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중계] 입체적 서양미술 스며든 간다라
[강의실 중계] 입체적 서양미술 스며든 간다라
  • 정리=김지원 기자
  • 승인 2019.03.0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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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길상사 일요특강...유근자 동국대 교수

주제 : 간다라미술로 본 부처님 생애

서울 길상사(주지 덕일)는 2월 24일 유근자 교수를 초청해 일요특강을 진행했다. 유 교수는 “간다라미술은 인도 고유의 전통을 따른 인접 지역과 달리 고행상, 열반상 등 사실적으로 시각화한 표현이 시도되거나 서양 신화 속 이미지가 차용된 사례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왼쪽부터 '첫 선정에 든 싯다르타',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출가', 꼴카타 인도박물관, 인도. '첫 설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미국. '열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미국. '고행상', 라호르박물관, 파키스탄. 사진제공=유근자 교수
사진 왼쪽부터 '첫 선정에 든 싯다르타',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출가', 꼴카타 인도박물관, 인도. '첫 설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미국. '열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미국. '고행상', 라호르박물관, 파키스탄. 사진제공=유근자 교수

헬레니즘 시대, 서양문화 유입
‘고행상’ 등 사실적 표현 시도
부처님 삶 주요 장면 시각화해
초기불교 특징 이해에 큰 도움

 

첫 선정 든 석가보살
법당에 있는 여러 보살상은 남성의 모습처럼 보이나요? 팔찌, 귀걸이, 목걸이를 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은 여성의 모습으로 인식하곤 합니다. 

실제로 인도에서 처음 보살상이 조성됐을 때는 남성을 모델로 했어요. 이 석상에서도 싯다르타 태자는 장신구를 걸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해당 보살상은 부처님께서 염부수 아래에서 깊은 선정에 드신 모습인데요. 부처님이 앉아있는 대좌 아래에 이 에피소드를 담은 장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봄이 되자 싯다르타 태자의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과 함께 직접 농경지들을 살펴보러 나갔어요. 농부가 소 두 마리를 몰고 밭을 가니까 벌레가 나왔어요. 작은 새가 그 벌레를 쪼아먹고, 더 큰 새가 작은 새를 다시 잡아먹는 것을 태자는 보게 됩니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모습을 본 태자는 ‘왜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염부수 나무 아래서 깊은 선정에 들었다고 합니다. ‘이 고통에서 헤어나올 방법은 무엇일까’ 하며 선정에 든 태자의 마음은 너무나 평안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태자를 가렸던 그늘도 당연히 움직였겠죠. 그런데 태자 위의 그늘은 일정하게 유지됐다고 해요. 신령스러운 변화가 일어난 거죠. 아버지 정반왕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아들인 태자에게 절을 했다는 장면이 조각돼 있습니다. 이 불가사의한 사건은 부처님 출가 이전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법신장이 도운 出家
농경지를 돌아보고 온 뒤에 정반왕은 아들 싯다르타 태자가 혹시 출가하면 어쩌나 하고 늘 전전긍긍했죠. 인도의 관습은 아들이 태어나면 관상가를 불러서 이 아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관상을 보게 합니다. 관상가는 “이 분은 출가하면 부처가 세속에 있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아버지 정반왕의 입장에선 태자가 대를 이어 전륜성왕이 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아들로 하여금 출가에 마음 기울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했죠. 태자는 “아버지께서 불사의 문을 알려준다면 출가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반왕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문을 가르쳐 주지 않죠. 결국 태자는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간다라미술에서는 출가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출가가 수행의 길로 접어드는 제의 탄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사의 문을 열기 위해 길을 떠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야쇼다라가 깊은 잠에 빠져 있고 태자가 마부 찬나에게 말을 준비시키는 모습입니다. 출가 직전의 긴박함이 표현돼 있죠. 아무리 성문을 잠그고 경비병을 세워도 태자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천신들이 내려와서 말발굽 소리가 나지 않게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우리나라에 와서는 말 다리가 4개이기 때문에 사천왕이 한 발씩 받치고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애마 칸타카를 탄 태자는 카스트 제도 하의 권리도 포기하고, 백성들을 보살필 의무로부터도 탈출합니다.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 시기 부처님은 아직 깨달음을 얻기 전이라서 ‘석가보살’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 이후에 ‘석가모니불’이라고 부릅니다.
 

