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삶의 헤드라인 뽑기

번잡한 사건 매우 짧게 압축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
한 사건에 대한 이미지 이해돼
감정과 생각의 생멸 경험 가능

글쓰기명상의 실제에서 두 번째 제안은 삶의 헤드라인 뽑기. 헤드라인? 그냥 머리 제목이라고 하면 안 되나? 아니면 광고에서 잘 쓰는 메인 카피는 어떨까. 물론 그렇게 읽어도 문제없다. 복잡한 사연을 한 줄로 압축하는 글이라는 점에서 헤드라인, 메인카피, 머리 제목, 어느 것이든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를 생각했을 때, 나는 난중일기를 떠올렸다. 남의 일기를 읽을 생각은 없었지만, 워낙 국가적으로 장려된 타인의 일기여서 어릴 적부터 읽게 됐다. 그때 그 느낌이 지금의 신문지상에 나타나는 헤드라인을 방불했다. 전란 중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이순신 장군은 딱 한 줄로 담아놓곤 했다. 15926, 임진왜란이 발발한 해의 일기다.

맑음. 사량 뒷바다에 진지를 구축하고 밤을 지새우다.”(난중일기, 61)

맑음, 우수사 이억기와 일에 대해 논의하며 바다에서 잤다.“(난중일기, 68)

신문 기사에서만 볼 수 있던 헤드라인이 요즘은 TV뉴스 화면에도 종종 올라온다. 시청자의 눈과 귀를 두루 바쁘게 함으로써 정보 전달의 질을 높이자는 의도일까. 뉴스의 요점이 화면 하단에 굵은 글씨로 떠올라서 내용 파악하기 쉽다.

오전 곳곳 대기질 탁해, 찬바람 불어 쌀쌀

감정 노동자 보호법, 6개월 성과는?”

자막이 뜨고, 아나운서는 자막 관련 기사를 전한다. 당신은 이제 충분히 눈치 챘을 것이다. 글쓰기명상 2번 항목 삶의 헤드라인 뽑기는 자신의 삶을 이런 자막이나 신문의 헤드라인처럼 간결하게 압축 정리해보자는 제안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의 생멸을 경험하게 된다.

- 살아온 동안 잊히지 않는 사건을 신문의 헤드라인 형식으로 뽑아보기

- 작년 한 해, 정리 기사를 쓴다면 어떤 헤드라인을 쓸 것인지 적어보기

- 오늘 하루 전체를 헤드라인으로 적기

- 지난 한 달을 한 문장으로 압축 정리하기

- 지금까지 살아온 연도를 적고, 그 해의 일을 한 줄로 압축하기

- 어떤 사람과의 인연을 기사의 헤드라인처럼 처리하기

- 내면의 상처 혹은 두려움 등 여러 사연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

내 삶의 헤드라인 뽑기는 번잡한 사건이나 기억을 강력하게 압축하여 드러내는 일이다. 당신은 이를 통해 실타래처럼 얽힌 일속을 꿰뚫어 보는 힘을 기른다. 이와 같은 작업에 흥미를 갖고 반복하면,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능력자가 된다. 여러 복잡한 사안 속에서도 당신은 그 핵심을 꿰뚫게 된다. 이 작업을 즐기다보면 어떤 일에 대해 긴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이 어떤 이미지나 인상을 갖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깨닫는다. 깨닫는다는 것은 그 일을 극복할 수 있는 동기를 만났다는 의미이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신문 읽을 겨를조차 없을 때, 두텁고 진한 헤드라인만 쓱쓱 읽어가면서 그 내용을 짐작한다. 좋은 헤드라인은 몇 자 안되는 글 속에 기사의 핵심이 들어있다. 깨알 글씨를 읽지 않고도 내용이 이해된다. ,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자신의 경험을 기사처럼 구구절절 써보자는 게 아니다. 내가 경험한 사건을 두고 그 내용의 압축 문장을 만드는 것이 헤드라인 뽑기.

