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전국노래자랑 ‘미쳤어 할아버지’ 지병수(77) 어르신

최근 KBS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연예인보다 더 유명해진 '미쳤어 할아버지' 지병수 어르신. 특유의 유쾌함과 밝은 미소, 화려한 춤사위는 소위 완벽한 3박자다.

최근 2~3주 내에 공중파 방송을 탄 일반인 중 가장 큰 유명세를 얻은 사람은 누구일까? 단언컨대 기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대상은 바로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를 부르며 전국을 발칵 뒤집은 일명 할담비지병수(77) 할아버지다. 호소력 짙은 미소로 소위 박자를 갖고 논지병수 할아버지는 TV출연 이후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스타가 됐다. 며칠 전에는 꿈에 그리던 손담비와의 합동공연을 경험하고, 광고업계의 출연 제의까지 받으며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 하나는 지병수 할아버지가 누구보다 신심 깊은 불자라는 점이다. 정관 스님이 관장을 맡은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을 애용하고, 오래 전부터 사찰을 찾아다니며 불심을 키워온 지병수 할아버지 특유의 유쾌함은 부처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젊을 때 빚보증에 시달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살아가면서도 남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지병수 할아버지를 43, 종로노인복지관에서 인터뷰했다.

나는야 아이돌 노래 전문가

지병수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복지관을 찾았다. 지병수 할아버지는 TV출연 이후 지금까지 꽤 많은 인터뷰를 소화한 것을 알기에 한편으론 고령의 어르신에게 죄송한 마음이, 다른 한편으론 연예인을 만나는 듯한 들뜬 마음이 교차했다. 약속장소인 복지관 세미나실 문이 열리고 지병수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 TV에서 본 모습 그대로다.’

지병수 할아버지는 전국노래자랑 녹화 때와 같은 옷을 입었다. 체크무늬 재킷에 까만 가디건, 그리고 스트라이프 셔츠. 방송과 다른 모습을 꼽자면 연둣빛 넥타이가 빠진 것 하나였다. 방송 이후 열흘가량 지난 시점, 그간 지병수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물어봤다.

요즘은 인터뷰나 방송출연 요청이 많아서 눈코 뜰 새 없어요.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죠? 남는 시간에는 복지관에서 시간 맞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요. 방송 나가기 전까진 잘 몰랐는데 주위 사람들이 나보고 항상 웃는 얼굴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그렇다는 걸 이제 알게 됐어요. 감사한 일이죠.”

종로노인복지관장 정관 스님이 지병수 할아버지에게 선물한 '옴'자 장식. 할아버지는 이 장식을 허리춤에 차고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올랐다.

전국노래자랑 본방송은 편집을 거치기 때문에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녹화 당시 지병수 할아버지는 허리춤에 불교의 진언인 글자를 새긴 장식을 차고 있었다. 이 장식은 춤사위와 함께 휘날렸고, 이를 본 MC 송해 선생이 무엇인지 물어봤단다.

그때 복지관 관장스님이 선물로 준 자 장식이라고 설명했어요. 스님께서 평소 이 장식을 꼭 차고 다니라고 하셨고, 저도 장식이 저를 보호해주는 부적이라고 믿거든요.”

편집 때문에 방송으로 볼 순 없었지만 국내를 대표하는 불자 연예인인 송해 선생과 노래자랑 참가자 지병수 할아버지의 투샷(two-shot)을 잠시 상상해보니 흐뭇했다.

지병수 할아버지가 TV에서 보여준 노래는 손담비의 미쳤어와 나미의 인디안 인형처럼’ 2곡이다. 하지만 이날 지병수 할아버지는 편집됐지만 박진영의 허니도 선보였다. 예선심사에서도 관객 반응이 좋아 이 3곡을 내리 뽐냈을 정도로 할아버지의 끼는 대단했다. 방송에서 보여준 곡 외에도 소화 가능한 노래들이 있는지 궁금해져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돌 노래제목이 줄줄 나왔다.

