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쉼터를 가다’② 춘천 제따와나선원

초심자 수행과정에 참여한 이들이 지도법사 스님의 안내에 따라 선원 경내에서 행선을 하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중도’로 회통하는 선교일치 현장

교학 바탕, 수행·실천
초기불교대학 통해 교육
중도 중심 수행체계
정견으로 수행 방향 지도

춘천 제따와나 선원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정기법회가 있고 매주 둘째주 일요일에는 일요법회가 있다. 또한 매주 일주일 집중수행 프로그램 등도 운영한다. 매주 금요일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주말 집중 수행이 열린다. 일년 내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기간만 머물면서 중도수행, 안거, 집중수행, 명상, 자율수행을 할 수 있다. 초기불교대학에서는 1학년 공덕과정, 2학년 교학과정, 3학년 수행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누구나 번뇌로부터 벗어나 편안한 마음을 갖길 바란다. 하지만 번뇌라는 것은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금방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끄달리것이다. 벗어나려는 마음 그 자체가 번뇌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지친 2월 22일, 잠시 쉬는 휴일에도 머리 속에는 맡은 일로 가득차 있었다. 여기서 벗어나 편안함을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 옷가지를 챙겨 길을 떠났다.

차의 내비게이션에 찍힌 곳은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제따와나선원이었다. 다소 생소한 말인 제따와나(Jetavana)는 부처님께서 가장 오랜기간 머무르며 수행하신 기원정사의 빨리어 이름이었다. 번뇌를 떨치는 방편을 대중들에게 알린 부처님 당시의 수행이라면 현재 복잡한 머리 속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뜻 미술관처럼 보이는 이 곳은 인도 기원정사를 모티브로 만든 제따와나 선원이다. 3개의 단 구조로 가장 높은 곳에 법당이 위치하고 있다.

부처님 당시 기원정사 재현

제따와나선원은 사성제와 팔정도 수행도량을 표방하며 중도 수행법을 전하는 곳이다. 선원장인 일묵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수행하는 지혜로운 수행센터, 자애와 연민을 실천하는 자비로운 수행센터, 승가와 재가가 함께하는 청정한 수행 공동체를 지향하며 지난해 10월 14일 개원 했다. 여기서는 주로 초기 경전에 근거한 수행법을 대중에게 알린다.

제따와나 선원은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에서 이름을 가져온 만큼 선원 외양도 부처님 당시 인도의 사원 외관과 흡사했다. 기원정사와 나란다 대학 등을 모티브로 벽돌로 만든 건물들이 선원을 구성하고 있었다.

“제따와나란 이름은 부처님 당시의 근본 가르침을 따르고 부처님을 따르려는 의지입니다. 수행하는 대중의 지향을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하던 곳에서 찾자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찰 형태를 고민하다, 벽돌만이 남아있는 기원정사의 모습을 보고 선원 건립을 하게 됐습니다.”

제따와나 선원에는 파키스탄 현지서 공수한 붉은 벽돌 40만 장이 사용됐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규격화된 딱딱한 벽돌이 아닌 사람들이 일일이 손으로 만든 울퉁불퉁하고 조금은 부스러지기는 벽돌이다. 각 벽돌의 뒷면에는 벽돌을 보시한 불자들의 이름이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쓰여 있었다.

전통 사찰에서는 오히려 오히려 사찰의 형태가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도 많다. 제따와나 선원은 전통양식을 변형하여 수행에 도움을 주고자 한 의도가 엿보였다.

제따와나 선원은 총 3개의 단으로 나뉜 가람구조였는데, 먼저 일주문을 지나면 첫째 계단에는 종무소, 공양간, 신도숙소, 명상실 등의 건물이 나오고, 두 번째 계단을 오르면 스님들이 머무르는 요사채가 보였다. 세 번째 계단을 오르면 법당과 주수행처인 선방이 세워져 있었다.

이러한 제따와나선원의 건물 배치는 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번뇌를 내려놓고 부처님, 그리고 법과 가까워 진다는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법당과 선방까지 가는 길은 한번에 가지 않도록 했다. 중앙에 계단이 있긴 했지만 양 옆으로 여러차례 굽이진 길을 조성해 구도를 표현했다.

