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이 공해서 그것조차도 세울 게 없다
일심이 공해서 그것조차도 세울 게 없다
  • 대행 스님
  • 승인 2019.03.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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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 그리고 맛있는 줄 몰라요. 식빵도 큰 거 하나 사다 놓으면 그게 맛이 없지만 조그만 거 하나 사다 놓고 하나씩 별러 먹으면 참 맛있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법문을 듣는 데도 항상 그냥 ‘아, 가면 듣는다.’ 이걸로 끝나선 안 돼요.

우리는 음미해 볼 거 다 음미해 보고 체험할 거 다 체험하면서 안으로 굴리면서 이렇게 해서 자기가 그 모든 것을 다 놓았을 때, 과거심과 미래심과 현재심으로 모든 것이 귀합될 때 귀합된 한마음의 그 한 점이, ‘일심이 공해서 그것조차도 세울 게 없다’ 이 정도로 돼야 거기에서 참 생수 물이 나오게 돼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깨달아져야만이 자기를 이끌고 다니는 스승이 자기한테 있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자기를 다루면서 또 바깥의 스승은 이렇게 설법을 해 주면 그걸 안으로 받아들여서 안으로 굴려서 또 둘이 아닌 것을 배우면서 자꾸 나투면서, 이렇게 체험하면서 또 자기한테 놓으면서 또 돌아가거든요.

처음에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했지만 나중에 나를 발견하고 난 뒤에는 또 상대방하고 나하고 둘이 아니게끔 나투면서 또 돌아가야 되거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공부가 참, 우리가 날마다 듣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항상 우리가 들었으면 듣는 대로 날마다 생활하면서…. 또 여길 오더라도, 내가 안 봐도요, 여러분이 앉아 있으면 여러분 어디가, 허리가 구부러졌는지, 허리를 펴고 앉았는지, 다리가 저린지, 다리를 오그리고 앉았는지 하나하나 다 알고 있어요. 그걸 아셔야 돼요.

여러분 마음이 알고 있는 대신에 나도 알고 있거든요. 여러분은 앉아 있기만 하면 뭐, 수인 줄 아는데 그 마음 가짐가짐이 말이에요, 중구난방이에요. 요새 가만히 지켜보면 사람마다 중구난방이야. 이게 색으로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스님이 설법을 안 했다, 스님이 없다, 이렇게 우리끼리만 앉았다’ 하는 게 벌써 들어가는 거예요. 자기가 그 자리에 앉았으면 벌써 자기를 리드해 나갈 수 있는 자기 자부처가 거기 있다는 걸 알아야지. 그 자부처라는 그 자체 한 점에 바로 스님네들의 마음과 역대 조사들의 마음과 모든 일체 사대 성인들의 마음이 거기 포함돼 있다는 걸 아셔야 돼요.

이 눈을 뜨고도 잘 줄 알아야 합니다
애를 만나면 내가 애가 돼 주고
어른을 만나면 내가 어른이 돼 줄 수 있다면
여러분 가정 기상대가 훌륭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내가 접때도 얘기했듯이, 우리가 땅속에 들어가 봐야 지리를 알죠? 지리를 안다 하더라도 이 오선 줄이 한데 합쳐져야 되는 거예요. 즉 말하자면 삼각원형을 이룰 수 있어야만이, 그것은 또 우리가 오광주를 얻기 위해서, 즉 말하자면 오광주를 한데 합쳐서 여의주라고도 해요. 그런다면 그거를 얻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하나 접근해서 우리가 나갈 때, 요거 하나를 알기 위해서도 요 물만 보는 것이 아니에요. 이 물의 질(質)이 어떤지, 물이라는 것도 알고 컵이라는 것도 알고, 이게 독약이 섞였는지 맑은 물인지 이것도 알아야 하고, 이 물의 생리도 알아야 하고 생명, 말, 뜻 이것도 알아야 되니까요. 어디서 온 것도 알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이것이 눈 간 데 귀가 가고 귀 간 데 몸도 가고 코도 가고 혀도 가고 다 통신이 가서 이것 하나를 들 수 있는 거거든. 알 수 있는 거거든.

