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에 초연해지고 싶어요

질문 요즘 나이가 들어 갈수록 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더 커져 병원에 가는 것도 무서워졌습니다. 생사에 초연해지고 싶은데 도움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변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뭐, 간이 언짢으니 뭐가 언짢으니 하고서는 금방 병원에 가서 수술하는데 말이에요, 그것도 수술을 해야 할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습니다. 덮어놓고 수술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살아나는 게 아니거든요. ‘이왕 죽을 거라면 그럼 편안하게 죽어라.’ 이런 생각을, ‘이왕 죽게 하려면 편안하게 죽게 해라.’ 하고선 주인공한테 놓고 편안히 그냥…. 그저 음식들 조심하고 다 이게, 왜, 그렇게 잘 먹는 거 있잖아요? 그리고 체하게 먹지 말고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이렇게 잘 조절해서 가면은 외려 그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돼요.

여러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가정을 좌우하고 삶을 좌우합니다
아주 이게 그럴까 안 그럴까 하는 것이 없이 절대적으로
그냥그냥 무심으로 믿어지는 마음이라야 됩니다, 모든 게.
이유가 거기 붙지 않습니다.

요새는 암이라는 게 유행의 이름이에요, 아주. 그냥 누구나가 들어가면 암이라는 거예요. 옛날에는 피가 뭉쳐서 이렇게 굳는다는 거를 인제 침으로 놔서도 고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것을 암이라고 이름을 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벌써 암이라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 ‘영 죽는구나.’ 하고 그냥 아예 포기해 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산다는 의욕이 없으니까는 죽을 수밖에 없죠. 그게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린 건데 마음이 그래서…. 그런데 그걸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하시라고 해도 그게 안 되나 봐요. 아무리 그냥 자나 깨나 그래도 그게 안 되나 봐요. 몇십 년을 정말, 저는 딴 생각 하는 때가 없어요. 딴 말 하는 때가 없고요. 뭐, 보편적으로 이렇게 무슨 절을 이렇게 짓는다 하더라도 그게 나하고 상관이 없는 거거든요. 부처가 있으면 할 거고 부처가 없으면 못할 거고 그렇거든요. 부처가 있으면 여러분도 다 부처로 동일하게 돼서 동참을 하실 테고 부처가 없으면 못할 거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옛날에 선지식들도 재사를 지내 달라고 하니까 그러겠다 그러고 가만히 앉아서 있다가 아무개 아무개 들어오라고 그래서 “재사 지냈느니라.” 그러니까 “아, 스님. 언제 재사를 지내셨어요?” 그러니까 “지금 다 지냈지 않느냐. 그러니까 어서 가거라.” 이러더래요. 그러니까 그걸 못 믿어서 또 차려 놓고 지내 달라고 아래 스님네들한테 내려가서 야단법석을 하니까 “스님이 벌써 누구누구 주라고 그래서, 저 거리로 나앉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 주라고 그래서, 부모 없이 사는 애들 그런 사람들 주라고 그래서 다 줬는데요.” 그러더래요. 그러니까 스님네한테 가서 그냥 막 재사 안 지내 주고 그랬다고 그러니까 “벌써 나는 귀찮지 않게 지내 줬는데 왜 그럴까?” 그러곤 하시더라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돈을 도로 찾아가더랍니다. 허허허. 나도 그런 사람 더러 봤는데요.

너무나 급해서 그냥 참, 그 사람 좀 울지 않고 살게 할 양으로 그렇게 했는데 그냥 안 해 줬다고 그냥 돈 도로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얘, 돈 받은 거, 초, 쌀 한 움큼 그거 도로 드려라.” 그랬죠. 그것이 충주에 있었던 사람인데요, 그거 사연이 길지요. 그 사람이 딸 하나만 위로 낳고는 열 몇 살이 되고 스무 살이 가깝도록 어린애를 영 못 낳았어요. 그러니까 인제 다른 여자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울면서 왔어요. 길에 오다가다 만났어요. 그래서 저 위에 그런 사람이 계시냐고 그러니까 내가 하는 소리가 거, 내가 내려올 때 얘기하시더라고, 내려가다가 사람 만날 테니까, 당신 같은 사람 만날 테니까 내려가다가 내가 이렇게 애기해 주더라고 그러라고 그랬다고 그랬죠. 그랬더니 꽁지꽁지한 돈, 그때 오백 원인지 얼만지 요렇게 갖다가 주면서 내가 지금 내쫓기게 생겼다고 그러면서 그렇게 울고 그래요. 아유, 그 스님께서 지금 그렇게 걱정 말고 가라고 그러셨다고 그랬죠.

