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지성화·대중화·생활화 기여

올해의 3월 1일은 3.1운동 1백주년을 맞은 날이다. 이제 그 시절의 의인(義人)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의 굳은 뜻은 면면히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용성진종(龍城震鍾, 1864~1940·사진 위)조사는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한 선각자였다. 그 후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일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용성 스님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불교계 대표로 참여했다.

“아수라장을 불국토로 만드는 일, 그것은 그나마 나라가 있어야 가능했다. 나라가 없으니 백성의 눈물이 강을 이뤄도, 그 강물이 흘러갈 곳이 없었다.”

3.1독립운동 실질적인 기둥 역할
경·율·논 삼장 꿰뚫은 절세 선승
삼장역회 통한 경전 번역과 홍포


우리나라 근세 불교의 역경초조(譯經初祖), 선농초조(禪農初祖), 정화초조(淨化初祖)로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앞장섰지만, 그 역사적 무게에 비해 아직까지 크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에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용성진종조사의 삶과 사상, 깨달음의 발자취를 담은 <용성 평전>을 출간했다.

용성 스님은 조선의 억불과 일제의 만행으로 이어진 전통불교 죽이기에 맞서 청정한 수행가풍을 올곧게 지켜냈다. 또 삼장역회를 만들어 한문에 갇힌 경전을 번역해 홍포하는 등 역경 불사를 견인한 포교의 선구자였다. 당시로서는 혁명적 발상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직접 풍금을 치면서 작사한 찬불가를 보급하는가 하면 어머니들이 참선 수행할 수 있도록 사찰에 부인선원을 개설해 운영한 전법의 개척자였다. 

또한 불제자 양성을 위한 포교와 수행, 인재 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외친 스님이기도 하다.

“제자들은 용성의 가르침을 붙들었다. 제자 동산혜일과 고암상언 외에도 손제자 퇴옹성철이 조계종 종정을 맡아 불교계를 이끌었다. 이들이 있어 한국 불교가 바로 섰다. 용성의 제자와 법손들은 용성을 닮아 계율을 중시했고, 선풍을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섰다. 용성 문중은 제자들이 다시 제자를 두어 비범한 법기들이 숲을 이루었다.”

용성 평전/김택근 지음/불심도문 감수/모과나무 펴냄/3만원

저자 김택근 작가는 용성 스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3·1독립선언 불교계 대표로만 알려진 자리매김이 오히려 스님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민족대표이기 전에 절세의 선승이었다. 용성은 병이 들어온 말년에도 저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오도의 진리> <오도는 각> <천수경> <지장보살원경> <조선글 화엄경> 등을 짓거나 번역했다. 이 저술들은 하나 같이 영원한 자유를 찾는 길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다. 특히 <임종결(臨終訣)>에서는 죽음과 결별하는 구체적 방법들을 문답 형식으로 서술했다. 죽음을 맞기 이전에 바른 수행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전하기 위해서였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비극의 시대,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잊혀진 시대에 스스로 주인이 되자고 외쳤던 선승의 외침은 여전히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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