나는 일기 쓰기 싫거나 나름대로 중요 사건을 소상히 적기 어려울 때, 이런 방법을 쓰곤 한다. 어릴 적 방앗간에서 참기름을 짜고 나면 발생하는 새까만 쟁반 같은 깻묵을 떠올려보라. 헤드라인은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 내용을 극심하게 쥐어짜서 만든 까만 깻묵 같은 한 줄이다. 그렇게 쥐어짰음에도 그 참기름 깻묵에서는 진한 내음이 풍겨난다. 수많은 참깨들의 생명력이 싱싱하게 살아 있는 참기름 깻묵 같은 글쓰기.

당신의 오늘 하루를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어떻게 될까. 하루 동안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만난 사람들, 먹은 음식, 나눈 이야기, 걸은 거리, 시선이 간 나무들, 지나가는 차량들, 거리의 소음. 이것들을 한 줄로 압축하여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처럼 쓴다면 어떻게 쓸까. 나는 오늘 하루를 이렇게 압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배탈로 이어진 저녁 과식.”

나는 지금 과식으로 인한 배앓이를 하고 있다. 주말 오후를 맞아 부부동반 친구들이 맛집으로 유명한 동태탕 집에 모였다. 싱싱한 동태와 애(동태의 내장) 맛에 흠씬 빠져들었다. 일행이 많으면 개중에는 반드시 소위 손 큰분이 있다. 음식이란 자고로 실컷 먹고도 남아야 한다는 지론으로 마구 주문하는 분. 결국 나도 소화력의 임계점을 넘긴 것이다. 그런 사연을 헤드라인처럼 뽑아본 것이다. 이 한 줄을 뽑아내는 동안 오늘 만난 사람들, 주문한 술 종류, 술병 위치, 주문 순서 따위가 머릿속을 지나간다.

이런 식으로 지나간 당신의 1년을 한 마디로 적어보라. 지나간 사계절을 압축하여 헤드라인을 뽑아보는 건 어떤가.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딱 한 줄로 드러낸다면 또, 무슨 말이 나올까.

나의 정서연대표 작성

내 삶이 만약 한 곡의 음악이라면 감정이나 정서는 뭘까. 감정이나 정서는 아마 악보의 음계에 해당할 것이다. 삶은 그 음계에 따라 연주되는 소리의 높낮이, 모양의 높낮이, 냄새의 높낮이, 맛의 높낮이, 촉감의 높낮이를 통칭하는 표현 아닐까. 당신의 삶을 강물로 비유하면, 바위에 부딪혀 깨지는 격류일 때도 있고, 홍수일 때도 있고, 낮고 순해져서 햇빛 맑은 섬진강 하오처럼 거대한 물비늘을 난반사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내 삶이 그 강이라면 감정이나 정서는 그런 물비늘이 아닐까. 어떤 심술궂은 신이 있어, 튀어 오르는 강물 빛을 모두 거둬간다면 그래도 강의 자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당신의 삶에서 감정이나 정서를 모두 걸러낸다면 자신의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까. 당신이 당신을 알아보기나 할까.

삶과 정서는 강과 물비늘의 관계다. 한 사람의 감정은 물고기의 비늘이고, 장수의 갑옷이며, 젖먹이의 옹알이, 강아지의 눈빛, 해거름의 산그늘이다. 슬픔, 기쁨, 두려움, 외로움, 좌절, 즐거움, 암울함, 막막함, 우울감. 삶은 이런 정서들과 순간순간 뒤섞여 한 곡의 인생가를 만든다.

