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파거불행(破車不行)

파거불행(破車不行)은 ‘부서진 수레는 움직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신라의 대표적 고승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 나오는 말이다.

‘파거불행(破車不行)’에 이어 ‘노인불수(老人不修)’라는 말이 나온다. 조금 슬픈 말이지만 ‘늙으면 수행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나이를 먹으면 모든 것이 다 쉽지 않다. 하다못해 노는 것도 어렵다. 노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체력이 부족해서 만사가 귀찮기 때문이다. 극락이 눈앞에 있어도 그림의 떡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막판이다. 나이를 먹으면 뭘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두가 그런 고민을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기술력이 매우 좋아져서 ‘파거불행’이라도 수리를 하면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 자동차의 경우 성능이 좋아 평소 잘만 관리하고 수리해주면 30년은 탈 수 있다. 얼마 전 뉴스에는 1960년대 항공모함을 수리해서 사용하는 나라가 나왔다.

‘노인불수(老人不修)’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큰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어떤 일이나 학문, 탐구, 공부는 노인이 되어도 충분히 가능하다. 큰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80세까지도 가능하고 90세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시작은 60대에 해야 한다.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이 먹어서 할 수 있는 것은 탐구가 가장 좋다. 진리 혹은 고전이나 학문적인 탐구라면 더욱 좋다. 철학과 고전 학문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고 보다 진리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체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탐구 정신이 살아있다면, 그리고 안일에 매몰되지 않는다면 가능하다. 단,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삶과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효 스님이 말씀하신 ‘파거불행, 노인불수’는 나이를 먹고 몸이 쇠약해지면 공부도 못한다는 말이지만, 젊었을 때 안일하거나 방일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이다. 젊은이들에게 인생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한 충격적인 요법, 시간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극약처방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는 “한 순간순간이 흘러 하루가 되고 하루가 흘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흘러 한 해가 되고, 한 해 한 해가 바뀌어서 잠깐 사이에 죽음의 문에 이르게 된다. 부서진 수레는 움직이지 못하고 늙어서는 수행할 수 없나니, 그런데도 누워서 빈둥빈둥 게으름만 피우고 앉아서 어지럽게 번뇌 망상을 피우네. 몇 생이나 사는 데(인생은 한 번), 허송세월하는가. 언젠가는 죽게 되리. 아, 급하구나.”라고 탄식하고 있다.

필자가 학교를 다닐 때, 대부분 시골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팽개치면 그날 일과가 끝났다. 복습이나 예습 같은 것은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방학 숙제는 개학 1주일 전 쯤 몰아서 했고, 당시는 일기도 숙제의 하나였는데, 그것도 개학 3~4일 전에 몽땅 몰아서 썼다.

어머니는 매일 잔소리를 하셨다. “공부 좀 하거라. 공부해서 남 주냐?”라고. 그렇다고 말썽꾸러기는 아니었다. 공부만 안 할 뿐, 비교적 착한 편이었다(사실 시골 아이들치고 착하지 않은 아이가 거의 없다). 불교를 만난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서른이 훌쩍 넘어 뒤늦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을 하는데도 공부한 것이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아 보통 고생한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기억력은 필요한데, 단어 하나 외우기도 힘들었다.

요즘은 책을 읽으면 절대 1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돋보기안경에 허리 디스크, 체력 등 장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요즘은 정말 ‘파거불행(破車不行), 노인불수(老人不修)’를 실감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가리켜 “어리석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것은 무상, 무아, 연기, 공의 이치를 모르고 영원한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의 입장에서 어리석었던 걸 하나 말하라면 ‘파거불행, 노인불수’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20년 전쯤에라도 ‘파거불행, 노인불수’를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도 어리석음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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