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팔풍부동(八風不動)

삶에는 사람의 마음을 현혹하게 하는 8가지 바람이 있다. 칭찬(稱)과 비난(譏), 기쁨(樂)과 근심(苦), 이익(利)과 손실 (衰), 명예(譽), 헐뜯음(毁)이다. 팔풍부동(八風不動)은 이 여덟 가지에 흔들리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손오공이 삼장법사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우리의 인생도 하루하루 팔풍 속에 있다. 날마다 사업, 출세, 돈, 명예, 근심, 걱정, 번민, 증오 등 팔풍에 시달리고 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희로애락의 팔풍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팔풍이 곧 인생이고 인생이 곧 팔풍인 셈이다.

팔풍이 심한 날에는 꿈속에서도 계속 된다. 악당에게 쫓기는 꿈이나 무서운 꿈을 꾸면서 발버둥치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꿈속의 일들은 좋은 못한 일들이 더 많다. 어쩌다 좋은 꿈을 꾸어도, 그 순간은 매우 짧다. 꿈은 의식의 반영, 현실의 반영이라고 한다.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열자(列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공자의 제자 안회가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젠 쉬고 싶습니다. 언제쯤 쉴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저 북망산(무덤)을 바라 보거라.”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죽어야 쉴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팔풍과 이별할 수가 없다. 관건은 칭찬(稱), 비난(譏), 기쁨(樂), 근심(苦), 이익(利), 손실(衰), 명예(譽), 헐뜯음(毁) 등 팔풍에 동요하지 않는 것, 초탈, 초연해 지는 것밖에 없다. 팔풍이 불어와도 과민 반응을 하지 않고 무던해지면 된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팔풍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법구경(81)>에는 다음과 같은 명구가 있다.

“견고한 바위가 폭풍에 흔들리지 않듯, 현명한 사람은 칭찬이나 비난의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매우 좋은 구절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칭찬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속된 말로 목에 힘을 주고 오만을 떨며 우쭐댄다. 이것은 자신이 소인이라는 것을 노출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비판, 비난하면 쉽게 열을 낸다. 이렇게 남의 말에 우쭐해 하거나 열을 내면 이미 팔풍에 걸려든 것이다.

또 기쁜 일이나 즐거운 일이 있으면 들뜨고 방만해 진다. 반대로 근심, 걱정거리가 생기면 우울해지고 수심에 잠긴다. 이익과 손실, 명예와 비방에 마음은 극락과 지옥, 열탕과 냉탕을 반복한다. 이렇게 살다 보면 도저히 주체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희로애락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평상심, 평정심을 가지라는 것이 팔풍부동의 의미이다.

팔풍에 흔들리면 찾아오는 것은 괴로움, 고통뿐이다. 흔들리는 강도가 높으면 고통의 강도도 높고, 강도가 낮으면 고통의 강도도 낮다. 적게 흔들리면 적게 받는다. 기술은 가능한 적게 받도록 훈련을 하는 것이 상책이다. ‘얼마만치 적게 흔들리고 살아가느냐.’가 기술이다. 그것은 곧 얼마만치 마음의 상처를 적게 받느냐와 직결된다.

팔풍 가운데 칭(稱)은 면전에서 칭찬하는 것을 말하는데, 면전에서 칭찬하면 진심이든 립서비스든 보통은 ‘감사합니다’ 혹은‘ 과찬입니다’라는 인사 정도는 해야 한다. ‘소 닭 쳐다’보듯이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푼수나 소인은 목에 힘을 주기도 하고 스스로를 추켜세우기도 한다. 설사 훌륭하다고 해도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인생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예고 없이 나를 찾아왔는데, 들어서자마자 앉지도 않고 나를 칭찬해대기 시작한다. 어찌되었든 칭찬을 하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아 서 융숭하게 대접했는데, 똑같은 말로 칭찬을 하니 그게 세 번째가 되었을 때엔 팔풍부동이 되었다. 그런데 이분이 네 번째 방문부터는 갈 때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여지없이 빌려주어야 한다. 돌려받은 적은 없다. 팔풍에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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