선원 내에는 보통 사찰의 대웅전 앞에 있는 탑, 석등 등의 조형물이 전혀 없었다. 부처님 법에 의지하고 스스로를 중심삼아 자신을 갈고 닦으라는 의미같았다.

“제따와나 선원의 가람배치는 사성제에 근간합니다. 예를 들어 일주문의 경우 4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집멸도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외부에서 들어오는 길을 맞이하는 첫 번째 일주문 기둥은 괴로움이며, 네 번째 기둥은 진리입니다. 괴로움을 던지고 행복을 얻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대중들이 처음 접하게 되는 종무소 건물도 사성제의 고를 상징하고, 신도숙소와 요사채는 집, 선방과 법당은 멸, 그리고 부처님 자리는 도를 의미합니다. 일주문을 지나 법당까지 이르는 길은 팔정도로 수행을 통해 열반을 증득한다는 상징입니다.”

선방과 법당 내부는 모두 수평적 구조를 띄고 있다. 좌식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입식 수행석까지 마련한 배려가 눈길을 끌었다.

정혜쌍수 의미 담긴 가람

톡특한 외부처럼 선원의 선방과 법당 내부도 특이했다. 한마디로 ‘모던’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사찰에서 흔한 탱화나 단청 등 장식이 전혀 없었고, 연등조차 사각등으로 만들어 천정 외곽에 넣은 모습이었다.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카페나 미술관에 와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불상 마저도 깔끔했다. 금박을 입히지 않고 청동만으로 만들어진 불상은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박물관에 있는 부처님을 형상화했다.선원을 찾은 일행을 맞은 일묵 스님은 가람 배치를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어 스님은 전통사찰에서 대웅전의 위치에 있는 선방과 법당에 대해서는 교학과 수행을 함께 닦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1층의 법당은 교학을 배우고, 2층의 선방에서는 수행을 하게 됩니다. 보통 수행처에서는 교학이 없이 바로 수행을 하게 되죠. 교학이 바탕이 되어야 제대로 된 수행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수행으로 인한 마음씀을 다시 실천하기 위한 방안도 함께 모색할 수 있죠. 이는 선교일치, 정혜쌍수의 불교 가르침을 실현코자 함입니다. 배움과 수행, 그리고 실천으로 다시 세속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아 이 같은 구조를 생각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선원을 다시 살펴보니 작은 건물 하나 하나에도 의미가 있어보였다.

“사찰 대부분은 신도들의 기도에 맞춰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중심이 되는 대웅전이 가운데 서고 이를 위시한 각종 전각이 일주문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이는 부처님을 장엄하고 부처님을 예경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제따와나 선원은 우리가 바로 부처님이 되자는 취지에서 세워졌습니다. 외부는 수직적 구조로 가장 높은 곳인 법당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는 수평적으로 단이나 장엄물이 없습니다. 일단 수행의 위지체 들어서면 모두가 평등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초기불교 국가들도 대부분 이런 구조로 법당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초심자 수행과정에 참석한 이들이 양쪽으로 구불구불하게 난 길을 따라 행선을 하고 있다.

실참 수행에 최적화된 구조

이날은 초심자 수행이 열린 날이었다. 20여 명의 초심자들은 총무 월명 스님의 지도 하에 호흡법의 기초를 배우고 행선으로 사성제 수행을 시작했다. 각 단으로 구성된 선원의 구조는 걷기명상을 하기에는 최적화되어 있었다. 계단의 양 옆으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수행자들은 자신을 돌아보는 첫 발을 디뎠다.

한발 한발 발끝의 감각에 집중하라는 스님의 말에 조용히 벽돌바닥을 딛는 발에 집중하자 금새 머리 속의 망념이 사라져갔다. 각 단마다 평평한 구조는 걸음 자체에 대한 신경을 덜 쓰게 만들었다. 하지만 잠시 눈 내린 곳을 밟거나 새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곳으로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집중이 흐트러지고 마음이 주변의 혼란한 상황에 갔다가 다시 고요한 상태로 오는 것을 반복하는게 중요합니다. 그 과정을 체화하고 나중에 반조하여 떠올려보세요.”

