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에서 또 다른 나를 얻다
무아에서 또 다른 나를 얻다
  • 남혜경 전문코치
  • 승인 2019.04.08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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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리셋 하고 싶다

“성급하고 거칠고 공격적인 싸움닭 같은 내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데 이 조직에서는 힘들어요. 리셋 하듯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30대 후반의 웹디자이너 은옥 씨는 6개월째 전직을 위해 여러 군데 경력직으로 응시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두 군데는 면접까지 통과했지만 결정을 앞두고 망설이다 계약을 하지 않았다. 연봉이 높으면 업무 비중이 과하게 여겨졌고, 근무환경이 괜찮다 싶으면 대우가 흡족하지 않았다. 업무의 성격, 직무 환경, 통근 거리 등의 조건을 그녀가 말할 때마다 무엇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는지 그 기준이 때마다 다르다는 것을 코치는 알아챘다.

변하고 싶을 때 갈등 시작돼
조건에 따라 ‘나’의 상태 달라져
무아·연기의 세계에 끌어들여

주변의 존재도 함께 변화를…
그녀는 ‘나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이럴 때는 질문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 직장을 바꾸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여기가 첫 직장입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녔더니 자극도 없고 모든 게 너무 익숙해요. 변화가 필요합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일까요?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일을 했으면 좋겠고, 사무실 분위기도 달랐으면 좋겠고, 사람들도 새로운 얼굴이면 좋겠어요.”

은옥 씨가 변화를 말할 때 세 번이나 되풀이한 키워드는 ‘지금과는 다르다’ 이다.

-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서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인가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나만 바라봅니다. 회의를 할 때도 내 지시만 기다려요. 새로운 아이디어나 전략을 말하는 팀원이 없어요.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자니 힘들고 재미도 없고 늘 마음만 쫓깁니다.”

그녀는 이 말을 할 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는 듯이.

- 그런 생각을 팀원들은 알고 있을까요?

“ 몇 번 얘기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은옥 씨는 학교 선배가 창업한 웹 개발업체의 수석 디자이너다. 경쟁이 치열한 이 업계에서 오너와 함께 영업부터 디자인 실무까지 진두지휘하며 회사를 키워왔고 어디 가도 통할 만큼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 과정은 빠른 의사결정과 추진력을 필요로 했고, 그녀는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몇 년 전부터 심한 피로와 외로움이 밀려왔다.

“회사 업무가 아닌 일상에도 그런 성격이 배어 나와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잠시도 기다리지 못합니다. 일이 없어 노닥거리는 시간이 가장 힘들어요. 친구들과의 약속 자리에도 늘 먼저 가서 기다립니다. 긴요한 약속이 아닌데도 교통체증으로 늦게 되면 곧바로 초조해져요. 학생 때는 독서를 좋아해 늘 핸드백에 책을 넣어 다녔는데 업무 참고용이 아닌 책을 읽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함께 즐거워하며 일하기보다, 경쟁하고 싸우는 데 익숙한 내 모습에 스스로 지치고 흉하게 느껴져요. 뭘 바라며 이렇게 안달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다가 일 중독자 솔로로 40대를 맞을 것 같아 끔찍합니다.”

- 변화된 후를 상상해보시면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보다는 차분하고 사람들과 기분 좋게 소통하고 회사 일 말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고, 주말에는 여행하고 책을 읽으며 평화로운 기쁨을 느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급하고 어디서든 참지 못하고 나서는 해결사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요.”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 무아의 수많은 나

지금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변화를 바라는 내가 있다.

만나는 사람도 바꾸고 싶고, 내가 있는 장소의 색깔과 느낌도 바뀌었으면 좋겠고 대화를 나누는 얼굴도 다른 모습이고 그 대화의 내용도 달랐으면 좋겠다.

변하고 싶을 때 갈등이 시작된다.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까? 내가 먼저 변해야 할까? 살아온 시간이 얼마인데 내 모습을 바꿀 수 있을까? 그래봤자 본질이 어디 갈까. 사람은 안 변한다잖아.

이럴 때 깨우치라는 붓다의 가르침이 무아(無我)이다. 모든 사물에는 고유한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불변하는 실체인 나는 없다는 것이다. <무아경>에 따르면, 인간의 물질과 정신을 구성하는 오온(五蘊)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자각하지만 그 의식과 느낌이 실제 변하지 않는 주체로서의 자아는 아니다.

