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믿음 편 14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 욕구를 거스르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아무리 배가 고픈 아버지라도 자식이 옆에 있으면 먹고 싶은 욕구를 참게 된다. 이처럼 사랑에는 욕구를 거스르는 힘이 작동하고 있다. 가수 GOD의 ‘어머님께’란 노래 속의 어머니는 결코 짜장면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자식이 어머니 생각해서 먹는데 주저할까봐 스스로 짜장면이 싫다고 말한 것뿐이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들은 생선 부위 중에서도 유독 머리와 꼬리 부분을 좋아한다. 정말이지 신비한 일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가난해진다고 하는가 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눠주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느 노보살님의 이런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밥상에 생선이 나오면 눈알을 정말 좋아하는 줄 알고 자식들이 그 부분만 자기 앞에 갖다 놓는다는 것이었다. 부모와 자식의 마음이 다르긴 다른가 보다.

불교에도 이러한 욕구 거스르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지장보살(地藏菩薩)이다. 지장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옷가지를 모두 벗어주고 자신은 땅(地)을 파고 들어가(藏) 추위를 피했다는 보살이다. 여기에도 추우면 입고 싶은 기본적 욕구를 거스르는 사랑의 힘이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지장보살의 위대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위대함은 자신이 세운 서원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지장보살을 가리켜 원이 가장 큰 분이란 뜻의 대원본존(大願本尊)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옥중생이 모두 성불할 때까지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

이 얼마나 위대한 서원이던가! 출가한 승려나 불자라면 누구나 원하는 그 성불을 모든 이가 이룰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장보살의 서원은 기본적 욕구는 물론 종교적 욕구마저 거스르는 위대한 행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기 마련이다. 이러한 유한한 실존 앞에서 인간은 무한하고 영원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모든 종교적 수행은 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성스러운 과정이다. 그런데 지장보살은 다른 이들을 위해서 그 욕구를 거스른 것이다.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승 정신의 극치라 할 것이다.

지장은 흔히 붓다 입멸 후 미륵불이 이 세상에 출현할 때까지 육도의 세계에서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대자대비의 보살로 알려져 있다. 관음보살이 현실의 고통을 소멸해준다면, 지장보살은 죽은 뒤 지옥이나 아귀, 축생으로 떨어지는 고통을 소멸해준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장보살은 명부(冥府)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49재 때 지장보살의 명호가 많이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찰에서는 지장보살이 명부전(冥府殿) 혹은 지장전의 주존으로서 불자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장보살은 다른 보살과 달리 머리에 두건을 쓰거나 삭발한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법당에서 비교적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한 손에는 기다란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명주(明珠)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한마디로 중생들이 지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옥문 앞에서 단단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중생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진평왕 때부터 지장신앙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장신앙은 돌아가신 분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담겨있기 때문에 오늘까지도 널리 성행하고 있다. 음력으로 매월 18일은 지장재일이다. 이날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는 돌아가신 조상의 극락왕생을 위해 많은 이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런 종교적 행위에 딴죽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종교적 욕구를 거스르면서까지 사랑을 실천했던 지장보살의 숭고한 이념을 중생들이 한번쯤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짜장면을 싫어하고 생선 눈알만 좋아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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