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한국불교 고승의 ‘찰나’
우리가 몰랐던 한국불교 고승의 ‘찰나’
  • 김주일 기자
  • 승인 2019.03.30 1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이화의 명승열전
이이화 지음/불광 펴냄/1만 8천원

역사가 이이화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엔 일정한 신념이 흐른다. 그것은 당대의 시대정신과 중생 제도의 정신이다. 그가 스스로 밝히는 바와 같이 대승불교가 지향하는 평등, 평화 등의 이념과 중생 제도의 실천운동은 저자의 역사관에 일정하게 반영돼 있을뿐더러 역사가로서 지난 과거의 일을 평가하고 반성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신념은 저자의 여러 저서에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작인 〈이야기 한국불교사〉서 냉철한 시각으로 우리 불교사의 명과 암을 드러냄에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건 그것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역사가 신념으로 태어난 17 승려의 약전
선방 박차고 나서다…서산, 사명, 용성
한국불교사 방외 인물…도선, 묘청 등
승속불이(僧俗不二)의 삶을 산 17명의 승려

신간 〈명승열전〉서 저자는 그의 시선을 한국불교사 속 인물을 향해 돌려 열일곱 명의 승려를 오늘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은 역사적으로는 시대정신에 투철했고, 불교적으로는 중생 제도의 신념에 충실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승려들을 소중하게 다루었다. 어쩌면 이 책이 내세울 개성이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서 소개되는 승려는 모두 열일곱 명. 이 가운데는 우리 불교계에서 고승(高僧)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도 있고, 승려이지만 잘 조명되지 않았던 방외(方外)의 인물도 있다.

저자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선정된 이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승과 속의 경계를 허물고 번뇌 가득한 세간에 뛰어든 승려이다. 그리하여 당대의 현실 문제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몸소 실천하려 했다. 또한 전쟁이나 귀족의 횡포 등에 신음하는 민중을 위한 주의와 주장을 펴기도 했으며, 사회 개혁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 한국불교사’

그동안 우리 불교사의 ‘위대한’ 승려를 다룬 책은 당대는 물론 다음 세대에 의해 ‘고승(高僧)’이라 불리는 인물을 조명한 예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그들의 행보, 그들과 관련한 역사적 사건들은 그들의 사상적 바탕에서 기술된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 책은 불교라는 종교적이거나 사상적인 측면을 기반으로 한 도서라 보긴 힘들다. 오히려 역사교양서로서 한국불교사, 넓게는 한국사에서 주목해야 할 승려의 행적을 전하고 재평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물론 ‘화쟁(和諍)’과 같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상적 맥락에 관해선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것의 드러냄이 이 책의 궁극적 목표는 아닌 것이다.

저자가 고백한 바, 자신은 ‘불교사상사의 지식이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밝힌 것이라기보다 승려를 대상으로 한 다른 시각의 역사적 해설을 진행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더욱이 ‘이야기체 역사서의 시초’, ‘역사를 가장 쉽게 풀어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자 특유의 서술 방식은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조금은 낯선 이 열일곱 명의 승려 이야기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기록상 남겨진 그들의 행보와 그들이 남긴 문집, 그들과 관련된 민간 설화와 현대 자료 등의 전 방위적 검토에 더불어 저자의 확고한 역사관을 통해 해당 인물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귀한 시간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불교사서 주목 할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 책서 소개된 승려 일부는 불자는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위인으로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을 애써 포장하지 않는다. 이들이 보인 기행(奇行)은 물론 그들의 한계까지 서슴없이 기술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끝에 도달한 저자의 평가가 기존의 긍정적인 데에서 벗어나지 않더라도 이러한 방식은 신선하다. 한편 저자는 이 책 전반에서 그들이 어떠한 실천적 면모를 보였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면서 그들의 현실적 행보가 보인 한계에 대해 논하기도 하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열일곱 명의 승려 중에는 우리 역사 속 암흑기라 일컬어지는 시기에 선방을 박차고 나와 동분서주한 영웅적 인물도 있다. 조일전쟁(임진왜란)의 혼란한 가운데 현실로 뛰어들어 나라와 민중을 구제하고자 창과 칼을 든 서산(휴정)과 사명(유정),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독립의 목소리를 한껏 높였던 백용성, 송만공, 한용운도 이 책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저자는 승려로서뿐만 아니라 현실 구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정치가로서, 그리고 시대의 짐을 짊어지고 고뇌하던 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함께 살피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케 한다.

비록 이들의 행적이 계율을 어기는 일이었다 하더라도 위기의 상황에서 주저하지 않은 그들의 행적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특히나 2019년 삼일운동 100주기를 맞이하며 이들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지금 그들의 행적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 책을 특징짓는 지점에는 또한 다섯 승려가 있다. 도선, 묘청, 변조, 설잠, 천호가 그들이다. 이들은 우리 불교계에서 조명한 경우가 드물거나 없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승가에 귀의한 승려였다는 점, 그리고 우리 역사의 문제적 인물이란 점은 분명하다.

이들은 당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도선의 경우 그 행적이 미묘하지만 그가 제창한 풍수지리설, 비보설 등은 신라 말기 혼란한 시기에 고려 건국이라는 개혁의 정당성을 부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그에 대한 〈고려사〉 등의 기록이 고려 건국 세력이 지어낸 허구일 가능성은 농후하지만 말이다. 한편 김시습이란 속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설잠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승려가 되었다. 그의 생은 기행의 연속이었지만 지조 있는 삶을 살았고, 자신의 절개와 애민정신이 투영된 많은 시편을 남기기도 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인물은 묘청, 변조(신돈), 그리고 천호(이동인)이다. 신채호는 자신의 글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에서 서경 천도운동을 벌인 묘청을 자주진보파 승려로 평가한 바 있다. 한편 변조는 양민과 천민들 사이에서 성인이라 불렸으며, 고려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정치적 행보를 늦추지 않았다. 천호의 경우 조선의 근대화에 관심을 두어 왕실과 일부 귀족의 지원을 받으며 일본을 넘나든 인물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 세 승려는 역사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이야기되거나 그에 관한 흔적이 미미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관련된 기록과 자료를 통해 이들의 행적을 재구성한다. 그 가운데 저자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지만 또한 우리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기도 한다. ‘당신은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에서도 현대불교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금주의 베스트 불서 8/30 ~ 9/5

순위 도서명 저자 출판사
1 우리는 늘 바라는 대로
이루고 있다
김원수 청우당
2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혜민스님 수오서재
3 요가 디피카 B.K.S.아헹가/현천스님 선요가
4 팔천송반야경
(산스크리트 원전 완역)
전순환 불광출판사
5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정진원 조계종
출판사
6 염불수행대전 주세규 비움과소통
7 도해 운명을 바꾸는법 석심전/김진무 불광출판사
8 유식,
마음을 변화시키는 지혜
요코야마 코이츠/안환기 민족사
9 청송골 수행기
(교도소에서 온 편지)
편집부 지혜의눈
10 도해 람림,
깨달음의 길을 말하다
쟈써/
석혜능
부다가야
※ 제공 : 불서총판 운주사 02) 3672-7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