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조계사 일요법회...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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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김지원 기자
  • 승인 2019.03.15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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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國 아닌 民國’ 서원한 용성 스님

주제 : 민족대표 33인의 탄생 비화 
 

3.1운동 100주년을 기해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불자들의 관심이 평소보다 뜨겁다. 민족대표에 속한 불교계 인사는 2명에 불과하지만, 각 종교계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던 민족독립운동을 한 데 묶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절집에 전한다.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일감 스님은 3월 10일 서울 조계사 일요법회서 ‘민족대표 33인 탄생의 비화’를 주제로 법문했다.

일감 스님은… 1990년 원융 스님을 은사로 수계했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및 재무부장, 불교문화재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스님은 현재 완주 옥련암 주지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는 〈그대로 행복하기〉 등이 있다. 사진제공=조계사

종교계 합심해 독립운동에 
나설 것 제안한 용성 스님
종교별 배정인원 양보하고 
대표 2명만 이름올린 불교



얼마 전 3.1절이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에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종교인들을 ‘민족대표 33인’이라 부릅니다. 민족대표 33인은 종교별로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입니다. 

불자들은 불교계 인사가 두 사람뿐이라서 마음이 좀 허전할 수도 있겠습니다. 민족대표에 스님 2명만 포함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民國을 위한 독립운동
민족대표인 백용성 스님이 지리산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 한용운 스님이 다녀갑니다. 일제 치하 백성들이 고초를 겪고 있어서 나라를 위해 독립활동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서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후 백용성 스님은 안거를 해제하고 그때부터 활동을 시작합니다.

하산한 백용성 스님은 6년간 고을의 현령(군수) 이상의 소임을 맡고 있는 200명을 찾아다녀요. 그들을 만나서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 독립을 성취해야 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죠. 

스님이 6년 동안 많은 관리들과 만나 독립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뜻을 함께하겠다고 한 이는 어느 누구도 없었다고 합니다. 관리들과 달리, 스님과 만나 이야기를 들은 백성들은 나라 사정을 애통해하며 스님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백용성 스님이 관리들과 만나 조선독립에 대해 설명하면 제일 먼저 돌아오는 질문이 “그렇다면 왕은 누가 될 것인가?”였다고 합니다. 이 씨 왕가가 무너지면 그 다음 왕이 될 가문이 누구인지를 반문한 것이죠. 관리들에게 제일 우선이 되는 것은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백용성 스님이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요? 스님은 ‘이 나라는 왕의 나라가 아닌 백성들의 나라구나’하고 깨쳤다고 해요. 스님은 조선을 백성 중심의 국가로 다시 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내게 됩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순간 스님은 대한민국의 ‘민국(民國)’을 떠올리고 구상했다고 합니다.
 

민족대표가 33명이 된 이유
이후 백용성 스님은 천도교를 찾아가 손병희 교주를 만납니다.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살리는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천도교 신도 수는 300만이 넘어 종교계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습니다. 손병희 교주는 천도교 내에 이미 독립운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스님에게 말했습니다. 백용성 스님은 이를 듣고 손 교주를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신도가 가장 많은 천도교에서 독립을 성취한다고 해도 그것은 천도교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조선에는 천도교 뿐만 아니라 많은 불자와 교인, 다른 종교인들이 있다. 수많은 백성들이 이 조선에 있다. 천도교만의 나라를 세워서는 아니 된다. 관리들은 백성의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에 앞장설 수 없는 작금이니 불교, 기독교와 천도교가 함께 나서 종교인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렇게 천도교는 다른 종교들과 뜻을 함께하게 됩니다. 합심하기로 한 종교인들은 기미독립선언서에 참여할 민족대표를 몇 명으로 할 것인지를 논의했습니다. 

민족대표가 33인이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라를 바꾸는 일, 다시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만의 힘으로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죠. 

불교에서는 삼십삼천(三十三天)이라고 하잖습니까. 온 하늘의 힘이 도와야 가능한 일이라고 해서 스님이 33명으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든 하늘의 주인이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33명의 민족대표를 뽑자고 말입니다.

