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 소멸’ 발원하며 동굴 걷다

34번 키요타키지의 계단 순례의 입구. 계단 순례는 일본불교 특유의 신앙 풍습으로 법당 지하나 천연 동굴을 돌고 나오는 것으로 업장 소멸을 위해 이뤄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츠야도를 청소한다. 벽에 붙은 주의문에 눈이 간다. ‘화기엄금’, ‘츠야도는 깨끗이 써주세요’ 등의 글들 사이로 조그맣게 ‘바퀴벌레 주의’라고 적혀있다. 어쩐지 새벽에 으슬으슬해서 일어났을 때 커다란 바퀴 한 마리가 내 신발 위에 있더라니….

청소를 마치고 화장실을 갈 겸 나와서 사찰을 슬슬 둘러본다. 셋케이지는 코보 대사가 세운 절로 처음 이름은 코후쿠지(高福寺)였다고 한다. 전국시대에 임제종의 고승인 켓포 화상(月峰和尙)이 중창하면서 선종 사찰이 되었다. 셋케이지는 시코쿠 88개소 중에 단 3곳뿐인 선종 사찰 중 한 곳이다.

‘맑은 폭포’란 키요타키지엔
계단순례·역수탑 체험 가능
법당 지하 걸으며 업장 소멸
발원하는 日 특유 ‘계단순례’
역수탑, 韓 ‘생전예수’ 유사해


화장실에서 용무를 해결하고 나오니 할머니들이 버스에서 내려 가지런히 본당 앞에 선다. 오늘의 첫 단체 순례자들인 듯하다. 할머니들은 다른 순례자들처럼 독경을 하시는 대신 느리면서도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셨다. 바로 ‘고에이카(御詠歌)’다.

옛날엔 문맹률이 높아 독경을 할 줄 몰랐던 순례자들이 각 사찰의 본존을 찬탄하거나 사찰의 고사를 기리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독경을 대신하였다. 하지만 점점 문맹이 줄어들고 노래 대신 독경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지금은 오히려 고에이카보존회나 전승회가 생기고, 전문적으로 배운 이들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들은 악보를 보시면서 노래를 하셨다. 가사라곤 단 한 문장뿐인데 천천히 부르니 3~4분가량 이어졌다.

“여행 중에 굶주릴지라도 지금은 코후쿠지에서, 앞으로 기다리는 새벽의 달이여.”
고난을 무릅쓰고 지금 코후쿠지에 이르렀다. 후에 이 사찰은 켓포(月峰)화상이 오실 것이다. 라는 의미를 담은 노래다. 고에이카의 내용이나 문장이 모두 중세 일본어로 되어 있어 쉽게 뜻을 알아채기 힘들지만 의미를 되새길만한 노래들이 많다.

짐을 챙겨 나와 납경을 받았다. 납경소 직원이 어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납경을 해준다. 7시가 조금 넘어 다음 사찰인 33번 타네마지(種間寺)로 향했다. 하늘이 흐리고 가랑비도 내리기 시작한다. 우비를 꺼내 입으려다 그리 심하지 않아 그냥 맞고 가기로 하고 계속해서 걸어간다. 다행히 평지길이 이어져 그리 힘들지도 않고,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타네마지의 본존은 약사여래불로, 백제의 장인들이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오사카의 시텐노지(四天王寺)를 건립하기 위해 일본으로 초빙됐던 장인들이 귀국하던 도중 푹풍우를 피해 잠시 이곳에 머물렀고, 무사히 백제에 돌아가길 발원하며 조성했다는 것이다. 후에 코보 대사께서 이곳에 오셔서 사찰을 건립해 불상을 모시고, 당에서 가져온 오곡의 종자를 땅에 심었다는 것에서 사명에 ‘씨앗(種)’이란 글자가 들어간다.

본당에서 예불을 올리고 대사당을 향하는데 담장 너머로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 소리에 이끌려 담 너머를 보니 연꽃이 활짝 핀 연못이 있다. 아침에 간간히 내린 비에 젖어 한층 더 아름다웠다. 한참을 연꽃을 보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 대사당에 예불을 올리고 납경을 받았다. 오늘의 첫 도보순례자라고 과자 한 봉지를 오셋타이 받았다.

오늘은 조금 서둘러서 35번 쇼류지(靑龍寺)까지 갈 계획이다. 쇼류지 위에 있는 ‘국민숙사 토사(國民宿흂 土佐)’에서 묵는 것이 오늘의 목표. 염불보다 잿밥 격이 된 오늘의 목표지만 오래전부터 순례자들의 입소문이 난 곳에서 한 번 묵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듯했다.

34번 키요타키지(淸瀧寺)로 향하는 길은 마을들을 통과해 강둑을 따라 걷는 호젓한 길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토사시의 중심부를 관통해 걷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갑자기 도시를 통과하는지라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순례자들을 위해 여기저기 빨간 화살표가 붙어있다. 평지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시작되는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간다. 경사가 있지만 길이 잘 닦여있어 힘들지는 않다. 키요타키지의 본존도 약사여래불. 8세기 경에 쿄키 스님이 조성해서 봉안하고, 사찰을 세운 것이 시작이다.