그랬더니 가서 어린애를 낳고 사는데 괜찮아졌어요. 다 면하고 그랬는데 또 그 백혈이라나? 뭐, 왜 저, 뼛속에 저거 없어지는 거, 호르몬이 없어지는 거요. 그런 게 인제 병이 생겨 가지고는 그 여자가 또 왔어요. 그러니깐 몇 해 만에 온 거죠. 와서, 이러니 어떡하면 좋으냐고, 살려 달라고 하도 그래서 그러면 그러마고 그러고선 했더니 그때 돈, 지금으로 치면 한 이만 오천 원, 이만 오천 원 가지고 쌀하고 초하고, 쌀 한 말하고 초하고 이렇게 가져왔는데 아, 그 이튿날 말입니다, 남편이 와 가지고는 홀딱 다 가지고 간 거예요. 하하하. 남편이 홀딱 다 가지고 간 거예요. 그냥 이년 저년 하고 그냥 죽일 년 같으니 이렇게 빼낸다고 이러면서 아, 가지고 가요. 그러더니만 남의 말에 들으니까 그 아들은 잘 자라는데 그 그냥 쪼끔 있던 재산이 다 날아가 버린 거예요, 그냥. 허허허. 그래서 그렇게 그 저거 하면 바로 자기한테 가는 거지, 누가 저거 해요?

그래도 부인은 그, 믿고 그렇게 그냥…. 어떤 땐 이래요. 주인공을 믿지 않고 나를 믿고 찾아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에이그, 나 같은 거를 믿고 저렇게 의지하고 찾아왔는데 어쩌나.’ 하고선 생각을 하죠. 그래서 그건 나아서 인제 사는데 그 애 학교 보낼 돈도 없이 그냥 다 그냥 날려 버렸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모두 누구의 탓이냐? 자기의 탓이죠, 모두가. 너그럽고 지혜 있게 좀 살지 못하고 그렇게 좁게 그렇게 사니까 가난해진 거죠. 마음이 가난하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오직 못났든 잘났든 자기가 태어난 게 화두예요. 자기가 없으면 상대가 있나요? 자기가 없으면 부처가 어딨어요? 그러니까 어떠한 일이 닥쳐도 눈 깜짝하지 마시고 또 죽는다 하더라도, 자식이 죽는다 부모가 죽는다 하더라도 죽는 게 죽는 게 아니에요. 그거를 아셔야죠.

그래서 옛날에 어떤 사람들은 이 공부 하는 사람들은 누가 돌아가셔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대요. 왜냐하면 죽은 게 아니기 때문이죠. 다시 모습을 가지고 나오게 되죠. 어떤 사람은 그래서 가정에서 그냥 우리들처럼 이렇게 공부를 하신 모양이에요. 그런데 마나님이 돌아가셨대요. 돌아가시니까 막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세상에, 고생 고생 하다가 인제 사인교를 타고 올라가는구나. 당신 참 좋겠어. 나도 바로 쫒아갈 거야.” 하고 그냥 막 춤을 추고 즐거워하시니까 그거 자식들이 볼 때 기가 막히죠, 딴 사람도 보고 그러는데. 그래서 딴 사람들은 마나님 돌아가시고 미친 게 아니냐고 하니까 그 할아버지가 있다 하는 소리가 “당신네들은 눈이 멀고 귀가 막혔소. 눈이 뜨이고 귀가 뜨였으면 당신 발 하나하나 뚜벅뚜벅 떼어 놓는 대로 법이고 떼어 놓는 대로 도인 것을….”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마음은 체가 없어서 우주 전체를, 삼라만상을 다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걸 아셔야 돼요.