나의 정서연대표는 내 영혼의 노트 어딘가에 끊임없이 새겨지는 생의 악장을 노출해보자는 제안이다. 당신과의 접촉 조건에 따라 놀람, 기쁨, 좌절, 평안 등의 리듬을 타면서 생의 곡절을 이어주는 감정은 심지어 꿈의 켯속까지도 파고 든다. 당신은 자나 깨나 정서 덩어리다. 당신의 삶에서 정서를 빼는 것은 노을빛 섬진강에서 물비늘을 빼는 일이다. 당신이 살아온 날의 악장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때 상황이 어렴풋이 또는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것을 떠받치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기억하는 모든 사건과 한동안 동행했던 정서들. 그것들을 낙서처럼, 혼잣말처럼, 고백처럼 드러냄으로써 내 삶의 느낌이 어떤 생애를 만들어 가는지 거리 두고 바라보는 일. 나의 정서연대표 작성이다.

- 자신이 살아온 연대기에 따라 당시의 대표 정서를 하나씩 적어본다. 1년 단위나 반년 단위 또는 시기별 단위로 쪼개면서 적어가기

- 오늘에서 어제로, 어제에서 그제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서 떠오르는 기억에 따라 정서 이름표 붙이기

- 자신이 아는 사람을 떠올리며,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기

- 자신이 애착하는 물건에 대한 나의 정서 이름표 붙이기

- 오랜 세월 이어지는 사연을 두고 (사건 자체는 내버려 두고) 감정의 흐름만 적어보기

- 오늘 하루, 아침부터 지금까지 스쳐간 감정들 채집하기

감정은 변덕스럽다. 방금 전에 검정색 감정이 금세 푸른색이 된다. 심리학에 15초의 법칙이 있다. 하나의 감정이 치솟아 정점을 찍는 데 15초가 걸린다는 것이다. 15초 중, 3초만에 감정의 갈래는 결정된다. 긍정심리학자 데이비드 플레이(David Fleay)3초간이라는 저서에서 하나, , 셋 세는 동안 감정의 갈래가 정해진다고 한다. 화가 나면 화의 갈래로, 기쁨이 일면 기쁨의 갈래로 접어드는 데 3. 그 감정의 정점은 15. 그리고 다른 감정으로 변한다. , 이런. 고작해야 15초짜리 정서 수명이라니.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떤 사건과 함께 감정이 솟구치거나 가라앉은 순간 화인(火印) 같은 흔적이 나 어딘가에 새겨진다. 시간이 흘러 한 사람의 기억 속에는 육탈된 시신처럼 이야기는 털려나가고 감정이라는 유골만 남는다.

이런 대화가 있다. “그 사람은 아냐!” “?” “무조건 싫어!” “5년 전에 딱 한 번 본 사람 아냐?” “그래,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싫은 건 맞아.” 이쯤 되면, 우리 삶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모호해진다. 사건이 진실인지, 남은 감정이 진실인지, 분명한 것은 당시의 사건이나 기억에 비해서 느낌 수명은 지겹도록 길다는 것이다.

정서연대표 작성은 숨은 감정의 발굴 작업이다. 세월의 골짜기에서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상흔을 발굴하는 일이다. 기억 하나를 따라 어렴풋이 더듬고 있을 때, 낯선 감정이 불쑥 일어난다면 당신에게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불귀(不歸)의 정서를 만난 것이다. 그것을 햇빛 아래 정갈한 문자로 드러낸다면, 당신의 감정은 비로소 갈 곳으로 간다. 어디일까? 본래 왔던 곳, 그쯤이 아닐까. 안갯속 같은 기억이어도 좋다. 마음의 시선을 그곳에 두고 떠오르는 사연들을 보면서, 지금의 감정을 적어본다.

1982(8) : 두려움, 외로움, 놀람/1983(9) : 놀람, 서러움, 환희, 아쉬움, 수치심, 아득함

연대별 감정을 적거나 어떤 인물에 대한 감정을 떠올리거나 마찬가지다. 당신이 주로 어떤 감정을 호명하는지 살펴보라. 자주 불려 나오는 감정어에 주목해보기. 그것이 혹시 당신의 감정 습관은 아닌지, 단정 짓기 망설여지면 친구들 단톡방에 얘깃감으로 넌지시 넘겨보시라. 요즘 내가 좀 외로워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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