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첫걸음

만해 한용운 지음/마가스님 엮음/숨 펴냄/7,900원

총독부와 마주하기 싫어 거꾸로 햇빛을 받을 수 없게끔 거처를 지었던 만해 한용운·불교의 개혁을 이끈 탁월한 승려이자 아름다운 시인 그리고 뜨거운 독립운동가였던 그의 정신은 단순히 일제에 대한 저항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적 질서를 위한 노력이었다. 이 젊은 정신이 계속 이어져 오늘날의 우리에게 절실한 울림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만해 한용운의 글을 새롭게 엮었다.

마가 스님 편찬으로 새롭게 듣는
만해 스님의 뜨거운 육성과 시

일제 식민지 치하서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잃은 슬픔과 절망에 빠지지 않고 밤하늘의 별처럼 찬란히 빛나는 정신을 유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던 이유는 한용운의 ‘젊은 정신’ 때문이었다. 일제와 일체의 타협을 거부한 그의 불굴의 정신은 무척이나 뜨겁고 올곧았다. 마가 스님은 만해 한용운의 가르침으로 내 밖의 평화가 내 안의 평화에서 시작됨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어려움이더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늘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했다. 힘 잃고 방황하는 우리 젊은 세대가 이 책을 벗 삼아 소중한 삶을 지키며 내 마음의 평화의 세계로 ‘첫걸음’을 내딛었으면 한다.

만해 정신에 대하여 조지훈 시인은 “혁명가와 선승과 신인의 일체화 이것이 한용운 선생의 진면목이요, 선생이 지닌 바 이 세 가지 성격은 마치 정삼각형 같아서 어느 것이나 다 다른 양자를 저변으로 한 정점을 이루었으니, 그것들은 각기 독립한 면에서도 후세의 전범이 되었던 것이다”라고 평했다. 김재홍 교수도 “투철한 독립투사이자 혁혁한 민족운동가로서, 높은 경지의 선승이자 실천적 종교가로서, 또한 문학사 불멸의 시집 〈님의 침묵〉의 시인으로서 만해는 민족사 초유의 입체적 성격을 지닌 ‘천석종(千石鍾)’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해는 작게 치면 작게 소리가 나지만 크게 치면 칠수록 큰 소리로 울리는 역사의 종, 민족의 종으로서의 상징적 존재가 아닐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어두운 시대에서 홀로 진리를 간직한 갈릴레오의 생애를 그린 연극에서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는 불행하다. 그러나 영웅을 낳지 못하는 시대는 더욱 불행하다”고 말한다. 갈릴레오가 당시의 시대에서 얼마나 현실적인 세력일 수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영웅을 현실의 세력에 현실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해 보자. 그러면 의사의 시대는 영웅의 시대보다 조금 더 불행한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말할 수 있다. 의인을 낳지 못하는 시대는 더욱 불행하다고, 또 의인다운 시인일 망정 시인만을 가진 시대는 그보다 더 불행하다고. 한용운은 이러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여러분이 나의 詩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를 슬퍼할 줄 압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는 계속해 말하길, 그의 자손의 시대에 있어서 그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불행의 종말을 예상하고 그 종말과 더불어 그의 시가, 지난 계절의 꽃이 될 것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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