마음이 가난해서 궁핍하게 사는 건지요

질문 살아가면서 생활이 궁핍한 거는 제 마음이 가난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생각을 밝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답변 이런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생각을 하기를 항상 그냥 찌그리고, ‘사는 게 뭐 모두 이러냐.’ 하고 그냥 슬픈 생각만 하고 모두 옹졸하게만 생각하니까 옹졸하게 삽디다. 자기 몸이 병이 들고 옹졸하게 살아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 안 하고 발란하고 생동력 있고 ‘불법의 진리는 이게 아니다.’라는 걸 생각하면서, 자기가 생각하기에 달렸다고 하면서 지혜롭게 산다면 그건 스스로서 풍부해지는 거지요. 여러분 혼자 사는 게 아니에요. 헤아릴 수 없는 몇 조가, 아니 조라고 해도 틀리고 이것은 헤아릴 수 없는 그 생명들이 같이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주인공을 진짜로 믿는 거는 믿고 의심을 하지 말라 이겁니다. 자기를 자기가 의심하지 말라. 무조건 믿어라. 그리고 믿는 데는 무조건 물러서지 말라. 일체 만법이 자기 마음에서 바로 나고 든다. 자기 마음이 움죽거려야 자기 몸이 움죽거린다. 자기 생명이 있기 때문에 분별이 있고 분별이 있기 때문에 움죽거린다. 그러니까 삼위일체로서 바로 내세울 게 없는 게, 공했으니까.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오는 거 거기에 믿고 바로 맡겨 놔라.

풍차 돌아가듯 그렇게 돌아가는 거니까 자동적으로 바람만 불면 풍차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각만 나면 벌써 이거는 자동적으로 돌아가는데 왜 걱정을 하고 내가, 내가 산다고 하고 내 거라고 하고 내가 발발발발 방황해야 하느냐 이겁니다. 자기 주인이 어엿하게 스스로서 벌써 생각만 내면 우주 법계가 전부 알게 되는데요. 개별적인 내가 아니에요. 전체 포괄적인 나예요. 포괄적인 나이기 때문에 나라고 세울 게 없는 것이 나다 이겁니다.

그걸 이름해서 부처라고 하고 자유인이라고 하고, 각을 했다고 하고, 도인이라고 하고 이렇게 말들은 많으나 그런 이름을 가지고 짓지 마라. 이름을 가지고 우리가 살려면 그까짓 이름이야, 어떤 걸로 이름을 짓든지 자기네들 환경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자기가 이름이 본래부터 없던 거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따서 지을 수도 있고 산 이름을 따서 지을 수도 있고 동네 이름을 따서 지을 수도 있고 물건을 봐서 이게 여기에 적합하다 하면 거기에 적합하게 이름을 짓고 이런 것뿐이다 이겁니다.

그런데 “의정을 가져라.” 이런 게 있지요. 그거는 내가 참나를 알고 난 뒤에 거기서 스스로 나오는 의정이, 대(大) 의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아비와 자식이 상봉했을 때의 그 기쁨, 또는 기쁘면 기쁜 대로의 모든 것이 그렇게 돌아갈 때 아, 다시 거기에, 모르는 거는 자기 자신에게 ‘이 미지수의 문제를 도대체 당신이나 알지 난 모르는데 아, 이게 뭘까?’ 하고 의정을 내는 거지 아니 무조건 모르면서도 의정을 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기초적인 건 해 놓고 주춧돌을 튼튼히 세워 놓고 기둥을 세워야지, 주춧돌도 해 놓지도 않고 기둥을 세울 수는 없죠.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이 만약에 기둥이라면, 만약에 이 대들보로 쓴다면 대들보가 될 것이고 서까래로 쓴다면 서까래가 될 것이고 기둥으로 쓴다면 기둥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 하나가 수만 가지로 쓰여지는데 구태여 이름 지어서 이게 따로 있고 저게 따로 있고, 용왕 따로 있고 칠성 따로 있고 신장 따로 있고 산신 따로 있고 이런 게 아니에요. 순간순간 화해서 순간순간 찰나찰나 내가 바로 병이 나면은 내가, 내 주인공 자체가 바로 약사가 되는 겁니다. 박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그러는 거고. 그러니까 안팎을 다 경영하는 거죠. 운행하는 겁니다. 또 내가 가난하면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는 거고요. 내가 어떠한 법에 걸렸다면, 법의 위치에서 지금 현재 생활에서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땐 바로 내가 바로 뭐가 되는 줄 알아요? 바로 독성이 되는 거죠, 산신이 되고. 내가 명이 짧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는 바로 내가 칠성이 되고 지장이 되고요.

