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性엔 남북 없다” 답한 위대한 선지식

보림을 마친 육조 혜능이 내려와 찾은 광동성 법성사(현 광효사) 전경. 보리수 너머 혜능의 삭발탑이 보인다.

佛性, 그 위대한 언어
“간디 씨, 나(불가촉천민)에게는 조국이 없습니다.”
회의석상에서 암베드카르(Ambedkar, 1891~1956)가 인디라 간디에게 던진 말이다. 암베드카르는 카스트(Caste)제도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다. 그는 1948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최초 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암베드카르가 겪은 간디는 ‘마하트마’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그냥 ‘간디 씨’였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을 ‘하리쟌(신의 아들)’이라고 하였지만, 진정한 천민을 위한 성자는 아니었던 듯 하다.(간디는 바이샤 계급) 신분 문제만큼은 암베드카르와 간디의 입장 차이가 매우 컸다.

한 승려가 읽은 ‘금강경’ 듣고
오조 홍인과 문답 후에 출가해
답변 내용, 혜능선의 테제가 돼
불사선악·비풍비번 일화들 남겨


암베드카르는 고대 인도로부터 신분차별 제도가 힌두교(브라만교)라고 보고, “나는 비록 힌두교도로 태어났지만 불자로 죽겠다”라고 선언하면서 불교로 개종하였다. 근대 불가촉천민들에게 희망 그 자체였던 인물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카스트에 입각한 힌두교는 피압박 민중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이것이 내가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는 이유입니다. 힌두사회는 불평등의 또 다른 이름인 사성제도 위에 서 있습니다. 힌두교는 억압받는 계층들에게 노예·농노와 같은 삶이 있을 뿐입니다. 힌두교에 남아 있는 것은 우리 불가촉천민에게 어떤 이익도 없습니다. 우리의 소원하는 바는 오로지 평등한 인권입니다. 이런 사상을 주장하는 종교는 석가모니 불교일 뿐입니다.”

그가 불교로 개종한 것은 바로 모든 인간이 똑같이 귀중한 존재라는 점 때문이다. 그 똑같이 ‘소중함’이란 모든 중생이 수행을 통해 누구든지 위대한 성자(붓다)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곧 성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의 기회를 준다는 것, 그 근거는 바로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一切衆生悉有佛性).

육조 혜능(六祖 慧能, 638~713)이 출가를 결심하고, 5조 홍인(601~674) 선사를 찾아갔다. 혜능이 홍인에게 인사를 올리자, 홍인이 물었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무엇을 구하고자 하느냐?”
“저는 영남의 신주라는 땅의 백성이온데, 멀리서 스승을 뵙고자 왔습니다. 오직 부처가 되기를 바랄 뿐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네가 살던 영남은 예전부터 오랑캐 땅으로, 너는 오랑캐에 불과하거늘 어찌 하천한 신분으로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는 비록 남과 북이 있을지언정 불성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스승님과 오랑캐가 다르지 않은데, 어찌 불성에 차별이 있겠습니까?”

‘오랑캐’는 한자로 ‘갈료(첋睡)’인데, 한자에 모두 ‘개사슴록변(頌)’이 붙어 있다. 곧 ‘야만인’·‘하열한’·‘모자라는’·‘태생이 천한’ 등의 인격 모독이 담겨 있다. 〈숫타니파타〉에도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비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의 행위로 천한 사람도 되고, 행위로 바라문이 된다”고 하였다. 곧 부처님께서도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셨다. 혜능의 말대로 인간이 어디에 태어났든, 여자든 남자든, 양반이든 노비이든 지위고하를 떠나 불성을 지닌 존재이다.

혜능의 출가 및 오도
중국에 인도불교가 유입된 이래 500여 년이 넘어서야 인도적인 색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중국적인 문화, 즉 중국적인 사상으로 탈바꿈되어 깨달음의 근원인 불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육조단경〉에서는 ‘自性’이라는 용어를 사용)은 6조 혜능에 이르러서이다. ‘불성에 남북이 없다’고 말한 혜능의 답변은 혜능선의 중요한 테제가 된다. 혜능이 언급한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불성은 ‘참마음(眞心)’을 가리키는 이명(異名)으로 누구에게나 구족되어 있는 청정한 자성이므로 곧 ‘돈오견성(頓悟見性)’이다.

물론 혜능보다 280여 년 앞선 축도생(竺道生, 355∼434)이 〈열반경〉의 돈오불성론을 주장하였다. 당시 도생은 큰 지탄을 받았고, 불교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혜능에 이르러 본래성불인 불성과 돈오사상이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혜능은 동아시아 선종사에서 위대한 선지식으로 받들어진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종명도 ‘조계산(曹溪山)’에 머물렀던 혜능의 명칭을 딴 것이다.

