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무원 특강...조계종 화쟁위원 도법 스님

주제 : 한반도 평화와 불교의 역할

조계종(총무원장 원행)31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공연장서 종단 교역직 스님과 종무원을 대상으로 연례 특강을 진행했다. 이날 강사로 나선 도법 스님은 이 시대 핵심 화두인 평화에 대해 불교가 해야 할 역할을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스님은 부처님은 전쟁 한복판에 앉아 전쟁을 종식시키며 싸움으로는 해결되지 않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보였다삶의 현장 곳곳에서 평화가 정책과 제도로 자리 잡도록 한국불교가 크게 발심하고 원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법 스님은… 1995~2004년 실상사 주지를 역임해 현재 회주를 맡고 있다. 귀농전문학교 교장,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조계종 화쟁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2004년 생명평화탁발순례단 단장으로 5년간 전국을 순례했다. 2018년 3월 1일부터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 3월 1일까지는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은빛순례단의 불교 대표로 여정에 함께했다.

외교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일상 속 분열 종식해야 '평화'
전쟁희생자 천도재·화쟁순례 등
"전 불교계 합심해 보여줄 때"

 

분단 70, 성찰적 문제의식
실상사에서 100일에 한 번 지리산 연찬회가 열립니다. 작은 규모지만 대단히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2017년 열댓 명이 모여 식민지, 분단, 전쟁에 대해 논의했을 때예요. 분단 70년이라는 동족상잔의 역사를 단순화시켜보니 극단적인 분열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이승만과 김정일 두 수장이 함께하는 세력으로 나아갔다면 분단 70년의 역사가 나타났을까요? 참석자들의 공통 견해는 우리 안의 분열 문제를 정확하게 직시하지 않고서는 분단의 문제를 풀거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핵전쟁이 나느냐 마느냐를 논하던 최악의 상황이었거든요. 한 참석자가 전쟁 불안이 고조되니까 자기 자녀들이 진지하게 이민을 고민한다며 상의하러 왔다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손자손녀에게 전쟁불안에 벌벌 떨며 살 수밖에 없는 나라, 전쟁의 한반도를 넘겨주는 상황이구나 하고 실감이 나더군요. 차마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짓이란 자괴감이 들었어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평화의 한반도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어른으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남은 생은 열정을 다해 걷고, 묻고, 듣고, 배우고, 대화함으로써 함께 하는 마음을 모으고자 순례를 하게 됐습니다.
 

평화순례 향한 발심과 서원
100년 전 기미독립선언서에 담긴 내용의 완성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불교계를 비롯해 우리 모두는 늘 3.1운동 정신을 기린다고 말로는 해왔지만 구체적으로 그 내용들이 실제로 완성될 수 있도록 나아가는 부분에는 소홀했습니다. 그래서 순례를 통해 한반도 평화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출발점이 돼보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저는 2000년 초부터 많은 사람들과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방법을 모색해왔고 여러 가지 형태 중 하나로 순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은빛순례자들은 한국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60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됐습니다. 그리고 201831일부터 201931일까지 은빛순례를 통해 독립선언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현충원 내 역대 대통령 묘소를 분향하는 것으로 시작된 순례는 분단 최전방인 백령도서 마쳤습니다. 방방곡곡 남녀노소가 함께 대한독립을 외쳤던 것처럼 3.1운동 100주년 31일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민선언을 했습니다.

역사적 현장에 가보면 피맺힌 아픔들을 차마 다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산천 어느 한 지역도 피맺힌 아픔이 없는 곳은 없었습니다. 마을전쟁 등 우리 안의 냉전으로 얼어붙은 피맺힌 응어리가 겹겹으로 쌓여있었어요. 정치적으로 이겼다, 졌다, 빼앗았다, 빼앗겼다가 아니라 가슴마다 증오와 원망이 그야말로 핏덩어리처럼 엉켜있는 겁니다. 순례자들은 그동안 헛 살았다고 할 정도로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지역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남북 간 냉전은 평화적인 방향으로 길을 열어나가려는 노력 중인 반면, 우리 안의 냉전은 아직도 풀기엔 너무나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지역에서의 갈등은 구체적이고 일상적이어서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전쟁의 현장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삶이 지긋지긋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야한다고 절규합니다.
 