무아의 해석에는 여러 갈래가 있고 그 진정한 의미를 온전히 깨닫기는 어렵다. 주변의 조건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때마다 모습이 다른 나로 존재한다는 의미로서 무아를 받아들인다면, 나를 둘러싼 수많은 거울에 각기 다른 내가 투영된다.

무아는, 연기(緣起) 법과도 맥이 닿아 있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서로 의존하여 상호 작용으로 일정한 조건 아래 일정한 움직임과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많은 내면의 나는 어떤 조건과 만났을 때 보이는 나가 된다. 나무가 햇빛과 물과 바람의 조건과 성질을 받아들여 초록으로 빛나고 저마다 꽃을 피우듯이 내 안의 모든 성질도 수많은 나를 둘러싼 모두를 받아들인 결과다. 자연이 나무를 채워 꽃을 피우듯이 나도 주변의 많은 이들과 상호작용으로 나의 모습을 채우고 형성하여 거울에 보일 것이다.

나를 바꾸어 다른 그들을 만나는 방법

막히는 길마다 늘 붓다의 말씀을 따라 걸으면 길이 나타난다.

다시 은옥 씨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녀는 회사에 입사한 이후 자기를 둘러싼 조건과 연기의 결과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신속하게 결정하고 추진력 있게 행동해야 했고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아 성과를 내야 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에 매달려서 모든 에너지를 쏟다 보니 다른 사람과의 깊은 교감은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그녀는 저돌적으로 때로는 공격적으로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했고 이런 모습은 사무실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와도 이어졌다.

지난 10년간의 이런 모습을 은옥 씨는 자신의 실체라고 여기게 되었다. 다른 모습을 거울에서 한 동안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기 속에 수많은 모습이 있다면 이제는 다른 자신을 보고 싶어졌다.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다른 모습을 구현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그녀는 자신과 조건 지워진 모든 환경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지금 여기를 떠나야만 자신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직원들은 오랜 시간 보아온 나의 모습만을 보려고 할 것입니다. 늘 해오던 방식으로 그들은 받아들이고 판단하겠지요. 스스로 답을 구하라고 해도 내가 답을 줄 때까지 아무런 논의도 결정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겠죠. 책임도 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이들과 새로 시작하고 싶어요.”

-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면 어떤 모습이 되고 싶습니까?

“출근하면 팀원들에게 할 일을 확인하며 채근하기 전에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좋은 하루가 되자고 말하겠어요. 한 사람씩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고 그날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먼저 말하도록 물어보고 싶네요.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들으면서 가끔 되묻거나 확인하는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것입니다. 오, 떠올리니 멋지네요! 그들이 더 나은 길을 찾도록 돕는 리더로서의 제 모습이 보입니다.”

은옥 씨에게는 다른 선택도 있을 수 있다. 같은 조건에서도 스스로 자신을 바꿈으로써 자신과 상호 의존으로 나타날 주변의 존재들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그들을 무아와 연기의 세계로 적극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 이 직장에서 변화를 먼저 시작한다면 어떠세요? 그들도 변화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을까요? 답이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던 질문이었다. 침묵하며 생각하던 그녀는 쉽지는 않겠지만 한번 시도할 만한 가치는 있겠다고 말했다.

- 여기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신가요?

은옥 씨는 미션을 선언문으로 정리했다.

“그들의 말을 듣겠습니다. 경청하며 기다리겠습니다. 해결책을 먼저 내놓지 않겠습니다. 그들의 뜻에 따라 행동하게 하면서 돕는 리더가 되겠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3개월을 지나보고 팀원들의 태도에 변화가 시작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새 직장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 그 밖에 자신을 위해 해보고 싶은 건 없나요?

“하루에 한 시간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 때리며 있고 싶어요, 그냥 햇빛과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하품을 하거나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그런 모습으로 말이죠.”

어제와 오늘의 나가 다르다면 어떤 나가 진짜라고 고집할 수 있을까.

그녀의 또 다른 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3개월 뒤 리마인드 코칭을 약속하고 우리는 ‘나를 바꾸기’ 코칭 세션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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