카라 미스터’, 티아라 러비더비’, 브라운아이드걸스 아브라카다브라. 젊은이 노래를 좋아해요. 내 또래들은 다 뽕짝 좋아하는데 나는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져서 아이돌 노래가 좋더라고. 따로 동영상을 보고 연습하진 않는데 TV에서 몇 번 본 동작에다가 느낌 오는 대로 만들어 춤춰요. 복지관에서 가요교실 다니며 공부한 것도 도움이 됐어요.”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77세 어르신이 TV 몇 번 보고 아이돌 안무를 따라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사실 지병수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전통무용을 취미로 배웠다. 인간문화재 이매방 선생에게 사사한 임이조 한국무용가가 지병수 할아버지의 스승이다. 이 덕분에 지병수 할아버지는 다른 후학들과 일본을 오가며 무용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사업 실패하면서 임이조가 형님은 끼가 많으니까 학원에서 애들 관리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취미 삼아 춤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18년 동안 하게 됐어요.”

지병수 할아버지는 갑작스런 안무 요청에도 거침없이 춤실력을 발휘했다. TV에서 화제가 된 손담비 '미쳤어' 안무가 기자의 눈앞에 펼쳐졌다.

기도는 내 삶의 버팀목

대중은 지병수 할아버지의 환한 미소와 긍정적인 모습에 환호를 보내지만 그 이면에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아픔이 서려있다. 수년간의 옷 장사는 끝내 폐업하게 됐고, 전재산으로 마련한 아파트는 친척 빚보증으로 날아갔다. 가정도 꾸리지 않은 상황에서 할아버지는 모든 어려움을 오롯이 혼자 이겨내야만 했다. 지금은 기초수급생활대상자로 매월 50만원 정도의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이마저도 30만원은 월세로 낸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곡절도 많았던 지병수 할아버지가 좌절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 즐거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데는 기도의 힘이 컸다.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지병수 할아버지는 어려서부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절에 드나들었다. 전북 김제평야에서 농사를 지은 부모님 영향을 받아 지병수 할아버지는 혼자서 금산사를 자주 다녔다. 서울에 정착한 뒤로는 도선사와 보문사를 재적사찰로 신행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엄청난 불자였죠. 어머니는 집 근처 작은 암자에 다니셨는데 저는 그냥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거든요. 나중에는 아는 분 따라서 버스 타고 금산사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과 부처님 도량이 좋아 불교에 귀의한 지병수 할아버지는 집안에 기도방을 만들어놓을 정도로 신심이 깊다. 따로 불상을 모시진 않았지만 한쪽엔 반야심경을, 다른 한쪽엔 부모님 사진을 두고 매일 아침 기도를 올린다. <금강경><천수경>, <광명진언>도 자주 듣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는 기도는 <반야심경>이다.

남들한테 많이 당하면서 살았는데 불교에서 힘 얻었어요. 돈에 집착하지 않게 됐고요. 잃어버린 것에 마음 쓰면서 괴로워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죠. 이젠 기도가 습관이라 빼먹고 싶어도 못 빼먹어요. 허허.”

지병수 할아버지의 방송출연 이후 종로구가 지역구인 정세균 국회의장과 김영종 종로구청장 등은 할아버지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바빠진 일정으로 건강을 잃지 않도록 당부도 잊지 않았다고. “건강하게 복지관 다니면서 아프지 않는 게 꿈이라는 지병수 할아버지는 인터뷰 말미에 젊은이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젊은이들이 길을 걷다 저를 보면 미쳤어 할아버지?’라고 물어봅니다. 할아버지 웃는 모습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면서요. 사는 게 그만큼 힘든가봐요. 그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어른이 되기도 하고요. 욕심 없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일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일은 반드시 생겨요. 뻔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마음 비우고, 내려놓으라는 말이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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