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처전심(三處傳心)과 공문십철(孔門十哲)

큰 스승이 부재하는 세상

큰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내가 사는 남해에서는 정월 대보름이 오면 지신밟기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풍물패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한 해의 안녕과 건강, 풍년과 풍어를 비는 굿마당이 열린다. 작년부터 나는 ‘고현집들이굿놀음보존회’라는 모임에 들어가 풍물을 배우고 있다. 몇 달 동안 상모를 돌리고 상쇠의 꽹과리 소리에 맞춰 소고를 치면서 군무(群舞)를 펼치는 과정을 익혔다. 남해에서는 이런 일들을 ‘매구’라 부르는데, ‘매귀(埋鬼)’라는 한자어가 토박이말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출신·신분 제각각 불제자
불교 교단 완성 밑거름
허물 털고 탁마해 대중 이익을

나는 이 날 처음으로 복색을 갖추고 사흘 동안 남해 곳곳을 함께 돌면서 지신을 밟았다. 이제 막 가락을 뗀 처지니 어설프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어르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흥겨움을 만끽했다. 매구 단원 분들은 내게 뭔가를 하나라도 더 익히게 해서 어엿한 고수(鼓手)로 만들려고 항상 애를 쓰셨다. 뒤늦게 풍물을 배우는 내게 매구패 여러분들은 모두 나의 소중한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매구를 익히고 지신밟기를 하면서 나는 ‘용장 밑에 약졸 없다’는 명구를 실감했다. 좋은 스승이 좋은 제자를 기른다는 속뜻이겠는데, 잘못된 발 움직임이며 상모 돌리는 요령, 소고를 치는 위치 등 한 번 몸에 배면 쉽게 고치지 못할 버릇들을 좋은 스승들 덕분에 바로잡을 수 있었다. 당나라 때의 문인 한유(韓愈)는 <사설(師說)>이란 글에서 스승이란 글자 읽는 법을 알려주는 이가 아니고, 도를 전하고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 분들은 내가 만난 훌륭한 스승이다.

그러다 문득 이 세상에 이런 참다운 스승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있기나 한지 하는 의문이 일었다. 돌아보면 세상에는 한 가락 한다는 고수들이 너스레를 떨면서 스승 노릇을 자처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겪어 보니 위선이 가득 했고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좀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바늘구멍만한 지식을 가지고 남들 앞에서 변변찮은 주장이나 내세우면서 대가 인척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좋은 스승도 만나기 어렵지만, 좋은 제자 구실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줄탁동시(緖啄同時)란 말이 있는 것처럼 원래 좋은 스승 제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다 시절인연이 닿아야 스승이든 제자든 빛이 난다고 나는 믿는다. “나귀를 강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는 못한다”는 속담처럼 스승이 아무리 기염을 토하며 가르쳐도 배우는 제자가 열의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나 열정적인 스승과 열의 넘치는 제자가 제대로 만나면,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처럼 놀라운 교학상장(敎學相長)의 효과가 일어나고야 만다. 스승이 제자를 만들고, 제자가 스승을 만드는 것이다.

제자들로 더욱 빛나는 부처님과 공자

석가모니 부처님과 공자는 모두 인류가 낳은 위대한 스승이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 깨우침과 가르침을 존중하면서 이어받고자 한다. 세계 4대 성인이라는 부처님과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는 모두 훌륭한 교사였다. 그래서 그 제자들이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파했다. 마른 샘물에서 물이 흘러 바다를 이룰 수 없듯이 스승이라는 샘물의 물을 모으고 흐르게 한 제자들이 있었기에 가르침의 바다가 이뤄진 것이 아니겠는가.

부처님은 많은 제자를 받아들이고 깨달음으로 인도했지만, 그 중 10대 제자가 특히 손꼽힌다. 지혜제일(智慧第一) 사리불(舍利佛, Sariputra, 브라만 집안 출신), 신통제일(神通第一) 목건련(Maudgalyayana, 브라만 집안 출신), 두타제일(頭陀第一) 마하가섭(摩訶迦葉, Mahakasyapa, 계율과 금욕에 밝았음), 천안제일(天眼第一) 아나율(阿那律, Aniruddha, 석가모니의 사촌, 장님이 되었지만 심안(心眼)을 얻음),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다(阿難陀, Anandam, 석가모니의 사촌동생, 시자로 있어 부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음), 지계제일(持戒第一) 우바리(優婆離, Upali, 노예 이발사 출신, 계율에 정통했음), 설법제일 부루나(富樓那, Purnamaitrayaniputra, 변설이 뛰어나 포교에 힘씀),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須菩提, Subbuti, 브라만 집안 출신, 성질이 사나웠지만 공의 뜻을 가장 잘 이해했음), 논의제일(論議第一) 가전연(迦移延, Katyayana, 서인도 아반티(Avanti)국 사람, 불교이론에 밝았음), 밀행제일(密行第一) 라후라(羅喉羅, Rahula, 석가모니의 맏아들, 남몰래 수행에 힘씀)가 그들이다.

