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迷妄의 불안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불안은 비 오는 날 안개처럼 나직하지만 무겁게 스며든다. 빛을 등지고 불길하고 익숙한 냄새로 다가와 근심과 두려움으로 우리의 영혼을 포박한다.

‘아이를 더 열심히 돌봤어야 했어. 또래에 비해 처지는 것 같아.’
‘내가 말을 잘못했나봐. 그 친구 표정이 안 좋았어. 나를 험담하고 다니지 않을까?’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큰 병이라도 걸렸나 봐.’

지난 잘못으로 미래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길함과 상황이 더 나빠질지 모른다는 걱정. 그럴 리 없다고 애써 불안을 떨쳐내지만, 또다시 새로운 불안이 찾아든다. 우리 삶은 불안을 없애기 위해 애쓰는 과정의 연속이다. 많은 것을 가질수록 빼앗길까봐 더욱 불안하다.

인간 감정은 자연선택 결과
불안함도 방어의식의 표현
마음 챙김으로 미망 떨치자

카드게임으로 이슈를 정하는 그룹코칭에서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한 40대 여성 피코치들의 고백은 끝이 없었다. “저도 그래요” “맞아요”라며 나누는 경험담은, ‘불길한 생각과의 전쟁’ 이라고 할 정도였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와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때, ‘저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나는 너무 불행해서 숨도 못 쉴 거야’라는 불안감이 갑자기 드는 거죠.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다니 머릿속을 씻어내고 싶다’고 도리질을 하면서도 자꾸만 말도 안 되는 나쁜 일이 떠오르는 겁니다.”
모두 맞장구를 치면서 근거 없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불안의 순간을 떠올린다.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마음이 어수선해요.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났나? 그 친구는 왜 표정이 언짢았지? 내가 말을 잘못했나? 그러면서 곰곰이 대화를 복기합니다. 무슨 말 끝에 뭐라고 대꾸했지? 내 말에 대한 반응이 어떠했더라? 그런 생각을 계속 하는 거예요.”

“집에서 외출할 때 어떤 때는 두 번씩 다시 들어왔다가 갑니다. 가스밸브는 제대로 잠겼는지, 전열기는 껐는지, 현관문은 제대로 닫았는지, 뭔가 마음에 걸리면 나가 있는 동안 극단의 사고까지 생각이 치닫는 거예요. 지금의 일상이 무너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신경과민이겠거니 했는데 모두가 수시로 비슷한 불안감에 휩싸인다니 놀라워요.”

불안은 진화의 자연선택이다
진화심리학으로 보면 인간의 모든 감정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안전한 번식을 위한 ‘자연선택’의 결과이다. 불안감 역시 위험에 대처하는 방어용 무기다. 자연선택은 생존을 목적으로 할 뿐, 인간의 진정한 평안과 안녕에는 관심이 없다. 미국의 저명한 진화심리학자인 로버트 라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불안은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연선택의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일종의 환영이다.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생존과 번식에 필수였으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신경 쓰도록 자연선택 되어 있다. 지금은 고대의 프로그래밍이 시작된 수렵채취 생활처럼 다른 구성원의 평가나 인상이 절대적인 시대가 아님에도 우리는 그런 느낌과 인식에 길들여져 있다.” 

인류는 오랜 역사 동안 오로지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유리한 선택을 해왔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은 생존에 유리하도록 오랜 세월 굳어지고 강화되어 왔다. 인류가 문명인으로 산 시간은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잠깐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를 1년이라고 친다면 문명인의 역사는 단지 2-3시간에 불과하다, 우리의 DNA에 박힌 굳건한 불안감은, 여러 면에서 실제의 결핍이 크게 줄어든 현대에 와서도 여전하며 무한경쟁과 끝없는 욕망의 반대급부로 더욱 늘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감정의 노예가 되는 인과관계를 밝힐 수는 있지만 그걸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로버트 라이트는 불교 사상을 철학과 심리학으로 접근한 흥미로운 저서 <불교는 왜 진실인가>에서 미망(迷妄)의 감정에서 헤어나기 위한 불교의 진단과 처방은 진실에 가까운 것임을 진화론의 렌즈에 비춰 과학적으로 밝힌다. 그는 실질적 방법론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체험한 후 마음의 변화를 서술하고 있다.

