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연대표’로 읽는 과거 기억
‘인생연대표’로 읽는 과거 기억
  • 김성수 마음과학연구소 대표
  • 승인 2019.03.25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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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쓰기명상 실제’에 앞서

글쓰기명상 몸풀기 단계에서
한계 느껴 포기하고 싶어도
당신은 이미 변화를 경험했다
겁먹지 말고 다시 두드려보자

당신은 드디어 <글쓰기명상과 자기상담>의 워밍업을 마쳤다. 본격적인 글쓰기명상을 하기 전 몸풀기를 한 셈이다. 그런데 가끔, 워밍업하다 탈진했다는 분이 있다. 워밍업이 이런 강도라면 글쓰기명상의 실제편은 감당하기 어렵겠다고 지레짐작으로 두손 두발을 들까말까 궁리하는 분이 있다. 이해가 된다. 우리가 해온 워밍업은 어느 것 하나 가벼운 주제가 없었다.

삶의 동기, 신앙에 대한 동기, , 느낌, 마음, , 사랑, 인연, 건강, , 가족 등에 대한 내 마음 관찰 등등. 나라는 존재의 생존 최전선에서 철야 불침번 같은 주제들이자 정예 소총수 같은 질문들이다. 나라고 하는 자아가 이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 받아본 적도 없다. 그러니 카메라 앞에 선 아마추어 출연자처럼 당혹스럽거나, 혼란스럽거나 정체불명의 피로감에 넉다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어쩌면 나는 이번 생에 어떤 소망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 기억조차 없을 수 있다. ‘지금을 사는 이유, 한 달을 사는 이유, 올해를 사는 이유이런 걸 꿈결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도 하다. 이런 제기랄, 천하의 아무개가 제 인생의 핵심 이슈를 일별해본 기억조차 없다니. 벼락같은 낭패감이 당신을 흔들어댈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당 수치가 바닥을 친 당뇨 환자처럼 모든 전망이 불안정하고 아득해질 수도 있다. 세상에나, 내가 살아야 할 이유도 모르면서 살고 있다니!

하다못해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내 몸의 특이한 점이나 흉터는?” 같은 질문 앞에서도 허겁지겁한다. ‘아무도 모르는 내 몸의 흉터라니? 그럴 수 있나? 그래, 정말 내 짝꿍도 모르는 흉터가 있기는 하지. 근데 그게 지금도 있을까?’ 툭 던진 잽에 맞아 혼절지경에 빠진 복싱 파트너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링에 오르기도 전에 지쳐 무너질 것 같다는 말은 괜한 푸념이 아니다. 고백하건대, 나 또한 글쓰기명상 워밍업에서 툭툭 던져지는 질문을 얻어맞고 뒤로 벌러덩 넘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살면서 내 마음은 주로 어디에 사용해 왔는가?” 이런 질문에 한 방 맞기라도 하면,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한테 되묻곤한다. , 나는 마음을 주로 어디에 사용해왔지? 글쓰기에 쏟았나? 아니, 근심 걱정하는 데 퍼부었을까? 딸내미를 과격하게 사랑하는 데 다 써버렸을까?

중도하차 고민하는 당신에게
글쓰기명상 워밍업을 하다가 본 과정의 중도하차를 고려하신 분이 있다면 잠깐 이 한마디만 듣고 가시기 바란다. 당신은 워밍업의 질문 항목을 읽어본 것만으로도 글쓰기 몸풀기를 대부분 수행했다. 답변은 중요한 게 아니다. 아니, 답변이라고 따로 정해진 바 없다. 오늘의 정답이 내일이면 거품이기 십상인 게 우리 삶의 실상이다.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우면 같은 물, 같은 포인트에서도 다른 물고기가 올라오는 이치를 생각해보라. 그러므로 실망 스톱. 중요한 것은 워밍업을 하면서 그동안 잠들어 있거나 검붉게 녹슬어 삐걱거리던 의식이 화들짝 깨어났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어나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맞이하고 밤새 탁해진 공기를 내뱉는 일처럼, ‘워밍업은 의식의 환기작업일 뿐이었다. 송곳 같은 질문에 찔리고도 무감감, 무감동했다고 실망할 일 아니다. 워밍업은 글쓰기명상의 실제편을 열기 위한 관절 풀기였으니까. 워밍업을 읽어본 것만으로도 당신의 먼지 낀 의식은 담요 털 듯이, 충분히 털어냈다.