일묵 스님은 “자기가 수행을 했을 때 되돌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생활 속에서의 수행은 잡념이 일어났을 때 삼매로 들어가는 과정을 기억하는 사띠 과정이다. 반조를 통해 사띠로 원인을 찾아 다음에도 활용하게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에서 온 강신구 씨(36)는 “회사에 다니며 명상책을 보고 인터넷을 통해 명상 공부를 했는데, 이 곳을 알게 되어 처음 오게 됐다”며 “불교명상, 그리고 수행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10년 정도 라오스 등에서 수행 한 임연옥 씨(56)는 “다른 사찰의 경우에는 좌선 위주인데, 제따와나 선원은 다양하게 수행을 할 수 있어 좋다”며 “특히 행선을 위해 가람 바깥의 구조도 신경을 쓴 부분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초심자 수행과정에 참석한 이들이 호흡명상을 하고 있다.

초기불교 전법사 된 성철 스님 손상좌

이처럼 제따와나 선원이 안팎으로 교학과 수행에 맞는 구조를 띄게 된 것은 우리나라 초기불교의 1세대 격인 일묵 스님의 영향이 컸다. 일묵 스님은 1996년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 중 성철 스님을 시봉한 원택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한국선불교의 대표적인 스님의 손상좌가 초기불교를 알리는 스님 중 한명이 된 것이 아이러니했다.

스님은 미얀마에 가 파욱국제수행센터에서 수행했다. 틱낫한 스님이 있는 플럼 빌리지, 태국 등을 거쳐 스님 만의 체계를 구축했다. 결론은 사성제와 팔정도였다.

현재 제따와나선원에서는 초기불교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초기불교대학을 중심으로 한 교학체계와 중도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수행체계가 양 축으로 운영되고 있다. 단순한 초기불교 수행처가 아닌 초기불교를 배우고, 익혀, 다시 대승불교로 실천하는 방법까지 함께 익힐 수 있다.

“나중에는 부처님 가르침으로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풀이하는 연구소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부처님 당시 가르침과 현재 사회의 모습, 그리고 현대인들의 생활 속 실천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이를 중도로 회통해 함께 풀어내고 싶습니다.”

초심자 수행과정에서 총무 월명 스님이 걸음에 집중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중도 수행은 정견에서 시작

일묵 스님은 팔정도가 들어 있으면 불교수행법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교수행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초기불교의 수행도 방편일 뿐 그 핵심은 팔정도의 시작인 정견임을 강조했다.

“최근 현대인들에게 많은 명상법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견을 통해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 당시 가르침이 무엇이고 이로인한 수행법이 무엇이 있고, 현재는 어떻게 적용이 가능한가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수행하고, 바르게 실천해야 합니다.”

스님은 그런 의미에서 법문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바른 견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결국 스승이 지도를 해줘야 한다. 일대일의 지도 뿐만이 아니라 대중들을 법문을 통해 주기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따와나 선원의 수행과정 중에는 매일 수행법담 과정이 있다. 수행 중 느끼는 경계에 대해 스님과 허심탄회하게 논하는 자리다.

“요즘 사람들은 일단 체계적인 교육에 매우 익숙한 세대입니다. 이들에게는 무작정 믿으라는 것 보다 하나하나 이해시키고 이를 통해 믿음과 수행원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학력자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짙어집니다. 결국 우리네 스님들이 이들을 보다 쉽게 이해시키고 설명하여 신심까지 이끄는 방법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해답이 팔정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미 당시 고학력자들, 체계적인 학습에 익숙한 이들을 위해 정립해놓은 불교사상입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또 다른 포교의 방안도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공동체에서 학습과 수행을 널리 펴는 리더들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부처님 당시 가르침에 근간해 팔정도와 사성제 수행을 널리 펴는 이들을 배출해 한국불교의 근간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제따와나 선원을 돌아 나오는 길, 선원에 모인 초심자들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부처님 당시 부처님 법을 듣기 위해 기원정사를 찾은 대중들의 얼굴이 이랬을까 생각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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