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믿음 편 13

한 조직의 리더가 참모의 구체적인 일까지 세밀히 챙긴다면 어떻게 될까? 겉으로야 잘 돌아가는 것 같지만, 직원들은 수장이 시키는 일만 하기 때문에 조직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리더는 조직의 이념과 방향을 제시하고 참모들이 마음껏 일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혹여 실수할 경우엔 그 책임까지 질 줄 알아야 한다.

서방정토의 수장인 아미타불은 바로 이런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관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이념과 방향에 따라 구체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핵심 참모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 아미타불과 관음보살께 귀의한다는 뜻을 담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음보살은 중생들의 신음소리(世音)를 보고(觀) 고통을 해결해주는 자비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관음은 늘 중생들의 고통과 함께 하기 때문에 힘들 것 같지만, 뒤에서 든든하게 뒷받침해주는 아미타불이 있기 때문에 일이 고단하지 않다.

관음(觀音)은 산스크리트어 ‘아바로키테슈와라(avalokitevara)’를 한자로 옮긴 말이다. 현장(玄唆, 602~664) 이전의 구역에서는 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로, 신역에서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로 번역되었다. 오늘날 이 두 번역이 함께 쓰이고 있지만, 불자들에겐 관음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관음보살이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함께 아미타불을 보좌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관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보통은 6관음이 일반적이지만, 33신(身)의 자유자재한 모습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6관음은 아귀를 구제하는 성관음(聖觀音)이 본신이고,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천수관음(千手觀音), 축생을 구제하는 마두관음(馬頭觀音), 아수라의 중생을 구제하는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인간의 고통을 구제하는 준제관음(准提觀音), 천상의 고통을 구제하는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등이 있다. 관음이 다양한 모습의 아바타로 나타나서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 것이다.

관음보살은 <화엄경>이나 <법화경>, <관무량수경> 등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자비심이라는 공통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다. 자비심 없이 중생을 구제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수천안관음(天手天眼觀音)이 천개의 손과 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십일면관음의 얼굴이 11개나 되는 것도 모두 중생들의 고통을 자세히 살피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중생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관음보살을 지성으로 부르면 언제 어디서든 즉시 나타나 구해준다는 믿음이 담겨있다. 이런 점에서 관음신앙 역시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불교의 이념이 잘 드러나고 있다.

<화엄경>에는 관음보살이 향기로운 백화(白花)가 만발한 보타낙가(Potalaka 補陀洛迦) 산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낙산사의 낙산은 보타낙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의상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곳 바닷가 동굴에서 간절히 기도한 끝에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낙산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의상 역시 이 땅이 바로 관음보살이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낙산사를 비롯하여 강화도 보문사(普門寺), 남해 보리암(菩提庵) 등 유명한 관음도량이 많다. 관음도량이 많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바로 관음보살의 주처(住處)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우리들이 자비심만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 땅을 정토로 장엄할 수 있지 않을까.

수행이 잘 익어 가면 나의 고통이 아니라 다른 이의 고통이 보인다고 한다. 불교의 위대성은 다른 이의 고통을 볼 수 있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그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관음보살이 때로는 물병을, 어느 곳에서는 호미를 들고 서있다. 자비의 화신다운 모습이다. 오늘도 나는 부처님 앞에서 자비심을 잃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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