<글쓰기명상의 실제>30여 개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단원들은 워밍업에서 보았던 단도직입적인 질문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질문형 내용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갑자기 푹 찌르는 질문보다는 달짝지근한 권유나 조언의 색깔이 강하다. 또 다른 점은, 제목과 내용풀이가 함께 놓여 있다는 것이다. 내용풀이를 가만히 읽어보면, 제목의 속내가 드러나보인다. 맑은 개천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피라미 떼를 발견하게 되듯이, 제목 아래 내용을 잘 살피면 저자가 무슨 의도로 저런 제목을 붙였는지 이내 짐작할 수 있다. 제목과 내용풀이가 서로 연동하면서 당신에게 말을 건다. 글쓰기로 당신 마음 한번 들여다보지 않겠소? 그 시작은 인생연대표 작성이다.

인생 연대표 작성

- 기억나는 자신의 모든 삶을 연대기별로 한두 줄씩 짤막하게 적어가기. 한국사나 세계사 연대표 작성하듯 자신의 삶을 한 해 단위로 돌아보면서 초단문으로 적어간다.

- 자서전 쓰기, , 소설, 수필 쓰기 등의 기본 작업.

- 탁월한 자기 관찰과 자기 집중, 실제적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 큰 도움을 줌.

-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구체적 응답을 보게 됨.

- 한 건씩 적어가는 동안 자신이 다양한 체험과 격변을 겪었음을 알게 되기도 함.

나는 왜 글쓰기명상의 실제편’ 1순위에 인생연대표 작성을 배치했을까. 모든 글쓰기명상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분간 나라는 물건에게 화력을 집중하기로 작정하지 않았는가. 마치 클레이 사격장 사수대에 오른 사수처럼 나라는 존재의 감각과 생각과 기억과 감정 들을 겨냥하여 알아차림의 총알을 날리는 일. ‘인생연대표는 당신이 겨눈 총구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해오는 기억의 포로들을 줄지어 세우는 작업이다.

인생연대표의 특징은 내 살아온 이력을 연대기별로, 거칠게나마 적어가는 일이다. 이 글쓰기는 철저히 기억에 의존하는 만큼 단순하고 담백하다. 반만년 대한민국 연대기를 보라. 당신의 인생도 책갈피의 꽃잎처럼 건조 보관될 수 있다. 한가지, 대한민국 역사 연대표는 후손들이 정리했지만 인생연대표는 당사자가 직접 정리한다는 점에서 각별하고 은밀하다. 당사자가 직접 정리하기에 자기신뢰는 기본 점수가 된다. 그것이 설사 열살 소년기의 어리버리한 기억이고, 스무살 청년기의 혈기방장한 널뛰기 과거라 해도 확신에 찬 사실로써 복원된다. 아무도 나의 기억에 토를 달지 않는 세상.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1977(10) - 초등 4학년 3반 장현 선생님 / 가을인지 겨울인지에 신한제약(파리약 피디피로 유명) 옆으로 이사함. 동네는 새로 생긴 기와집이 많았으나 아직 밭들도 많았음. 가을이나 겨울에는 까마귀가 새까맣게 앉았고 봄에는 인분 내음이 요란했음 / 가창 분교인 중앙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음 / 선생님이 아침 등굣길에 교실에서 당신의 구레나룻으로 내 얼굴을 북북 문질러주었음 / 수업 중, 장난하다 걸려서 교탁 앞에 가 엎드리니까 선생님이 때리려다 말고 구레나룻으로 얼굴을 박박 문지르고 들어가라 했음 / 겨울에 과외 받던 애들이 눈싸움하던 기억