이에 따라 불교, 천도교, 기독교 각 11명이 포함된 대표단을 구성하는 듯 했습니다. 기독교 내에 감리교와 장로교가 서로 대립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계의 내부 사정에 의해 종교별로 배정된 인원을 두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백용성 스님은 “의미가 중요한 것이지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불교계가 양보하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불교는 대표 2인이 참여하고 나머지 인원은 다른 종교들에게 배정된 것이죠. 따라서 천도교는 15명, 기독교는 감리교파와 장로교파 양측 8명씩 총 16명, 불교는 2명으로 33인의 민족대표단이 구성됐습니다.
 

잊어선 안 될 ‘3.1운동과 불교’
민족대표에 만해 스님과 용성 스님 2명만 포함됐기 때문에 불가에서는 독립을 향한 의지가 그다지 없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종교계에 먼저 독립운동을 제안한 것은 백용성 스님이었어요. 

이뿐만 아니라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발발한 뒤 불교계는 전국 사찰의 강원, 요즘으로 따지면 승가대학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만세운동에 동참했습니다.

민족대표로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백용성 스님은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나옵니다. 스님은 출옥한 뒤에도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여러 곳에 농장을 짓고 농장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쌀가마니 속에 넣어 만주에 보낸 겁니다. 안타깝게도 백용성 스님은 1943년 광복 2년 전에 미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십니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정 요원들이 귀국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각사를 찾아가는 일이었습니다. 

대각사는 용성 스님이 주석하던 곳이죠. 이들 독립투사들은 대각사에 가서 큰스님 영전에 참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용성 스님께서 쌀가마니에 넣어 보내준 군자금 덕분에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다”고 공표합니다. 

당시 일반 시민들은 백용성 스님이 독립자금을 지원한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김구 선생의 증언 덕에 스님이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농토와 농원을 일군 것이란 것을 비로소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또한 당시 일제에 협력한 많은 스님들도 있었습니다. 일부 스님들은 표면적으로는 일제 강압에 의해 일본에 협조했지만 이면에는 독립자금을 마련해 만주로 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이 사실 역시 김구 선생이 증언했어요. 백용성 스님 이외에도 많은 스님들이 독립자금을 은밀히 보내 더욱 힘을 내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요. 

공개적으로는 일제에 협력한 스님들이 김구 선생 이후로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역사란 기록에 의해 의존하는 부분이 큽니다. 하지만 이때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일 등은 기록에 남길 수가 없었던 현실이었습니다. 문서가 발각될 시 바로 관련된 사람 모두가 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죽했으면 백용성 스님은 입적하기 전 진관사 칠성각에 태극기와 관련 문서를 벽 안에 넣고 발랐어요. 후대에 언젠가는 발견될 것이기에 남긴 것인데요. 스님의 태극기와 문서들은 지금 진관사에 잘 보존돼 있습니다. 

절집에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남은 기록이 많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제가 말씀드린 것과 같이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도 귀하게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나라가 없다면 우리 불교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과 이 나라를 잘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전해줘야만 불교의 가르침도 이 땅에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하늘을 숭상하고 땅을 존중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왔습니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은 부처님의 마음이 본래부터 있는 것처럼 이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심성과 부처님의 심성이 잘 맞기 때문에 원래부터 불교였던 것처럼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천성적으로 불교와 뜻이 맞지 않는 문화나 풍토 속에서는 불교가 자리 잡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민족 고유의 심성을 잘 보존하면서 이 땅에서 불교와 수천 년을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를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비폭력 평화의 방식으로 독립을 외친 3.1운동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3.1운동의 마음과 정신을 이해하고 배우면서 내년에는 불교계가 준비한 관련 행사나 법회에도 많이 참여해보면 어떨까요?

불자 개인도 개인이지만 불교계는 과거의 성과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스님들의 업적을 발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스님·불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 끝에 지금 우리가 이 나라에 살고 있는지를 기억합시다. 더불어 그 뜻을 이어받아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지를 되새기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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