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오셋타이’서 온정 느끼다

치쿠린지의 지장보살상들. 치쿠린지는 일본의 3대 문수도량으로도 유명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일단 점심을 대충 먹고서 참배하기로 했다. 납경소 옆으로 붙어있는

휴게소에 짐을 풀어 놓고 아까 받은 과자들을 꺼내 먹기로 한다. 마침 휴게소에 차를 마실 수 있게 마련되어 있다.

시원한 차를 뽑아 먹으며 보니 작은 나무 그릇 안에 과자가 또 한가득 들어있다. 순례자들에게 간식으로 보시하는 과자라고 쓰여 있었다. 몇 개를 골라 와서 아까 받은 과자들과 함께하니 적당히 요깃거리는 돼 보였다.

3대 문수도량 치쿠린지
선재동자 합장 동상 바라보며
구법 향한 열정·원력 되새겨
순례길서 만난 일본 어르신
사정 듣자 1천엔 건네주기도
베품, 오셋타이의 정신이다

출출한 배를 달래고 예불을 하러 나섰다. 중세로부터 번성해온 사찰답게 다른 절들과 비교해

본당이 크고 웅장했다. 대들보에는 현불(懸佛)’도 걸려 있었다. ‘현불이란 둥근 동판에 불상을 부조로 조각해 매달아 두는 것으로 제법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절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이다. 이곳 치쿠린지의 현불은 거의 3차원의 불상이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지혜의 본존인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는 일본 3대 문수도량이라니 예불을 올리는 마음이 좀 더

경건해진다. 아무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데 중요한 것이 지혜이니 그런 것이다.

정례로 예불을 올리고 문수보살의 진언을 오래도록 염송했다. 예전에 달라이라마 존자의 법문

을 듣는데 지혜에는 넓고, 밝고, 신속하며, 예리한 네 가지특성을 갖추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지혜를 증장하는 데에는 문수보살에 의지하여 기원하면 좋다고 이야기 하신 것이 기억났다.

예불을 올리면서 지혜의 4가지 특성이 이루어지길 기원했다. 대사당으로 발걸음을 올리는데 나무 아래 작은 동자상이 본당을 향해 합장하고 서있었다. 어떤 동자상인지 궁금해 아래에 붙은 설명문을 보는데 선재동자라는 이름만 붙어있었다. 문수보살은 <화엄경>에서 선재동자의 53선지식 중 제일 처음 찾은 선지식이다.

문수보살께서 보리심을 일으킨 선재동자에게 보살의 행을 성취하기 위해선 선지식들을 찾아봬야 한다고 말하고, 남쪽으로 구법을 떠날 것을 권하는 것으로 화엄경의 입법계품이 시작된다. 이때 선재동자가 문수보살께 법을 구하며 청하는 게송들은 언제 읽어도 마음이 움직이는 명문이다.

묘한 지혜의 청정한 태양, 대비의 원만한 바퀴여. 능히 번뇌의 바다를 말리니, 바라건대 조금이라도 저를 살펴보소서.” (5)

본당을 바라보는 선재동자상과 함께 사진 촬영하는 필자.

결의에 찬 눈동자, 무엇인가 여쭈는 듯 살짝 열린 입술에서 선재동자가 법을 구하는 열의가 느껴지는 동자상이었다. 그 표정이 좋아서 한동안 보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사찰 신도가 말을 걸어온다.

오헨로상! 이 아이랑 사진 찍을래요?” 순간 어떤 아이인가 하고 두리번거렸더니 선재동자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냉큼 휴대폰을 건네 동자상 옆에 합장하고 섰다.

이왕에 찍는 거 꼭 안고 찍는 것이 어때요?”

아이고, 이 분은 불경에 나오는 보살님인데 어찌 감히 안고 찍겠습니까.”

그렇게 선재동자와 사진을 찍고서 대사당의 예불도 마쳤다. 다시 배낭을 업고선 다음 사찰을 향해 길을 잡았다. 오르막은 급경사였던 반면, 내리막은 자연석을 적당히 다듬은 계단길이었다. 차도가 생기기 전엔 이 길로 오르내린 듯 제법 정비가 잘 되어 있었지만 오랜 돌계단 여기저기 덮인 이끼가 미끄러워 몇 번을 헛디뎠다. 이러다가 미끄러지면 크게 다치겠다 싶어 일부러 계단 옆의 흙길을 밟고 내려갔다.

