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 2월 27일 기념 토론회서 주제 발제

(사)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법륜 스님(정토회 지도법사)은 2월 2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공연장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독립운동가 백용성:잊혀진 100년의 진실'을 주제 발제를 했다.

다들 백용성 스님은 민족대표 33인 중 만해 한용운 스님과 함께 불교 대표로 참여한 스님으로만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백용성 스님은 대한민국 수립의 최초 발원자이며, 손병희 천도교 교주와 3.1운동을 계획했습니다. 또한 독립자금을 꾸준히 상해 임시정부에 보냈던 지원자였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근대불교 선지식인 백용성 스님(1864~1940)3.1운동을 계획하고 대한민국 수립을 처음으로 발원했다는 구술 증언들이 잇달아 제기돼 눈길을 끈다. 백용성 스님이야말로 3.1운동과 항일운동의 숨은 주역이었다는 것이다.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법륜 스님(정토회 지도법사)22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공연장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주제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주장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 주최
법손 도문 스님 구술 증언 바탕으로
용성 스님의 항일운동 사실들 밝혀

3.1운동·33인 등 논의 이끈 장본인
출옥 후 임정·독립군 자금 지원활동
종단·학계 차원 관심 갖길 기대해

(사)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법륜 스님(정토회 지도법사)은 2월 2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공연장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독립운동가 백용성:잊혀진 100년의 진실'을 주제 발제를 했다.

간과할 수 없는 도문 스님의 구술
독립운동가 백용성:잊혀진 100년의 진실을 주제로 열린 이날 발제에서 법륜 스님은 그간 부각되지 못했던 백용성 스님의 항일 사실들을 풀어놓았다.

법륜 스님이 제기한 백용성 스님의 항일 사실들은 대부분 용성 스님의 법손인 도문 스님의 구술에 의한 것이다. 구술사의 객관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피해 사실 등이 분명한 특정 사실들에 대해서는 구술도 상당한 신빙성을 가진다.

백용성 스님의 손상좌인 도문 스님은 백용성 스님의 후원자인 만석꾼 임동수의 증손자이기도 하다. 증조부, 조부부터 은사 등에게 백용성 스님의 독립운동 일화를 가장 많이 듣고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3.1운동 계획숨겨진 주역
법륜 스님이 밝힌 백용성 스님의 항일 운동은 3.1 운동 계획과 종교간 통합 대한민국 수립 발원과 태극기 사용 임정 등에 독립운동 자금 지원 윤봉길 대한민국임정 파견 만주에 독립운동 근거지인 용정 대각교당 농장 선농당 설립 ·중 연합국 창설 구상(1만 의병 참여 총사령관 홍범도) 항일 불교운동 등 7가지다.

법륜 스님에 따르면 3.1운동 계획은 손병희 천도교 교주와 논의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1910년 한일합방이후 백용성 스님은 나라의 녹을 먹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독립운동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3정승, 6판서, 팔도감사, 360고을수령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외면했다. 도리어 항일 운동에 나선 것은 못 배우고 못 살던 민중들이었음을 확인하고 독립선언거사를 계획하게 됐다. 1918년 손병희 교주를 찾아 독립선언 거사를 논의하며 33천의 하느님이 우리를 보우하시어야 우리나라가 만세를 누릴 수 있다고 제언했고, 손병희 교주는 이를 받아들였다.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도 이렇게 해서 인원 수가 정해진 것이다.

종교 간 이견 차를 좁힌 것도 백용성 스님이었다. 법륜 스님은 당시 천도교 신자가 300만 명의 가장 강했다. 그래서 민족대표로 천도교가 30, 불교가 3명이 참여할 것을 손병희 교주가 제안했지만, 이를 만류하고 기독교까지 참여시킨 것이 백용성 스님이라고 밝혔다.

이후 논의에 참여한 기독교 감리회와 장로회 측이 각각 11인을 배정해줄 것을 요구해 진통을 겪게 됐다. 이에 용성 스님은 불교에서 나와 한용운만 들어갈테니 천도교 15, 기독교 16인으로 대표 33인을 구성하자고 절충안을 제시했다.

이 같은 백용성 스님의 독립운동 의지는 대한제국의 부흥이 아닌 대한민국의 수립이 있었다는 게 법륜 스님의 설명이다.

법륜 스님은 나라의 관리들은 독립운동 참여를 외면하는데 민중들은 도처에서 의병을 일으키는 것을 백용성 스님은 전국을 유랑하며 확인했고, 이제 ()의 시대가 왔음을 알았던 것이라며 이에 기초해서 3.1운동에 동참한 민족대표들에게도 대한민국 수립운동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는 상해 임시정부에 이어지고 현재 대한민국으로 계승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제 이후에는 최병헌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이이화 역사학자,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등이 참석해 토론회가 진행됐다.

음지서 항일운동 지원은 밝혀져야
이와 함께 법륜 스님은 백용성 스님의 독립운동 지원 사실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백용성 스님은 후원자이자 동지인 임동수와 함께 금광업, 인삼무역, 농장 운영 등의 사업을 한다. 이중 눈여겨 살펴볼 부분은 백용성 스님이 출옥 후 1년 뒤인 1922년 만주 명월촌과 봉녕촌에 각각 210만평 부지의 과수 농장을 설립한 것이다. 1927년에는 중국 만주 용정에도 대각교당을 세웠다.

법륜 스님은 “1921년 자유시참변으로 궤멸된 독립군과 그의 가족들에게 터전이 필요했다면서 백용성 스님은 농장을 건립해서 유랑하는 동포들이 머물 수 있게 만들었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생계 지원과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41년 발간된 안수길의 소설 <원각촌>은 중국 명월촌 화과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실제 저자 안수길은 중국 용정 대각교당 핵심 책임자 안용호의 아들이라며 이는 불교 종단과 학계 종단에서 관심을 갖고 연구·발굴하면 역사적 사실로 밝혀질 수 있는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주제 발제 이후에는 최병헌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이이화 역사학자,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등이 참석해 토론회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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