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예순, 이 남자의 홀로서기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다. 사랑했기 때문에 더 밉다.
‘내 마음을 몰라주다니, 네가 그럴 수 있어?’

사랑이라는 이름의 나무에서 싹이 튼 미움은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어 냄새를 온 사방에 떨친다. 그 악취에 내 마음이 먼저 질식한다. 사랑에 잠 못 드는 밤이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면 미움에 잠 못 드는 밤은 오로지 지옥의 불길에서 활활 타오를 뿐이다.

부부란 도반, 의미 설명
정서적인 홀로서기 필요
‘나’는 누군가의 수고로움

지난 명절에도 많은 이가 미움의 싹을 발아시켜 그 불 속에서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태우고 있지 않을까.

“남편은 시댁만 가면 마초로 돌변해 손도 꼼짝 않고 나만 시켜 먹는다.”
“어떻게 키웠는데 장가가더니 마누라밖에 모르고 부모 보기를 남 보듯 하냐? ”
“나이 마흔이 되어도 어머니 잔소리는 끝나지 않는다.”

부모자식이나 부부의 질긴 인연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없었을 괴로움이다. 
가족관계에 대한 예리한 시각으로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어온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가족의 무게가 괴롭다는 독설이며, 가족이라 내다버릴 수도 없다는 역설이다.

코칭의 단골 이슈는 관계의 갈등이다. 가족이라서 생기는 미움과 원망, 가까운 사이에서 느끼는 섭섭함과 억울함, 어떤 문제든 원인을 파고들면 사랑과 미움이 한 뿌리에서 나온다.
부부 사이의 애증은 더욱 미묘하고 복잡하다. 핏줄이 아니면서 공동 운명체로 묶인 두 사람은 가까워서 더욱 멀어지는, 속 모르는 사이가 된다,

은퇴 후 달라진 아내가 밉다
은퇴 후 부인에 대한 섭섭함으로 괴롭다는 남성 고객이 있었다. 문영 씨는 은퇴하면 아내 미자씨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리라는 기대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자녀는 독립했고 단둘이 여행하고 취미생활을 함께 하면서 늙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몇 달 간 아내는 그동안 수고했다며 삼시세끼를 정성껏 차리고 함께 다정한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지만 점차 남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을 불편해하더니 자신의 외출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다. 출퇴근 때는 몰랐는데 집에 있어보니 아내는 자신이 모르는 친구도 많고 사진이며 합창이며 동호회 모임도 많았다.
문영 씨는 그런 아내가 야속하다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무슨 비밀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어 아내의 수첩이나 컴퓨터를 뒤지기도 했다. 아내는 잘도 살아왔는데 자신만 가족을 위해 오래 고생한 것처럼 지난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아내가 미운 마음도 힘들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다는 자괴감까지 들어 이중의 고통입니다. 전 평생 아내밖에 몰랐습니다.”
문영 씨는 마지막 문장을 힘주어 말했다. 자신이 사랑한 대가를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듯이.
부부 사이의 객관화를 위해서 코치는 서로의 대화를 기록하고 가능하면 녹음을 해서 다시 들어볼 것을 제안했다.

문영/ 내일 외출한 건데 셔츠 다림질이 안 되어 있네?
미자/ 그래요? 미리 말하지.
문영/ 빨래하고는 왜 다림질을 안 했어?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미자/ 뭐하는 사람? 아직도 그 소리야. 언제까지 당신 치다꺼리를 해줘야 해? 이제 다림질 정도는 당신이 좀 하면 안 되나. 

문영/ 다음 주말에 영화 보러 가자. 예매해둘게.
미자/ 영화? 집에서도 볼 수 있는데 답답하게 뭘 영화관까지 가요? 그리고 다음 주말에는 약속 있어요. 
문영/ 어딜 그렇게 매일 나다니냐?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미자/ 내가 하는 일은 다 하찮은 건가. 당신이야 말로 언제까지 나만 붙잡고 늘어질 거예요?  