이렇게 광대무변하고 이렇게 좋은 법을 왜 좋게 쓰지 못하고선 그렇게 미신적으로 아주 졸렬하게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졸렬하게 가르쳤나요? 천만에요. 이 생각하는 거,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가난을 끌어들이고 생각하는 대로 바로 그 지혜를 끌어들일 수 있고 가난치 않게 살 수 있는 그 기반을 닦을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가정을 좌우하고 있고 여러분의 그 삶을 좌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우울해요

질문 요즘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너무 답답해서 마음까지 우울해집니다. 내 마음의 근본이 우주의 근본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과연 정말 보잘것없는 내 마음으로도 대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답변 왜 그렇게도 쉽고 그렇게도 빠르고 그런 게 자기한테 주어져 있는데 어째 모두 믿지 못하고 그렇게 앨 쓰고 즐겁지 못하게 살고 울고불고 야단들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무조건 믿음과 물러서지 않는 그 마음. 왜 못 믿는가. 그 생명이 그 생명이고 바로 그 몸이 그 몸이고, 그 행이 그 행이고, 그 사람이 만법을 행하고 있는데 자기를 자기가 못 믿어요.

문제는 그런 데에 있습니다. 이거는 ‘깨닫는다 안 깨닫는다, 못 깨달아서 못한다, 깨달아야만 한다’ 이런 걸 떠나서 자기를 못 믿는 겁니다. 그것은 본래 깨닫는다는 언어도 붙지 않고 깨닫지 못한다는 언어도 붙지 않는 것이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어져 있고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그런 그 광대무변한 이치를 우리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서 전체 한 뚱그런 맷방석 같은 게 하나 있다면 왜, 애들이 화가 나면은 나가서 스트레스를 제거하기 위해서 마치를 가지고 탁 때리면 쑤욱 올라오고 또 탁 때리면 쑤욱 올라오는 이러는 것이 있잖습니까. 그런 것이 이렇게 쭉 있다면, 비유한다면 바로 이것이 쑥 올라오고 쑥 내려가고 하는 것이 어느 혹성도 될 수 있고 세계도 될 수 있고, 어느 국가도 될 수 있고 또 사회도 될 수 있고, 사회에서 살아나가는 개별적인 어떤 한 집 한 집도 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때에 따라선 이것이 불덩어리일 때는 불망치로 때려야 됩니다. 만약에 불덩어리를 불로 때리지 않는다면, 또 무슨 막대기로나 이런 걸로 때린다면 그게 되지를 않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때리면 들어가고 또 어떤 것이 쑥 불거져 나오면 또 때린다. 이것이 여기서 나오고 저기서 나오고, 여기서 나오고 저기서 나오고, 여기 때리면 저기 나오고 저기 때리면 여기 나오고 하는 것이 우리 세계적으로 살아나가는, 조그맣게 친다면 세계적이고, 아주 더 작게 친다면 국가적이고, 더 크게 친다면 우주적과 더불어 같이 돌아가는 거다. 그럴 때에 그렇게 여기서 나오고 저기서 나오고 저기서 나오고 그럴 때 혼돈이 오는 거다 이겁니다, 이게. 혼돈이 발생할 때에 우리는 조그맣게 치면 한 가정이지만, 아주 작게 치면 내 몸의 혹성이지마는 크게 치면 우주적으로도 대비할 수가 있는 거다.

그런데 진짜로 믿고 진짜로 꼬리를 붙이지 않고 무조건 내가 그렇게 믿는 반면에 아주 이게 그럴까 안 그럴까 하는 것도 없이 그냥그냥 절대적으로 그냥 무심으로 믿어지는 그 마음이라야만이 될 수 있는 거죠, 모든 게. 이유가 거기 붙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가 붙습니까.

세상도 지금, 아까도 그랬습니다. “얘! 일요일이 언제냐?” 그러니까 “내일 모레예요.” “아니, 참 빠르기도 하구나.” 그러니까 “쉴 사이 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눈이, 눈동자가요, 일로 돌아갔다 절로 돌아갔다 쉴 사이 없이 돌아갑니다.” 그래요. “그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거로구나. 한 번 눈동자가 돌아갈 때 우주가 돌아가듯 이렇게 빠르구나.” 이래 버리고 말았습니다마는, 그것이 그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그 반면에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도 빠르게 튀어나오게끔 돼 있어요. 그런데 나와 가지고서 벌어져야 알지, 나오는 것도 모르고 그러기 때문에,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질 모르거든요.