깨달음 전 최후의 수행
간다라미술에서 최고의 걸작은 지금 보시는 고행상입니다. 실제로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에 가면 성인 남성이 앉아있는 등신대 크기로 이 고행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집에 부처님 한 분만 원불로 모신다면 고행상을 안 모시고 싶어할 겁니다. 원만한 상을 모시고 싶어 할 거예요. 선방에서 극한 수행하시는 스님이 가끔 찾을 뿐 우리 불교도들은 그다지 고행상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고행상은 인도적 전통이 덜하고 헬레니즘 문화가 성행한 간다라 지역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고행상의 모습처럼 부처님은 한 청년에게 공양 받은 풀을 깔고 그 위에서 극한고행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하루 깨 한 톨로만 버티며 수행했지만 고행법은 깨달음의 길과는 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때 부처님은 첫 선정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첫 선정에 들었을 땐 마음이 고요하고 너무나 행복했는데 최고의 수행법이라는 고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고행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녀 수자타가 올린 우유죽을 드시고 기력을 회복한 뒤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거죠. 이를 보고 부처님과 함께 수행한 다섯 수행자들은 “저 이는 타락자”라며 곁을 떠나죠. 그러나 그 보리수 아래서 부처님은 성도 하게 됩니다.
 

첫 설법, 三寶 탄생의 순간
간다라미술에서는 성도 장면이 드라마틱합니다. 마왕은 끊임없이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합니다. 마왕과 부처님의 마지막 화두는 ‘누가 전생에 공덕을 더 많이 쌓았는가’ 였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나 싯다르타는 당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공덕을 지었다”고 합니다. 마왕이 그 공덕을 누가 증명할 것인지 묻자, 지모신이 땅에서 솟아 증명하고 결국 마왕은 패배를 인정하게 됩니다. 주변의 희한한 동물, 돌과 창을 든 인물들은 마왕의 군대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욕망을 대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음은 녹야원에서 전법륜 즉,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되는 장면입니다. 사슴 2마리는 장소가 녹야원임을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이곳에서 부처님의 첫 설법을 통해 5명의 아라한이 탄생하게 되는데, 앞서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하는 순간 떠났던 이들이 녹야원에서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죠. 간다라미술에서는 법을 설하는 부처님은 오른손으로 직접 법륜을 굴리는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시작했고 그대들도 출가한 목적을 완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중도에 대한 법을 설하기를, 관능의 쾌락에 빠지고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데 열중하는 2가지 극단을 극복하는 일이 곧 성도하는 것이란 내용이었죠. 녹야원에서의 첫 설법 장면은 부처님, 가르침, 법을 따르는 수행자인 불법승 삼보가 탄생한 사건을 보여줍니다.

이후 마왕이 또 등장해 “불법승 삼보가 생겼으니 이제 열반에 들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나는 아직 완전한 교단을 형성하지 못했기에 더 머물러야 한다”면서 45년 동안 교화의 길에 나서게 됩니다.
 

오른쪽으로 누운 열반상
부처님도 결국 열반에 들게 됩니다. 인도 사람들은 부처님의 열반을 조각이나 미술로 표현하고 싶어 했을까요? 아닙니다. 꺼려했어요. 부처님을 시각적으로 죽은 자로서 표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서양 문물과 문화가 유입된 간다라 지역에서는 가능했습니다. 사실주의적인 측면에서 죽음까지도 작품에서 드러나야 했으니까요.

이 사진은 횡와 부처님 열반상입니다. 부처님 곁을 지킨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와 마하가섭 존자가 등장하죠. 마하가섭 존자는 부처님 열반 뒤 뒤늦게 찾아온 모습입니다. 부처님을 수호하는 보디가드죠. 집금강신은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힘의 상징, 헤라클레스처럼 보이지 않나요? 간다라미술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집금강신 모습은 헤라클레스의 이미지를 불교에 들여와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이교도는 나신으로 표현돼 있어요. 말라족 사람들은 곁에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육신까지 다 사라진 열반을 완전한 열반으로 인지합니다. 반면 소승불교가 전해진 남방지역에는 열반상이 중요시됩니다. 간다라 사람들은 인도인들과 달리 열반한 부처님을 가로로 누운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이후 중국과 동남아로 전해져 열반상은 자리 잡게 됩니다. 열반상들을 보면 부처님은 모두 오른쪽으로 누워있습니다. 인도의 와법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오른쪽이 성스러운 와법으로 제왕이나 부처님의 와법입니다. 왼쪽은 애욕의 와법을, 큰 대자로 눕는 것은 죽은 자의 와법을 뜻합니다.

지금까지 본 간다라미술에서의 부처님 일대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시각적인 소재로써 미술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간다라미술은 초기 불교의 역사와 특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오늘 간다라미술을 통해 다가올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을 앞두고 부처님 일대기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길 바랍니다.
 

유근자 교수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현재 동국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간다라에서 성행한 석가여래 일대기에 관한 불전미술 등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는 〈치유하는 붓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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