문영/ 동네 산책 다닐 때 입게 카디건 하나 사줘.
미자/ 어떤 걸로? 그냥 당신이 마음에 드는 것 사면 안돼요? 사오면 색깔이 어떻고 디자인이 어떻고 당신 까다롭잖아?
미자/ 옷 하나 사주는 것도 이제는 귀찮은 거야?

대화를 다시 들으며 문영 씨는 아내에 대한 미움이 새삼 솟아나는 걸 느꼈다.
자신과 함께 시간 보내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직장을 다닐 때는 군말 없이 내조하다가 이제는 귀찮은 사람 취급하다니 괘씸하고 억울하다. 
나는 이 대화를 다른 사람(가능하면 여성)에게 들려준 다음 그 느낌을 들어보고 다시 코칭을 해보자고 했다.
그는 딸과 여동생에게 들려주었는데 이런 소감을 들었다.
“여전히 부인을 시중드는 아내로만 생각하고 있다. 부인의 바깥 활동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관심이 없다. 영화도 보러 갈 거냐고 묻지 않고 영화 보러 가자고 먼저 결정해 통보하지 않았나. 이제껏 아내에게 일상을 의존해왔는데 은퇴 후에는 어떤 인생을 살 건지 자신만의 계획을 세워보지는 않았는지?”
문영 씨는 자신을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남편으로 치부하는 그들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함께 하려는 의도가 아내를 귀찮게 하고 시중을 받으려는 태도인가. 지금까지 아내와 남편의 할 일이 나뉘어 있었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라는 거지? 문영  씨에게 부부란 남편과 아내일 뿐이었다. 

남편과 아내가 아닌 삶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부부가 어떤 사이여야 하는지 새롭게 알아야 한다니 문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이때부터 문영 씨의 코칭 이슈는 〈노년의 부부가 사는 법〉이 되었다. 
부부란 일방으로 챙겨주고 돌봐주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를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고 함께 길을 가는 도반이라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6주간의 코칭 시간이 필요했다. 집안의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실은 아내의 챙김을 받는 의존자라는 자각이 들 때 문영 씨는 섬뜩했다.
마지막 세션에서 문영 씨는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스페인 순례 길을 혼자서 가볼까 해요.”
문영 씨는 긴 도보 여행을 위해 매주 둘레길 트래킹을 하고 걷기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는 마음으로부터 아내와의 거리두기를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저 여자는 내가 아니다. 내 마음을 다 알아줄 필요가 없다. 나는 이제 정서적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홀로서기를 격려하는 나에게 그는 쓸쓸하게 말했다.
“아직은 힘듭니다. 나이 들수록 아내가 더 필요해요. 하지만 혼자의 시간을 즐기지 못하면 정말로 외로워질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랑은 홀로 선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것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붓다가 깨달음 후 외친, 하늘 아래 홀로 존귀하다는 이 한마디는 자신만이 최고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가치만큼 타인도 귀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니, 여기에 붓다 말씀의 진리와 묘미가 있다. 즉 하늘 아래 모든 존재는 단독으로 존귀하니 각기 홀로선 후에 타자와 교감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연기(緣起)의 눈으로 보면 나는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존재한다. 밥알 하나도 많은 이들의 수고가 담겨져 내 몸으로 들어간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부부란 그야말로 엄청난 인연이며 연기이다. 이런 부부 사이를 동일 운명체라는 착각으로 한쪽에서 흡수하는 관계를 강요하면 건강하지 못한 악업(惡業)의 관계가 되어버린다. 진정한 연기란 각자의 단독성을 인정하면서, 네가 있어 내 존재감이 커지는 그런 사이여야 한다. 
문영 씨가 순례길에서 보내온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처음으로 홀로 된 40여 일의 이 시간이 결혼생활 전체보다 더 긴 것 같습니다. 고독하지만 오로지 나 자신만을 볼 수 있어서 새롭습니다. 나도 꽤 괜찮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행복하네요.”

문영 씨 부부가 천상천하유타독존(天上天下唯他獨尊)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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