봤다. 그런 스님의 지론이 투영된 것이 바로 일명 불교경전총론 사이트 ‘세존’, 일명 ‘세존사이트’다.

‘세존사이트’는 2001년 ‘화엄경 총론’을 성법 스님이 인터넷을 통해 강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를 시작으로 법화경총론, 선총론, 금강경총론, 유마경총론, 기신론총론 등으로 확대됐다. 여기에 비교종교, 밀교, 불교 쉽게 알기, 불교미술, 불교와 과학 등 당시에는 획기적인 내용의 연구 자료와 글들이 소개됐다.

현재 세존 사이트는 웹페이지만 15만 쪽을 상회할 정도로 방대하다. 등록된 회원만 3만4000여 명이 넘는다. 각종 게시판을 통해서는 유저 신도들과 스님이 법담과 토론을 나누며 불교를 공부해갔다.
이 모든 것은 스님이 자체 개발한 것으로 모든 자료들의 업데이트도 스님의 자비로 충당했다. 오로지 바른 불교를 논의하기 위한 장을 만들자는 원력으로 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존사이트는 재정난으로 지난 2011년 폐쇄 위기까지 갔다. 당시 스님은 회원들에게 메일을 통해 권선을 요청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사찰과의 문제로 잠시 문을 닫기도 했지만, 결국 회원들의 요청으로 다시 재개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보시 중 최고의 보시는 ‘법보시’
당시를 회상하던 스님에게서 많은 회한이 느껴졌다. 20년의 사이트 운영으로 남은 것은 수억 원의 빚과 악화될 때로 악화된 건강뿐이다. 하지만 승가에게서는 실망감을, 재가에게서는 모멸감을 받았던 것이 자신을 더욱 힘들게 했다. 특히 사이트 운영을 위해 권선을 요청하자 “염치가 없다”고 하거나 “스님이 전생에 공덕이 없는 것이 느껴져 보시할 생각이 없다”고 하는 치욕적인 말을 한 재가자도 있었다고 스님은 술회했다.

그나마 2013년 자신의 책을 읽고 찾아온 30대 중반의 거사와 인연이 돼 세존학술총서 발간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스님에게는 선근 인연으로 다가왔다. 그 불자는 약 1억 원의 보시를 통해 학술총서 발간 불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재 스님이 기획하고 있는 총서 시리즈는 10권이다. 현재 10권에 대해서는 전부 선정을 완료했고, 대부분 역자들도 배정이 완료됐다. 본래 목표는 20~30권을 계획했다. 이는 현재의 가시적 성과가 아닌 미래불교를 위한 투자다.

“현재 승가와 재가가 갑자기 경천동지하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나마 제대로 된 학술연구서들이 있으면 미래에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불교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해 총서를 내는 겁니다. 다만 재정적 문제로 계획했던 최소 20권을 발간할 수 없다는 게 아쉽기만 합니다. 조금 더 시주가 들어온다면 좋겠지만…. 외형적 불사만큼 법보시에도 출·재가가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스님은 지난해 발간했던 저서 <그래도 불교>에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며 30년간 소장한 통일신라 금동불을 내놓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의 번역불사 진행비도 필요하고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죽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기 때문이다. 그간의 거절과 모멸로 스님은 권선보다는 불상을 내놓는 결정을 내렸다. 기자에게 불상을 보여준 스님은 “희유한 인연을 기다린다”고도 했다.

자신의 분신을 내놓더라도 완성하고 싶은 세존학술총서와 사이트 운영은 성법 스님에게 어떤 의미와 목표가 있는 것일까. 인터뷰 말미 질문을 던졌다. “내가 출가 사문이라서. 그래서 해야 할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누구도 가지 않는 길. 그래서 외로운 그 길을 스님은 오늘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성법 스님이 30년간 지니고 있던 신라 금동불. 스님은 "학술서 번역 불사와 세존사이트 운영을 위해 새로운 인연을 맺어주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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