기억은 편집된 과거
이런 말이 있다. 기억은 편집된 과거라고. 기억은 의식의 색안경을 쓰고 제멋대로 재구성한 허구라는 말이다. 이를 말인가. 우리집 6형제가 하나의 사건을 두고 3가지로 기억하는 사태를 목도한 적이 있다. 7살 무렵, 우리집 장독대에는 내 키 두 배는 돼 보이고, 옆집 배불뚝이 할아버지보다 세배는 뚱뚱한 항아리가 하나 있었다. 어느 날 이 항아리가 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장독대 항아리 중 왕초 항아리가 팍삭 깨졌으니 거기서 터져 나온 맵고 짠 된장 내음이 온 집안에 진동하는 것은 불문가지. 수십 년이 지난 후 우연찮게 이 사건을 두고 형제들 간에 화제가 됐다. 형제들이 모여서 항아리 깨진 것까지는 행복한 기억통일을 이루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때 성아가 장독대에 대고 새총 쐈지?”

? 내가 아니고, 어디선가 돌멩이가 날아든 건데?”

돌멩이는 무슨 돌멩이. 작은 누나가 나비 잡는다고 장독대까지 쫒아갔다가 사고친 거지.”

어머머!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큰 항아리를 깬다니!”

그러니까 놀라운 일이지 뭐야! 그 일 때문에 우리 아들들만 괜히 혼났잖아.”

없는 항아리라도 하나 더 깰 것 같은 기세로 시끄러워졌다. 동생은 동생대로 다른 기억을 추켜올렸고 누나는 누나대로 팩트 운운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들이댔다. 덕분에 분위기는 대봉 홍시 물러터진 것처럼 달짝지근한 난장판이 됐고, 그 틈에도 나는 옳거니, 바로 이거야하면서 만세 부를만한 수확을 챙기고 있었다. 엉망진창인 누나의 민낯 못지않은 기억의 민낯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 기억의 본래 얼굴은 이런 거였어.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각자의 정답이 있는 거였어. 아무도 못 말려.

그런가. 결국 인생연대표는 기억이라는 신기루의 헛된 말풍선이란 말인가. 기억은 편집된 과거이고, 의식의 색안경에 갇힌 과거니까, 별 의미 없는 것일까. 아니다. 기억은 기억으로서 이미 숭고하고 진실하다. 가족간의 기억이 제아무리 콩가루라 해도 가족이라는 진실 위에 놓이면 맛좋은 콩고물 범벅으로 변하게 되듯이. 당신의 기억이 신기루라하여 모두 다 제거해보라. 무엇이 남을까. 나라는 존재가 남아나기나 할까.

이 문제의 해답은 순수 기억에 기대어 인생연대표를 작성하는 당신의 마음에 있다. 당신은 의식 속에 박제된 자신의 역사를 낚아 올려서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존의 어망에 담고 있다. ‘인생연대표는 이미 죽은 시간을 거슬러 선과 면과 공간이 살아있는 입체의 세계로 환생시키는 일이다.

인생연대표의 작성 요령은 지금의 나이부터 과거의 시기로 거슬러 가는 방법이 있다. 거꾸로, 저 아득한 과거부터 순서대로 올라오는 방법도 있긴 하다. 선택은 자유다. 이왕이면, 밀고, 당기고, 끼워넣기가 자유로운 컴퓨터 한글프로그램을 활용해보라. 사유의 특성이 그렇듯, 한 건의 단서가 잡히면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잔잔한 인연들이 주렁주렁 달려나온다. 기억의 줄기 따라 요모조모 들여다보면 미처 몰랐던 내 정서나 마음의 지도가 드러나고 생각지도 못한 나만의 옹달샘을 발견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던 그때 그 일의 전모가 홀연한 깨달음으로 열릴 수도 있다. 아하, 그 일이 이거였구나.

자서전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인생연대표 작성은 건축물로 말하면 설계도이자 기둥이다. 이 작업만 잘 정리해도 자서전 안 쓰고 못 배기게 된다. 자신한다. 자서전은 인생연대표라는 뼈대 위에 이런 저런 사연들을 하나씩 덧붙이는 일이다. 일단,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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