그럼 한 가지만, 보기만 해도 이건 도가 아니다 이거야,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벌써 직감적으로 ‘아, 여기 이 산의, 이 땅의 혈맥이….’ 이러면 벌써 거기 땅속 깊이까지도 전부 나와 있어, 동시에. 그러면 그걸 알기만 해서가 아니거든. 그 땅이, 즉 생명이 있어서 같이 말할 수 있고 서로 통신이 될 수 있어야만 돼요. ‘그 땅 질의 역량이 얼마나 있나’ 그것도 알 수 있어야 하고. 그건 우리 사람들이 살아나오면서 ‘네가 역량이 얼마나 있느냐’ 그거 아는 거나 똑같아. 이 땅 질이나 돌 질이나 이런 문제들도 깔축없어. 그렇기 때문에 땅을 보는 순간순간이 한 찰나에, 보는 순간 한 찰나에 오신통이 다 동시에 들어가는 거야.

그러면 거기만 동시에 들어가는 게 아니거든. 보는 데도 쫓아서 같이 들어가고 듣는 데도 쫓아서 같이 들어가고. 사람과도 그렇지마는 생물도 그렇고, 어떠한 미생물도 그렇고, 어떠한 무정물도 그렇고 우주의 어떠한 생명 질, 항성, 행성, 또는 인위적으로 사람이 인공위성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모든 마음을 알고 기계의 모든 것을…, 이 인간이 복잡하게 기계화되어 있는 것처럼 됐듯이 기계도 아주 세밀하거든. 이 인체의 모든 세포가 아주 그냥 뭐, 이 두뇌만 하더라도 말도 못하지 않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기계를 하나 만들어도. 그럼 그게 줄 하나만 잘못되고 혼선이 돼도 그건 통신이 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묘해요. 인간이 얼마나 묘하기에, 묘하고 광대무변한 만법의 근원을 가졌기 때문에 물질로다가 그렇게 만들어 놓는 거예요. 얼마나 위대해요, 사람이.

그런데 지금 저 위성이나 항성이나 이런 것이 있는 것도 인간의 두뇌가 그만큼 본래 그렇게 만법의 근원을 가졌기 때문에 물질로만이라도 책정을 하고 돌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공부하는 거는 물질 그 자체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시간과 공간이 없는 그 초에 의해서, 한 시간을 초로 잡을 수도 있고 초를 한 시간으로 잡을 수도 있는 그러한 시공이 없는, 속도가 빠른 그러한, 즉 말하자면 속도가 빠르다 못해 아예 그냥 이렇게 놓여 있듯이 말이야, 이렇게 되는 문제들도 인간이 다 가지고 있다 이거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걸 인간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못 쓰고 있는 꼴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한마디로 비유를 하건대 우리가 살림을 하다 보면 때에 따라서는 자지 못하는 시간도 있어요, 잠이 안 와서.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요? ‘아, 오늘은 잠이 안 오니까 잠을 못 자는구나. 아유, 두 시간밖에 못 잤어. 세 시간밖에 못 잤어.’ 요렇게 생각들을 하거든. 그러면 그거밖에 못 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이 피곤이 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때는 한 시간을 못 잤다고 하더라도 일 초로 정해 놓으면 한 시간이면 일 초가 얼마나 많아요? 네? 얼마나 오래 잤어요? 이해 안 가요? 한 시간을 일 초로 잡았다면 일 분만 자도 몇 시간입니까? 60시간이죠? 허허허, 보세요.

그러니까 늦게 가는 거, 속도가 빨리 가는 것, 비행기를 타면 속도가 빨리 가는데 여기는 마차를 타고 간다 이럴 때 어떻게 생각이 돼요?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거 같아요, 위에서 볼 때. 허허허…. 그러니까 그만큼 우리가 지금 그렇게, 인간 이 자체가 1시간, 24시간 뭐, 이러고 가만히 그냥 그렇게 있으니까 이건 늙는 거예요. 빨리 늙는 거예요. 그런데 마음은 늙지 않죠? 왜 마음은 늙지 않을까요? 외려 철이 들고 늙지 않을까요? 마음은 빨리 돌아가고 육신은 게으르기 때문이에요. 허허허….