한국불교의 최우선 과제
최근 10여년 세월동안 조계종은 많은 성과도 냈지만 그에 못지않게 상처도 많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자의 자존감은 심각하게 훼손됐습니다. 출가수행자들도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상처받고 무너져있어요. 우리 불교계는 불교인이 부끄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에요.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내가 수행자노라, 불자노라 자랑스럽게 밝힐 수 없는 것이 말입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시급한 것은 바로 불교에 대한 사부대중의 자존감,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일입니다.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온 종단이 나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36년의 세월 그리고 광복 이후 오늘날 서구문물이란 새 바람이 휘몰아치는 상황 속에서도 불교 스스로를 지켜내고 불교를 바로세우기 위해 몸부림쳐왔습니다. 불교가 가진 잠재력은 대단합니다. 대단히 많은 성과가 무색하게도 지난 10여 년간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사회적으로 불교는 1700년의 역사와 사상,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죠.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일반 시민들이 불교가 저런 의미 있는 일을 한다. 대단하다. 저런 역할을 해주고 있는 불교라면 나도 불교에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라고 생각할 만한 일들을 불교가 했던 적이 있나요? 불교는 한국 사회를 주도하거나 일반 대중이 불교가 하는 일에 의미를 느끼고, 기대를 갖게 하고,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잠재력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이제는 불교가 한국사회를 한 번 들썩이게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온 종단이 마음을 내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회를 위해 한 역할을 하기 위해 과정들을 만들어내서 현실로 구현한다면 분명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회적 이목을 끌기 위해 이벤트 성으로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1000일 기도를 하는 심정으로 온 종단이 합심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불교가 사회적 평가를 받고 의미부여가 이뤄집니다. 사회가 불자와 스님들에게 고마워하고 앞으로도 기대를 갖게 될 겁니다. 이 나라 어디를 보더라도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이지만 그래도 불교가 있어서 의지처가 되고 희망을 갖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교인들의 상처와 자존감도 치유되고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고요.
 

합동천도재와 화쟁정상회담
평화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 남북정상이 회담을 했고 기적 같은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많은 한계와 걱정도 있긴 하지만 세계가 주목하고 온 겨레의 가슴이 설레기도 한 일이죠. 사실 불교가 평화의 종갓집입니다. 평화가 현실이 되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정상적으로 다뤄질 수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데 뭐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늘 악순환의 반복일 뿐입니다. 그동안 인류가 경험해온 전도몽상(顚倒夢想,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헛된 꿈을 현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의 역사이도 합니다. 이를 넘어서고자 했던 게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 몸짓으로 설법하는데, 전쟁 한 복판에 앉아있던 부처님 모습이 바로 그렇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려고 할 때 그 한 가운데 앉아있었어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까. 싸움의 방식은 안 된다. 평화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불교다. 그 뜻입니다. 따라서 분노는 분노로, 증오는 증오로, 원한은 원한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직 인내와 관용과 평화로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말로 이어지는 겁니다. 부처님이 온몸으로 실현한 이 장면이 영원한 진리입니다.

마침 평화가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이 됐습니다. 다만 정치 외교문제로만 다뤄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평화가 현장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정책과 제도와 문화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내려면 정부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크게 발심하고 원을 세웠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한반도의 냉전을 녹여낼 한국전쟁 희생자 합동천도재를 제안합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 참전국까지 포함돼야 합니다. 야심만만하게 준비하면 정부가, 남북 공동 차원, 어쩌면 UN까지도 관심을 가질지 모릅니다. 마지막 냉전현장인 한반도에서 평화의 새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안의 냉전을 녹여낼 우리 안의 화쟁정상회담을 여는 겁니다. 지난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에는 불교의 화쟁중도정신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남은 냉전을 녹이고 얽혔던 것들에 대한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정상회담에 담겨 있는 지혜를 우리 안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의 정상회담들이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 안의 정상회담을 기도하는 천 일 순례에 종단 모두가 함께한다면 한반도 평화실현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제적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온 종단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불교의 소중한 인적 자원들을 많이 잃어버린 10년이었습니다. 우리 안의 냉전과 남북의 냉전을 풀어내는 화쟁정상회담순례를 통해 인적 자원들을 다시 살려내고 일으켜서 이 쪽 저 쪽 편을 가르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도반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봅니다. 상처받은 우리의 자존감이 치유되고 불교가 빛남과 동시에 국가와 사회, 민족의 희망도 만들 수 있는 우리안의 정상회담 순례 프로그램들을 적극 모색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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