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3칙 백장불자화 3

[評唱 2]

古時尊宿 ?見僧來 便?起拂子 問佛法 或問祖意西來意 多?起拂子 所謂 如獅子?兒. 迷?訣 ?方跳擲又?身了也 須會他宗師家手脚始得 如此奇?. 看他師資相見. 如印印空 更無瑕? 如印印泥 誰辨得他字義. 到這裏 道吾舞笏同人會 石鞏張弓作者知 如印印水.

옛날에 존숙(尊宿, 덕 높은 어른)들은 (학인)스님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바로 불자(拂子)를 들어 세웠고, 불법(佛法)을 묻거나 혹은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祖師西來意)을 물을 때에도 많이들 불자를 들어 세우곤 했는데, 이른바 마치 사자(獅子)가 새끼를 가르치는 것과 같았다. 미혹한 자취를 끊어야 바로 뛰어올라 몸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니, 모름지기 저 종사들의 솜씨가 이와 같이 비할 데 없이 기이했음을 알아야 한다. 저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만나는 것을 보라! 마치 도장을 허공에 찍는 것과 같아서 (如印印空) 조금의 허물이나 잘못도 없고, 마치 도장을 진흙에 찍는 것과 같은 데(如印印泥) 누가 저 글자의 뜻을 가려낼 수 있겠는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도오(道吾)가 홀(笏)을 잡고 춤을 추자 동인(同人, 같은 경지에 있는 사람)이 알았고, 석공(石鞏)이 활시위를 메자 작자(作者, 선지식)가 안 것이 마치 도장을 물에다 찍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涅槃心易曉 差別智難明. 只如 ?山問仰山 “馬祖出八十四員善知識 幾人得大機 幾人得大用” 仰山云 “百丈得大機 黃蘗得大用 自餘皆是唱道之師” 看他馬祖一喝 百丈直得三日耳 聾 且道 此一喝意作?生. 不見適來道 “輪王?中珠 不可輕分付” 古人那裏肯獨自用來.

열반심(涅槃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차별지(差別智)는 밝히기가 어렵다. 위산(?山)이 앙산(仰山)에게 물었다. “마조(馬祖)에게서 84명의 선지식이 나왔는데, 몇 사람이나 대기(大機)를 얻었으며, 몇 사람이나 대용(大用)을 얻었느냐?”

앙산이 말했다. “백장(百丈)이 대기를 얻었고, 황벽(黃蘗)이 대용大用을 얻었습니다. 나머지 모두는 창도사(唱道之師, 교가의 스님) 일뿐입니다.”

저 마조가 일 할(一喝)을 하자 백장이 곧바로 3일 동안 귀먹었던 것을 보라! 자, 말해보라! 이 일 할의 뜻은 무엇인가? 좀 전에 말한 것을 보지 못했는가? “전륜성왕의 상투 속 구슬은 가볍게 주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던 것을! 고인(古人)이 언제 제멋대로 쓰는 것을 긍정했는가? ?도오는 관남도오(關南道吾)를, 동인(同人)은 도오의 스승 관남도상(關南道常, 염관제안의 법손)을 뜻한다.

?석공은 석공혜장(石鞏慧藏)을, 작자는 삼평의충(三平義忠)을 뜻한다.

?석공혜장(생몰 연대 미상): 당나라 때 스님으로 원래 수렵을 업으로 했는데, 어느 날 사슴을 쫓다가 마조도일을 만나서 설법을 듣고는 활을 버리고 출가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삼평의충(三平義忠, 781~872): 석공혜장에게 참구하고, 후에 대전보통의 법을 이었다.

?위산영우(?山靈祐, 771~853): 당나라 때 스님. 제자 앙산혜적과 함께 선풍을 크게 거양하여, 그 법계를 위앙종이라 함. 15세에 출가, 백장회해 문하로 들어가 법을 이음.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 17세에 출가하여 두개의 손가락을 잘라서 서원을 세우고 삭발함. 위산영우에게 참학하여 법을 이음.

?황벽희운(黃蘗希運, ?~850): 백장회해의 법을 이음. 배휴의 청에 의해 출가지인 황벽산에 가서 황벽이라 이름 짓고 개조가 됨. 제자로는 임제의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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