전에 리비아를 미국에서 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리비아에서 소련으로 전문을 띄워서 우리는 보복 단계를 가져야겠다는 그런 무슨 뭐를 띄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이, 이거 그러면 미국 외에는 곤란한 점이 생기겠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요 얘기를 거기 포함시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서 불쑥 나오면 이걸로, 이 망치도 사람을 때릴 때는 몽둥이가 되고, 또 그런 걸 때리는 데는 불망치가 되고, 또 쇠를 쳐서, 쇠를 칠 때는 쇠망치가 되고, 또 전자력을 칠 때는 전자 망치가 돼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거는 전부 이런 문젭니다. 이 망치도 하나로, 하나가 아닙니다. 찰나찰나 이거는 환경에 따라서 그 쓰여지는 게 다 달라요. 그러면 찰나찰나 이게 화해서 옮겨 가면서 씀씀이를 쓰고 있는 우리 생활에서도 그것은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이렇게 닥치는 건 이렇게 막고, 여기에서 이렇게 닥치는 거는 이렇게 막고, 이렇게 살지 않습니까? 고정되지 않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럭하면 안 되지. 그럭하면 곤란해지고 회담도 곤란해지고 오손도손 참, 조화를 이루기는 어렵고, 불쑥 튀어나오는 거는 그저 쳐서 너무 나오지 못하게끔 해야 이게 평등해질 테니까. 그저 나오면 좀 때려서 들여보내야 될 거야. 그래야 혼돈이 오지 않겠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냥, 보통 그냥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런 데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여러분들과 나와 똑같이 그런 말을 그대로 했어도 나 그대로 그냥 말한 거하고 여러분들 말한 거하고 다른 것은 단지 그것뿐입니다. 나는 이것을 한다 안 한다를 떠나서, 예를 들어서 ‘이럭하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남으로써, 그 말이 나옴으로써 이게 법이 되는 것입니다.

또 어느 날 비가 왔습니다. “스님, 아이고 이거 그냥 가시면 안 됩니다. 비 맞으면 안 됩니다. 우산을 쓰고 나가셔야 됩니다.” 이런단 말입니다. 그래서 내 말이 딱 그랬습니다. 이거는 여러분들한테 내가 자랑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한테 체험을 드리기 위해서 얘깁니다. 모든 걸 믿고 생활하는 데 하나하나를 점검하면서 체험하면서 돌아가십시오. 그렇게 되면 자기한테 모든 일체 만법이 주어져 있다는 거를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것을 느껴 보지 않고 생각도 안 해 보고 지켜보지도 않았다면 그냥 무의미하게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지요.

그래서 거기에서 그랬습니다. “이거 봐. 모든 것이 환경에 따라서 이 공기와 바람, 또는 그 무중력의 전자력을 이렇게 중단시키면 일로 바람이 오질 않아. 이 허공에도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 의해서 울타리가 쳐질 수도 있고 울타리가 안 쳐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비 맞아도 좋아. 그 비를 맞으면 외려 생기가 날 텐데.” 거꾸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검증을 해 보라지, 나오는 게 있나.’ 하고선, 우리의 그 빠른 거, 빛보다도 더 빠른 인간의 참마음이, 그 참마음 한 점이 우주의 그 일체 만법을 우리 삶과 더불어 같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유자재할 수 있다는 그 점을 여러분들은 그렇게 아시라는 얘깁니다.

참회부터 해야 될 것 같은데

질문 제가 지금까지 생활하면서 참 나쁜 짓도 많이 했고 사람들 마음도 많이 상하게 한 것 같습니다. 마음공부를 해 보려고 하니 그런 것들이 마음에 걸려 참회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길을 일러 주십시오.

답변 본래 마음은 저 달나라에도 그냥 지금 한 찰나에 갈 수 있고, 한 찰나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전부 도는 아니지마는, 이 마음이라는 것은 광대해서, 만약에 비행기 프로펠러가 돌아가듯이 우리가 살아나가는 이 수레가 돌아가는 것이 쉬지 않고 돌아간다면, 거기 먼지 앉을 자리도 없을 거고, 고가 있을 법도 없을 거고, 또 죄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 하나 점프해서 돌리는 데에 있는 거예요. 그게 지혜예요.

그러니까 죄가 있다 없다도 없습니다. 그 도리를 알면 ‘왔다’예요. 정말입니다. 이 세상 살아나가기가 아주 수월하고 또 이 세상 살아나가기만 수월한 게 아니라 세세생생이고 자기가 뿌린 거 다 거둘 수 있고. 수없이, 과거에 내가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이렇게 거쳐 오면서 지은 그 인연, 인과들. 그런 것도 다 해결할 수 있고. 아주 한순간이에요. 그러니까 열심히 해 보세요. 그리고 절대로 이 공부하는 데 뭐, 생활이 지장이 된다 이런 소리는 하지 마세요. 생활이 즉 공부니까요. 생활도 잘해야 돼요, 모범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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