이거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이 설법을 듣는 대로 그냥 무단히 넘길 게 아니에요.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에 젊음을 소중하게 갖는 것도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달렸어요, 어느 정도는요. 다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건강하고 젊음을 갖출 수 있다 이러는 거는 한 시간을 일 초로 잡아서 자도 그것은 해롭지 않다. 또 잡아서 자는 게 아니라 아예 시간 탓도 하지 말고, 자게 되면 자고 안 자게 되면 안 자고 그래도 벌써 그 도리를 알고 그렇게 하면요, 그냥 한 시간을 자도 한 댓 시간 잔 거는 되거든요. 굳이 뭘 그렇게 따지지 않아도. 그러니까 때에 따라서 눈이 시글시글할 때가 있어요. 아주 정신은 말짱하고 잠을 안 잤어도 괜찮은데, 건강도 좋고 다 좋은데 눈이 시글시글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다면 이것은, 즉 말하자면 눈이 게을러서 같이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눈을 뜨고도 잘 줄 알아야 된다’ 이런 문제가 나와요. 눈을 뜨고도 잘 줄 알아야 된다. 자면서도 눈을 뜨고 자야 하고 눈을 뜨고도 잘 줄 알아야 한다. 이거 어렵게 들으시면 어렵지마는 우리가 아주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꾸 체험을 해 보고 해 보고 하면 능숙하게 되죠. 왜, 보리밥 못 먹는다는 사람이 한 번 두 번 먹어 보면 보리밥 먹어도 괜찮아요. 그렇듯이 말이에요.

서산 대사가 사명 대사더러 솔 이파리 찐 물에다가 날콩을 찧어 가지고 그 물을 먹으라고 그러니까 하나는 설사를 하고 하나는 된똥을 누거든요. “왜 나는 된똥을 누는데 너는 설사를 하느냐.” 이거야. 그것이 바로 그 점이거든요. 요것이 우리가 물질만 보고, 색만 보고 나간다면 시간율을 생각하고 하루 사는 거, 뭐, 한 달이다 두 달이다 얼마다 계산을 하고 사니까 느릴 수밖에. 그냥 시간과 공간이 없이 그냥 차칵차칵 돌아가는데 이놈의 거는 그렇게 게으르게 시간 따지고 뭐 따지고, 오늘이고 내일이고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이렇게 따지니까 나는 못 따라가는 거예요. 인간은 못 따라가는 거야, 거기를. 그러니 건강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잘 때 못 자고 좀 그렇더라도 그것을 커버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인간의 삶을 보람 있게 가질 수 있게끔 했으면 좋겠고요.

때에 따라서는 실천에 옮겨 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러니까 실천에 옮겨 보시도록 하는 데에 역점을 둬야지, 항상 얘기만 듣고선 휙 날려 버리고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단 한 가지라도 자기가 실천에 옮겨 보세요. 실험을 통해서 말이에요. 그리고 단 한 가지라도 이 마음에다가 꼭 들이고 낸다는 거, 그거 항상 얘기해서 아시죠? 그거를 일 초 일 분도 떠나지 않으셔야 나중에는 ‘아, 떠나나 떠나지 않으나 그냥 항상 그대로 있구나!’ 이게 나오죠. 처음에야 딱 그걸 붙들어야지, 언제나 그걸 붙들지 않고 됩니까?

예전에 이런 예가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북쪽 땅에 묘향산이라고 하는 데가 있는데 말입니다, 묘향산 그 자체 내에 비구 절간도 큰 절간이 있지마는 그 산등성이 너머는 비구니 절이 큰 절이 있었답니다, 옛날에. 그런데 그 비구니 절에서도 옛날에는 농사를 짓고 또 비구 절에서도 농사를 지었답니다. 농사를 짓는데 어느 해는 가물이 들었거든요. 가물이 들어서, 물이 이렇게 두 줄기로 이쪽에서 내려오고 저쪽에서 내려오는데 이쪽 논에다 받으려고 큰 구덩이를 이렇게 파 놓고 항상 물이 내려오면 거기서 쓰는데 아, 이쪽에도 구덩이가 있고 저쪽에도 구덩이가 있는데 가무니까 산에서 내려오는 물 조금씩 내려오는 걸 갖다가 비구들은 자기네 구덩이에다 다 받아서 인제 모는 심었는데, 이쪽 비구니 논에는 물을 주지를 않아서 그냥 논에 모를 못 심었거든.