그렇다면 혜능은 누구인가? 혜능은 옛날부터 유배지로 유명한 영남(현 광동성) 신주(新州) 사람이다. 혜능의 속성은 ‘노(盧)’ 씨로서 권세 있는 집안의 후예라는 등 여러 이설이 있다. 혜능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근근이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나무꾼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나무를 해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잠깐 쉬어가기 위해 주막집에 들어갔다가, 방에서 한 승려가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그때 승려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당히 주하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구절을 읽었는데, 그 구절에 혜능은 출가를 결심했다. 명나라 때 감산 덕청(벱山德淸, 1546∼1623)도 〈관음경〉의 ‘능구세간고(能救世間苦, 능히 세간의 고통을 구한다)’ 구절을 듣고 출가를 결심했고, 중봉 명본(中峰明本, 1263~1323)은 출가해서 〈금강경〉을 독송하는 중 ‘하담여래(荷擔如來, 여래를 짊어진다)’ 구절에서 깨달음을 이루었다.

혜능은 홀어머니를 어느 스님에게 부탁하고, 당시 유명한 호북성(湖北省) 황매(黃梅) 5조 홍인을 찾아갔던 것이다. 홍인과 혜능이 처음으로 만나 나눈 선문답이 앞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홍인은 혜능의 근기를 알아보고, ‘나가서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한다. 이렇게 혜능이 스승과 인연되어 그곳에서 몇 개월간 노동하였다. 실제 중국 황매 오조사에 가면, 혜능이 허리춤에 맷돌을 매고 방아를 돌리는 모습의 모형이 있다. 어느 날 홍인이 제자들에게 게송을 한 수 지어오라고 한다. 이 게송을 보고 깨달음의 인가를 받을만한 제자에게 가사와 발우를 전하겠다는 뜻이었다.

며칠 후 홍인의 수제자였던 대통 신수(大通神秀, 606~706)가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대와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닦아서 때가 끼지 않도록 할지어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라고 게송을 지어서 기둥에 붙였다. 혜능도 이에 맞서 다음 게송을 붙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은 또한 대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리오.(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여기서 일물(一物)이란 이름조차 붙일 수 없어 일물이라고 가정해 놓은 것이다. 일물은 불성(佛性)·심지(心地)·보리(菩提)·법계(法界)·열반(涅槃)·여여(如如)·법신(法身)·진여(眞如)·주인공(主人公)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 다양한 어구가 후대 선종사에서 발전하는 계기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나라 서산대사도 〈선가귀감〉에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이라. 이름도 붙일 수 없고, 모양도 얻을 수 없도다(有一物於此 從本以來 昭昭靈靈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狀不得)”라고 하였다. 혜능의 게송을 본 홍인은 혜능을 몰래 불러 전법의 증표인 가사와 발우를 혜능에게 전수하고, 다음 날 새벽 떠나보낸다.

혜능의 보림
혜능은 의발(衣鉢)을 들고 영남지방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홍인의 법이 노행자(혜능)에게 전해져 의발을 들고 절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몇몇 승려가 의발을 뺏으려 하였다. 이때 4품 장군이었던 혜명 화상은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었으므로 제일 앞장서서 혜능을 쫓아왔다.

혜능이 의발을 큰 바위에 놓으면서 말했다. “이 의발은 믿음을 표시한 것인데, 힘으로써 다투겠느냐?”

혜능은 말을 마치고, 풀 덩굴 속에 몸을 숨겼다. 혜명이 와서 먼저 의발을 들려고 하였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에 놀라 혜명이 말했다. “행자여, 행자여 나오십시오. 나는 법을 위하여 온 것이요, 의발을 탐내어 온 것이 아닙니다.”

혜능이 나와서 반석 위에 앉으니 혜명이 절하면서 말했다. “노행자님께서는 제게 좋은 가르침을 하나 주십시오.”
“네가 법을 위하여 왔다고 하였으니, 모든 인연을 쉬고 한 생각도 내지 말라.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이런 때, 어떤 것이 명상좌의 본래면목인가(不思善 不思惡 本來面目)”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공안 가운데 하나로 〈무문관〉 23칙 ‘불사선악(不思善惡)’으로 전한다. 사유 작용이 일어나기 전의 본질, 참 성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혜능은 남쪽으로 내려와 15년간 은둔생활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을 보림(保任)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혜능은 산에서 내려와 광동성(廣東省)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 현 광효사)에 들어가니, 인종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마침 도량에서 학인 스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바람이 불어와 깃발이 움직였다.

한 학인이 뜰에 있다가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옆에 있던 학인이 말했다. “깃발이 움직이는 거다.”

두 학인의 논쟁이 끝나지 않자, 혜능이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 일화는 ‘비풍비번(非風非幡)’ 공안으로 〈무문관〉 29칙이다. 혜능의 말대로 깃발이 움직인 것은 바람에 의한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인 것도 아니다. 바로 깃발이 바람에 움직이는 것을 보고 듣고 인식한 그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보는 것에 마음이 기울어 있기 때문에 깃발이 보이고, 소리에 마음 두기 때문에 바람 소리가 들리는 법이다. 깃발이 움직이든 바람 소리가 들리든, 마음 두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법이다. 이 공안에도 세상을 사는 이치가 담겨 있다. 삶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내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결국 세상이 어떠하든 주위 사람이 어떻든 자신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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