이들은 출신도 다르고 신분도 나름이었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부처님이 미처 못 밝힌 지혜와 마음을 후세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불교 교단이 완성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그 말씀을 경전으로 정리할 때 설법을 외워 전한 아난다도 대단하지만, 마하가섭만큼 부처님의 사랑과 존중을 받은 제자도 드물 듯하다. 부처님과 가섭 사이의 비범한 전법의 실상을 알려주는 이야기로 ‘삼처전심’이 있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다자탑 앞에서 부처님이 자리 반을 내줌),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영취산에서 꽃비가 내리자 부처님이 꽃 하나를 드니 가섭이 미소를 지음), 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 사라수 앞에서 열반에 드신 뒤 가섭이 늦게 오자 관에서 두 발을 내밀어 보임)라는 말로 축약되어 전하는데, 이런 연유로 부처님 마음의 종지인 선법(禪法)을 이어받아 선불교의 제1조가 되었다.

공자에게도 많은 제자가 있었다. 전하는 말로는 3천 제자가 있었다고 하고 이름을 남긴 제자만도 72명이라니, 역시 적지 않은 제자가 그의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그 중 열 명의 제자가 특출했다고 한다. 이들은 덕행(德行)과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 등 그 능력에 맞춰 사과(四科)에 각각 배정되었다. 숫자가 열 명이라 공문십철이라 불리는데,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실려 있다.

“옛날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으면서도 나를 따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문하에 있지 않구나. 덕행엔 안연과 민자건, 염백우와 중궁이요, 언어에는 재아와 자공이며, 정치엔 염유와 계로였고,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가 뛰어났다.(從我於陳蔡者 皆不及門也 德行 顔淵·閔子騫·횟伯牛·仲弓 言語 宰我·子貢 政事 횟有·季路 文學 子游·子夏)”

죽었을 때 대성통곡했다는 안연이 가장 공자의 사랑을 받는 제자였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계로로 나오는 자로(子路)가 진정한 제자였다고 생각한다. 자로는 공자보다 9살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다. 원래 이단을 섬기다 공자와 논쟁한 뒤 설복되어 문하에 들어왔다. 누구보다 실천을 중시하고 타협을 싫어했던 그는, 결국 위(衛)나라의 정변에 뛰어들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온건하고 내면적이었던 안연이 공자우파의 전통을 이었다면, 적극적이고 의분이 강했던 자로는 공자좌파를 대표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가 무성하면 못된 그늘도 드리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다. 이처럼 많은 제자를 열성으로 키워 깨우침을 열고 지혜를 전했지만, 늘 좋은 제자만 있을 수 없는 게 교사의 숙명이기도 하다. 앞에 부처님의 십대제자에 들었던 아나율은 설법하는 부처님 앞에서 졸다가 크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십대제자가 이랬으니, 나머지 제자 가운데 이래저래 부족한 제자가 없을 리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포살(布薩)이라는 제도를 만드셨다. 스님들이 매달 15일과 30일에 모여 계경(戒經) 외는 소리를 들으면서, 보름 동안 지은 죄를 참회해서 선을 기르고 악을 없애는 수행법(修行法)이다. 허물이 없으면 제일 좋겠지만, 지으면 그때그때 털어버리고 새로워지라는 가르침이었다.

공자에게는 더 큰 골칫거리 제자가 있었다. 재여(宰予)라는 제자인데, 역시 낮잠을 자다 된통 혼이 났다. 공자와 이런저런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여 눈 밖에 났는지 모르겠지만, 이 꼴을 본 공자가 “썩은 나무에는 무엇도 새길 수 없으며, 분뇨가 섞인 흙으로 만든 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으니, 재여에게 더 이상 무엇을 꾸짖겠는가(朽木 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뻝也 於予與何誅)”라는 거의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쏟아 부었다. 공자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나 보다.

부처님이든 공자든 두 분 다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인격을 지녔고 덕행을 실천했다. 그 지혜와 지성을 세상에 펼치면서 제자들을 육성하는 일에도 심혈을 쏟았다. 그 덕에 우수한 제자들이 배출되어 오늘날의 불교와 유교가 성립되었다. 제자들을 가리지 않았고, 가르칠 때 최선을 다했다. 제자들 역시 스승의 염원을 저버리지 않고 스승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사람이 큰 인물이 되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을 도울 때 남도 나를 돕는 법이다. 남을 도우면 남은 내게 양보한다. 내가 남을 훈계하고 훈육할 자격이 있는지 고민할 때 나는 더욱 그릇이 큰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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