그러니 비구니가 비구들하고, 옛날에는, 지금은 동등하다고 나서지마는 옛날에야 그저 댓 살 먹은 애를 보고도 오체투지하고 덤벼야 할 이런 입장이란 말이야. 그러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계율은 지켜야겠고 그러니까 말도 못하고 있다가 스님더러 가서 얘길 했어요. 거기 혜봉 스님이라고 하는 비구니 스님이 아주 유명했답니다, 옛날에. 그런데 그 스님이 나같이 못생긴 모양이에요. 못생기긴 못생겼는데 아주 상당히 유력했던 모양이죠.

하도 그 제자들이 딱하니까 “스님, 스님! 올해는 농사를 못 짓겠으니 어떡합니까?” 하니까 “왜 못 짓느냐? 이유가 뭐냐?” 하니까 “비구 스님들이 전부 물을 그리로 해도 그것도 적어서 비구 스님들도 논에 모를 다 못 낼 지경이니까 그냥 아예 이리로 들어오는 물을 막았습니다.” 이거야. “그러니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하니까 그 소리는 들은 둥 만 둥 하면서 껄껄 웃으면서 하는 소리가 “아, 내가 거문고를 튕기니까 말이다 아, 저 왜, 널따란 뱀 있지? 그 뱀들이 그냥 전부 지금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보는구나. 산천초목의 모든 만물이 저렇게, 푸름이 다 이렇게 쳐다보고 그냥 즐겨서 웃는데 저, 저거 봐라! 저거 봐.” 하거든. “응, 거문고를 한번 튕기니까 그 거문고 소리를 듣고 저렇게 모두 쳐다보는구나. 그러니 저렇게 모두 모이는구나.” 하거든. 그래 놓고선 또 시치미 뚝 따는 거라, 이놈의 중이.

그러니 그 제자들은 그냥 발버둥이가 쳐지는 거야. 한 해 농사를 짓지 못하면 못 먹는데. 식구가 다 굶어 죽을 텐데. 그러니까 “스님! 스님!” 그러는데 그 도리를 아나? “스님! 아, 농사를 못 짓는다는데 웬 거문고는요?” 하니까 “얘야, 거문고 줄이 늦춰져서도 아니 되고 너무 옹쳐져서도 아니 되느니라. 그러니 튕기기 좋을 만하게 알맞아야 튕기는 소리가 아주 청묘하게 나느니라.” 아, 이러곤 또 고만이라. 그래 고만이니 또 어떡하나. 그날 저녁에 공양을 다하고 난 뒤에 또 들어가서 “스님, 어떡했으면 좋겠습니까?” 하니까, “내일 아침에 일찌감치 가 보려무나.” 그러거든.

아, 그래서 아침에 비구니들 서넛이 내려가서 보니까 그 구덩이에 그냥 가득하게 물이 차면서 논에 물이 찼거든. 너무 놀란 거야, 응? 이 비구니들이. 그래서 거기에서 무릎을 탁 치면서 ‘그 뜻을 우리가 이렇게 모르고 살았더니 스님의 뜻이 이렇게 무궁무진하고, 이게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세상에, 거문고 소리 하나에 모두가 이렇게 한마음 한뜻이 돼서 이 물을 준 원인도, 바로 이 물도 스님의 마음이 아닌가.’ 그래서 그 물로다가 그냥 뭐, 농사 금방 짓게 됐지.