“불교와 현대 심리학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일상의 삶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자아, 의식적인 주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보다는 매번 번갈아가며 쇼를 연출하는, 위임받은 다른 자아의 집합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자아의 집합이 쇼를 연출하는 방법은 느낌을 통해서다. 그렇다면 쇼에 변화를 주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의 일상에서 느낌이 하는 역할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점이 타당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일상의 삶에서 느낌의 역할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마음챙김 명상보다 좋은 것은 없다.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좋은 방법인 마음챙김 명상은 그저 자리에  앉아 마음의 먼지가 가라앉도록 내버려둔 채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켜보면 된다.”

저자의 말처럼 붓다가 2500년 전에 이미 “인간의 희노애락은 단지 미망일 뿐이며 내면의 평안을 위해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향한 수행이 필요하다”고 설파한 것은 대단한 통찰이며 진실이다.

불안을 관찰하고 그려보는 마음챙김 명상
코칭에서도 마음챙김 명상은 감정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데 유효하다. ‘불안감에서 벗어나기’가 이슈였던 그룹코칭에서 피코치들은 감정의 경험을 나눈 후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알아차림의 시간을 가졌다. 

1. 지금 떠오르는 불안감이 어떤 것인지 설명한다. 여기서는 얼굴 표정과 시선의 방향, 몸짓 등 몸의 모든 감각기관을 언어로 사용할 수 있다. 코치는 가능한 한 사람씩 무대로 불러내어 자신의 감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묘사하게 한다.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아이가 학원에 빠지고 게임하고 있을 것 같아 계속 마음이 쓰여요. 아까부터 전화로 확인하고 싶지만 참고 있어요. 잔소리하면 역효과가 날까봐.”

참석자 모두가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주에 새 제품의 광고시안을 발표해야 하는데 준비를 못하고 와서 계속 그 불안감이 떠나지 않네요. 내일 돌아가서 끝낼 수 있을지.”
“몇 달 전부터 위통이 있어서 내시경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불안해요. 위암이라는 선고를 받을 것 같아요.”

피코치들은 불안감을 묘사하는 동안 걸어 다니기도 했고 앉아서 얼굴을 찡그리거나 한숨을 쉬기도 했으며 몸을 떨기도 했다.

2. 두 번째 단계는 매 순간 변하면서 달아나는 마음을 붙잡아 지금 이 순간의 욕구와 감정이 어떤지 집중하는 알아차림이다. 
다시 자리에 앉아 가부좌의 자세로 돌아온 후 코치의 리딩에 따라 호흡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명상을 시작한다. 그들은 15분이 지난 후 한 사람씩 자신의 감각을 동원해 마음속 불안의 모습을 묘사했다.

“내 마음에 있는 불안이 보입니다. 회색빛으로 마구 헝클어져 있어요. 우리 아이가 벽에 그려놓은 낙서 같아요.”
“불안 덩어리가 내 오른쪽 가슴에 납작하게 붙어 있어요. 찐득찐득한 엿기름 같네요. 손으로 떼어내도 또 그만큼 생겨나요”
“내 마음은 목욕탕 속의 수증기 같네요. 그 속에 내가 얼굴을 파묻고 있어요.”

3. 또다시 15분 동안 자신이 묘사한 불안감을 좋다, 나쁘다는 판단 없이 바라만 보고 집중한 다음 두렵고 불편한 감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하기로 한다. 

“실타래 같은 회색빛 뭉치와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보여요.”
“납작한 불안 덩어리를 만지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고 있어요.”
“나는 수증기 속에서 얼굴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분간 그 상태의 변화에 따른 자신의 감정을 느끼도록 우리는 명상 코칭을 계속 했다. 피코치들은 자신의 불안감을 관찰하면서 감각으로 설명하고 그 변화를 관찰하게 되자 구태여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건 단지 지금 몸의 느낌일 뿐이었다. 느낌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면서 받아들이자 불안감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들은 불안에 꽉 붙들려 있는 게 아니라 불안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둔 채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알아차렸다.

마음챙김 명상에서 내면의 평화는 단번에 오지 않는다. 지금 일어나고 변하는 마음을 그대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불안감 역시 순간순간 왔다가 가는 감정의 미망일 뿐이며, 나를 얽매지 않도록 떼어놓을 수 있다는 알아차림의 순간이 오게 되면 마음챙김은 시작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미망에 빠져있었으나
이제는 점차 벗어날 때가 되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쫓아
지각 있고, 깨어 있고, 즐거운 사람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아잔간하의 법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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