32번 젠지부지를 향하는 길은 꽤나 단조로웠다. 치쿠린지를 향해 걷던 시내 복판의 길과 비교

해선 이상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한적한 길이라 오히려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큰 오르막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편안한 길도 32번 가까이에 이르자 끝났다. 바닷가 옆에 우뚝 솟은 산 위에 32번이 있었다. 마치 벽을 마주한 듯 갑자기 나타난 등산로에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거기에 등산로 입구부터 살무사, 말벌 주의라고 쓰인 간판에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쩌겠는가. ‘이 모든 게 수행이로소이다하곤 다리에 힘을 주고 등산로로 올랐다.

40분 정도 낑낑대며 산문에 이르렀다. 일단 참배고 뭐고 머리에 열기가 잔뜩 올랐기에 손을 씻는 곳에 냅다 머리를 박았다. 찬물이 머리에 닿자 뼛속까지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치쿠린지에서 점심삼아 먹은 과자는 진즉에 소화가 됐다.

조금 더 힘을 내어 본당으로 올랐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 아까의 노고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바위산 위에 세워진 곳이라,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아담한 정취가 있었다. 예불을 마치고 납경소를 향하니 이곳도 순례자가 차를 마실 수 있게 정수기가 있었다. 산을 타느라 너무나 허기졌기에 배낭 안에 비상식량으로 넣어뒀던 컵라면을 꺼냈다.

라면이 익는 동안 납경을 받기로 하고 납경소에 들어섰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오늘 목표인 33번 셋케이지까지 아슬아슬하다. 납경소에 부탁해 전화를 빌려 33번으로 전화를 걸었다. 도보 순례자인데 오늘 납경시간까진 맞추지 못할 거 같은데 츠야도(순례자 숙소)를 써도 될지 물으니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다.

오늘 숙소 문제도 해결됐고, 납경도 받았다. 오늘의 큰 난관은 모두 넘은 셈이다. 납경소에 감사하다고 말하곤 나와서 후루룩 컵라면을 먹고 있자니 흰옷을 입은 노부부가 들어온다. 자동차로 순례를 하는 분들인 듯 했다. 납경을 받고 나오는 할아버지가 말을 붙였다.

이보게 어디서 왔는가?”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국! 그 먼데서 여기까지? 장하구만, 먹고 자는건 어떻게 하는가? “
자는 건 노숙이나 젠콘야도, 츠야도를 사용합니다. 먹는 것은 적당하게 때우고 있어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지갑을 뒤적여 1000엔을 건넸다.
이 늙은이가 오셋타이하지. 멀리서 여기까지 왔는데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지. 이걸로 뭐 맛있는 거 사먹게.”

그러자 옆의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너무 많지 않냐고 핀잔을 준다. 할아버지가 곧바로 호통을 친다.
무슨 소릴 하는가? 이렇게 베푸는 게 오셋타이의 정신이야. 이렇게 걷는 순례야말로 진정한 대사의 모습이지!”

먹던 컵라면을 멀찍이 치워두고 두 분께 연신 감사하단 인사를 올렸다. 금전을 오셋타이로 받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출발했다. 급경사인 산길을 다시 내려가긴 싫어서 차도를 하산길로 잡고 내려간다. 33번 셋케이지를 향하는 길은 크게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연락용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 다른 하나는 명승으로 유명한 카츠라하마(桂浜)를 경유해 다리를 건너는 길이다.

바다를 건넌다고 해봐야 30분 남짓하게 건너는 짧은 배다. 고치시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운임도 별도로 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완전히 도보라는 것에 고집도 있고, 카츠라하마도 보고 싶은지라 도보로 가려 했는데 셋케이지에 너무 늦게 도착할 것 같아 페리를 타는 루트로 정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배로 건너가 순례를 계속하는 것이 전통적인 길이라고 한다.

어둑어둑해져 가는 주택가를 지나 셋케이지로 향하고 있으려니 폐점 전 할인판매를 하고 있는 빵집이 보였다. 아까 천 엔을 받은 것도 있으니 빵이나 사먹자 하고 들어갔다. 할인판매 중인 빵들로 골라 담아 계산하려니 아주머니가 빵 두 개를 더 집어 주신다.

오셋타이입니다. 받아가세요.”

오늘은 오셋타이가 참 많은 날이다. 빵을 감사히 받아든다. 33번 셋케이지에 도착했을 땐 벌써 5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전화로 들었던 곳으로 가니 츠야도가 열려 있었다. 오늘은 나만 쓰는 듯 했다.

배낭을 풀어 놓고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도 많은 은혜를 받아가며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미치니 절로 손이 합장을 한다. 다른 생각 없이 그저 감사하단 말을 읊조렸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힘냈습니다. 내일도 힘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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