그러니까 비구 절에서 그 물이 어디서 그렇게 생겼느냐고 그러거든. 그러니까 이 스님네들은 그 뜻은 자세히 모르나 그대로 우리 스님이 거문고 한번 탁 튕기는 바람에 이 물이 나왔다 이거야. 하하, 참 재밌죠? 거문고 한번 탁 튀는 바람에 그냥 속에서 물이 솟아나왔다 그러거든. 그러니까 그 비구 절에서도 참 신기한 거라. 그러나 그걸 믿어 주질 않아. 믿지는 않는데, 도대체 자기네들은 논 몇 마지기를 못 심고 있는데 벌써 여기 이 비구니들 절 논에는 다 심고도 물이 찰찰 넘거든. 그러니 어떻게 됐어? 그래서 거기 원주가 그 스님한테 얘기해 가지고, “그러면 거기 비구니 스님을 한번 만나 봬라.” 그래서 만나 뵙고 나서 거기의 비구들 절 웅덩이에도 물이 그냥 철철 고이고 그때서부터 비가 오기 시작을 하고 농사를 잘 지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를 보면 비구니 얘기는 하나도 없어, 어떻게 된 놈의 게. 비구 얘기들만 있지. 응?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 아, 저희 어머니 얘길 안 해 놔? 저희 아버지 얘기만 해 놓고. 하하하…. 그러니까 참 유명한, 예전에도 비구니 스님들도 유명한 큰스님들이 많았답니다. 일연 스님이나 뭐, 혜봉 스님 같은 분들, 또 실제 스님 같은 분들, 그냥 하고많은 이름인데 다 잊어버렸지마는 많은 스님들이, 유명한 스님네들이 많았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비구니들이 아니었더라면 비구들이 큰일을 해내지 못했을 일들이 한두 건이 아니거든. 큰일을 해내는 데는 비구니들이 뒤에서 다 뒷받침을 해 줬거든. 수없이 뒷받침을 해 줬습니다. 나라에 어떤 공헌을 세운다든가 이런 것도, 고려 때 문제도, 팔만대장경 문제도 그렇고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이래도 비구니 스님들이 꼭 나서서 뒷면에서, 앞에 세우는 거는 비구 스님네들 세우고 또 어떠한 사람을 세우지마는 뒷면에는 언제나 비구니 스님네들이 그 거름이 됐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보살이 돼서 내조를 하되, 바깥의 남편을 앞에 세우더라도 항상 내조가 거름이 돼서, 어머니가 돼 줄 때는 어머니가 돼 주고 딸이 돼 줄 때는 딸이 돼 주고 또 친구가 돼 줄 때에는 친구가 돼 주고 또는 동생이 돼 줄 땐 돼 주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그 지혜가 필요한 겁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에 애하고 어른하고 만나면 말이 안 통하죠. 그렇게 돼선 안 돼. 애를 만나면 내가 애가 돼 줘야 돼요. 어른을 만나면 어른이 돼 줘야 하고요. 이렇게 해 나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신다면 우리 가정 기상대가 참 훌륭할 거예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국의 기상대를 가지고 논의하는데 그런 비오는 기상대만의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가정에도 기상대가 있지 않습니까. 야, 착 보니까 벌써 기상대가 말이야, 기상이 쭈굴쭈굴해. 그냥 꾸물꾸물하고 검은 구름이 끼었어. 그럼 비 올 거거든, 그게. ‘아, 꾸물꾸물하구나. 이거 비 오기 직전이구나. 그러니까 이거는 방지를 해야겠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그 지혜가 우리는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애들의 기상도 그렇고, 어른의 기상도 그렇고, 전체의 기상도 그렇고.

그럼 위에서 기상이 하나 나쁘면 아래까지거든. 한 부분만 비가 와도 그쪽은 다 꾸물꾸물하거든. 그러니까 활짝 개였나, 아닌가? 이것도 우리가 살필 게 어머니들로서 딱딱 들어가 맞게끔 해야죠. 우리가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높게만 두지 마세요. 어디까지나 높은 사람은 얕은 사람을 위해서 심부름꾼입니다. 언제나 윗사람은 심부름꾼이지, 여북하면 부처님께서도 똥 친 막대기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자체가 애들을 길러도 그 기상을 잘 봐서, “공부해라!” 이렇게 하고 싶어도 좀 검은 구름이 끼었다면 “얘, 좀 쉬었다 해라.” 차라리 요렇게 해 주면 속으로 ‘아이, 쉴 사이가 어딨나. 해야지.’ 이러지마는 “얘! 얼굴 찌푸리고 있지 말고 공부나 좀 해라.” 이런다면 그거는 벌써 비가 오기 시작을 합니다. “나는 우산 쓰고 그냥 나갈 거야.” 이럭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러한 가정의 기상대가 제일 중요하다는 겁니다. 첫째, 중요한 거, 남편의 기상대, 또는 애들, 어른, 자기, 뭐, 모든 게 그렇죠.