후에 코보 대사께서 이곳에서 오곡의 풍작을 기원하며 흙으로 단을 세우고 7일간 기도를 올리셨는데 회향하던 날, 석장으로 불단을 찌르자 맑은 물이 샘솟아 폭포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찰의 이름이 ‘키요타키(맑은 폭포)’가 되었다. 이 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른 적 없이 마을을 향해 흘러가 농지의 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 키요타키지는 재미있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계단순례(戒壇巡り)’이고, 다른 하나는 신뇨(眞如) 스님의 ‘역수탑(逆修塔)’이다. 계단순례란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신앙의 하나이다. 다른 말로는 ‘태내순례(胎內巡り)’라고도 한다.

법당의 지하나 천연동굴 등 어둡고 좁은 험로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것인데, 이것은 어머니의 자궁 혹은 저승을 다녀온 것을 의미해 업장을 소멸하고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업장이 두터운 사람은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전승도 있다.

키요타키지에는 본당 앞에 서있는 약사여래불의 좌대 밑에 계단순례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어 한 바퀴 돌고 나올 수 있게 되어있다. 조명 하나 없는 캄캄한 좌대 밑의 길을 손으로 더듬어 가면 마지막에 작은 불단을 만나게 된다. 불단에 켜진 초 두 개가 계단순례의 유일한 조명이다. 어둠 속에 마음을 졸이다가 보이는 불빛이 어찌나 반갑던지! 새삼스레 착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역수탑 역시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풍습이다. ‘역수(逆修)’란 거꾸로 닦는다는 뜻인데 살아 생전에 저승의 공덕을 닦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생전예수(生前預修)와 같은 것인데 우리나라는 재를 지내지만, 일본은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 것이 역수탑의 개념이다.

이 탑의 주인인 신뇨 스님은 코보 대사의 직계 제자로, 원래는 태자였다. 역모사건에 연계돼 폐위된 후 출가한 신뇨 스님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코보 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그 배움에 부족함을 느껴 코보 대사의 입적 후에 당으로 유학을 결심했고, 당으로 유학을 떠나던 중 스승인 코보 대사의 유적을 참배하기 위해 키요타키지에 올라 자신의 역수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지역 전승에서는 이때 신뇨 스님에 의해 88개소가 정비되었다고도 한다.

신뇨 스님은 역수탑을 세우고 당으로 떠났다. 그러나 당에서 스승을 찾지 못해 인도유학을 결심하고 해로로 인도를 향하던 중 지금의 말레이시아에서 입적하셨다. 이후 이 탑은 신뇨 스님의 유일한 자취가 됐다. 탑이 모셔진 산기슭은 성지로 여겨져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문이 굳게 닫혀있다. 납경소에 물어보니 사찰의 스님들도 감히 들어가지 않으며, 오래전 문화재 지정 조사를 위해 한번 열린 후로 공식개방은 없었다고 한다.

아침에 걷기 시작했을 땐 쇼류지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여유롭게 갈 수 있을 듯해서 발걸음을 조금 늦춘다. 35번을 5km 정도 남겨두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미숫가루 반죽에 생강편과 건살구. 자칭 ‘순례자 정식’이라고 부르는 식사다. 점심을 먹으면서 ‘국민숙사 토사’에 전화를 걸어 1박을 예약했다. 마침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가격이 있다기에 순례자임을 밝히니 35번에 도착해 전화를 주면 픽업을 나온다고 한다.

점심을 해치우곤 다시 길을 나선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트인 경관에 멀리 쇼류지가 있는 요코나미 반도가 보인다. 옛날엔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35번을 다녀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다리가 걸려있다. 만약 35번을 순례하고 다음 순례지로 가려 했으면 다리 앞의 상점에 짐을 맡겨 두는데, 이번은 35번이 오늘의 끝이니 즐겁게 짐을 짊어지고 간다.

35번 쇼류지는 코보 대사가 당에서 유학했던 장안의 청룡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전설에는 코보 대사가 중국의 포구에서 절을 세울 만한 땅을 기원하며 독고저(獨股杵)를 일본을 향해 던졌는데, 그 독고저가 이곳의 소나무에 걸려 빛을 내뿜는 것을 찾아 세운 것을 시작으로 전한다. 그래서인지 산문의 옆으로는 코보 대사의 은사인 혜과 아사리를 모신 혜과당(惠果堂)과 스님의 부도가 있다.

참배를 마치고 숙소에 전화를 거니 5분 뒤에 차가 마중을 나왔다. 산 정상에 자리한 숙소에 들어가 순례자들을 위한 도미토리 방을 안내 받는다. 오늘 묵는 순례자는 나를 포함해 3명.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이다. 데스크 직원이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노천탕을 꼭 가보라며 추천해 줬다. 경치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곳의 노천탕에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어 전세 낸 것 같은 노천탕의 경치는 과연 최고였다. 탕 아래로 드넓은 태평양이 펼쳐졌다. 날이 조금 흐린 게 아쉬웠지만 30km를 고생해 걸어온 보람이 있다.

단 하루를 걸었을 뿐인데 다양한 불교설화와 아름다운 경관에 젖을 수 있는 시코쿠 순례길. 앞으로의 여정은 또 어찌될지 기대하면서 눈앞의 경치를 즐기는 시간을 만끽했다.

TIP
- 33번 셋케이지는 도착 전날까지 문의하면 본당의 본존불을 친견할 수 있으나 경우에 따라 비공개일 수도 있다.
- 34번, 35번 사찰 모두 츠야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근처에 가게가 없기에 먹을거리는 각자 마련해야한다.
- 순례기에 나온 국민숙사 토사는 2017년에 영업을 중단하고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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