그런데 그 기상대만 있는 게 아니라 이 몸뚱이에도 기상이 있거든요. 야, 요 간이 기상이 나쁘냐. 좀 꾸물꾸물하느냐. 그럼 거우가 또 꾸물꾸물하느냐. 옆구리가 결리느냐. 이마가 걸리느냐. 이게 다 기상이라고, 응? 통신 기상. 그러니 우리가 모든 게, 하나를 알면 열 가지를 방지할 수 있는 그런 우리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거, 이것이 바로 부처님 법이자 우리들의 법이며 우리들의 법이면서도 이것이 여여한 도(道)로 승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도라는 이름이 도가 아니라 우리 생활 진리가 그대로 도로 승화해서 우리가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그게 도거든.

그리고 높은 것만 알고 높은 말만 제일이라고 하지 말고 얕은 것이 있기 때문에 높은 게 있고, 밥 한 숟가락이 있기 때문에 한 사발이 있지, 만약에 한 숟갈이 없다면 한 사발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한 숟갈 양이나 한 사발 양이나 똑같아. 아까 얘기했죠? 이게 비행기로 가는 거나 마차로 가는 거나 이것은 어느 부분이 빨리 간다고 할 수가 없어요, 이거를 본다면. 이게 빠르냐 이게 빠르냐 하면 누구나 상식적으로 비행기가 빠르다고 할 테죠.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 초월된 데서는 이게 빠르다 이게 빠르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물질이 빨리 가고 늦게 가고 그럴 뿐이지, 우리 마음의 도리는 마음대로 빨리 갈 수도 있고 줄일 수도 늘릴 수도 있다는 그 점, 자유자재할 수 있는 그런 점이 우리한테 주어져 있다는 거를 아신다면 능률이 많이 날 뿐 아니라 이 기상, 또는 이 몸의 기상도 우리가 건강하게 이끌어 가지고 갈 수 있는…. (녹음 안됨)

모든 여러분 속에 들어가서 나도 같이 살다 보니까 ‘에이! 몸이 아프면 의욕이 없더라.’ 그런 것도 알고요, 그러니 그저 아프든 안 아프든 의욕을 잃지 않게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그거는 기상이 나쁘지 않습니다. 뭐, 조금 시무룩하다가도 야, 시무룩할 게 뭐 있나요? 잘 방지하면 그것도 또다시 승화해서 헤헤 웃을걸요. 이 몸도 그러해요. 그러니까 우리 잘해 봅시다.

이런 얘기만 듣는 게 아니라 저 위에 올라가서 좌선들 하고 참선들 할 때도요, 모든 것은 여러분이 각자 자기의 차원에 따라서 가정에서 아프거나 뭘 하거나 안되는 일 뭐, 제가끔들 가지고 있죠? 가지고 있는 거를 당신이 주인공 거기에 모든 거를 맡겨 놓고 관할 수 있는 그거를 갖는다면 한 시간이 가도 언제 갔는지도 모르고 그렇거든요. 그리고 앉음앉음이는 언제나 단 한 시간을 앉았다 할지라도…, 여러 시간을 앉았다고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 그렇게 앉아서, 여기에서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이 정말 일 년, 이태 그만큼 노력 안 하고 공부한 사람 없어요.

그러니 그것도 영광이라 생각하고 참, 법당에서 그렇게 하실 때는 언제든지 나는, 여러분이 앉아 계시기만 하면 나는 여러분하고 언제나 좌석을 같이하고 있다는 걸 아셔야 돼요. 그러니까 열심히 그렇게 해서 우리 속도를 좀 더 빨리 하는 수밖에는 없기 때문에, 또 이렇게 총무 스님이 알선을 하고 내 뜻을 같이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줄 아시고요.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86년 6월 6일 일반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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