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 김원숙 미학자
  • 승인 2019.02.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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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남준의 〈백팔번뇌〉 
백남준의 ‘백팔번뇌’. 1988년 경주 문화엑스포 행사를 맞아 제작한 것이다. 108개의 모니터로 광복과 전쟁 등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았다. 작품 앞에 서면 과거·현재·미래가 윤회전생처럼 펼쳐진다.

누군가 백남준에게 물었다. “선생님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뭡니까?” 백남준의 대답이 걸작이다. 

“메시지는 뭔 메시지...메시지를 전하려면 말로 하지, 그걸 왜 어렵게 작품으로 합니까? 나는 메시지 전달엔 흥미 없고, 또 돈 많은 헐리우드 영화업자에게 당할 재간 없지요.” 

그는 서양 아방가르드 흐름에는 공(空)의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고 자주 언급했다. 한 인터뷰에서 질문자가 “존 케이지의 전위음악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 난해하고...더구나 자주 접해보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관객들은 난해하게 여길 터인데 존 케이지의 작품세계에 대해 말씀해주시죠”라고 했다. 

백남준은 “그럴 리가요? 존 케이지는 불교나 동양사상에 심취한 사람이라 우리에게 오히려 익숙할 텐데요?”라고 대답했다. 

또 어떤 문화계 인사가 자신의 예술관을 꽤나 길게 이야기한 다음 백남준에게 물었다. “저는 이러이런 걸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백 선생께서는 무엇을 예술이라 보시는지?” 

백남준이 대답하기를 “흠… 예술에 대해 꽤 아시네요. 난 잘 모르는데! 다음 질문?” 그러자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예술은 사기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지만 값비싼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다이아몬드고, 다른 하나는 예술작품이다.” 등 그가 세상에 던졌던 촌철살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선승의 화두와 같았다.  

1984년 벽두, ‘굿모닝 미스터오웰’이라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이 인공위성 생중계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TV 방송에서 동시에 송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은 우리나라에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방송 예고를 보던 많은 사람들은 “코미디언 백남봉은 알겠는데, 백남준은 도대체 누구냐”며 의아해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지금까지도 백남준은 국내보다는 해외 미술계에서 평가가 더 높다. “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아니라 세기(世紀)적인 아티스트다”라고 말한 그는 미술의 역사상 세기적이며 동시에 세계적인 탁월한 아티스트였다.

선불교 영향을 받은 故 백남준 선생. 

 

백남준은 20세기 중반 이후 모더니즘의 쇠퇴와 더불어 일어난 플럭서스 그룹에서 활동했다. 플럭서스는 라틴어 ‘fluere(흐르다)’에서 비롯된 말로 우연적이고 불확정적이며 무상하고 역설적인 성격을 지닌 그들의 예술세계를 함의하는 대표 어휘이다. 이 그룹에는 〈4분 33초〉라는 작품의 실험적인 전위음악으로 잘 알려진 존 케이지,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라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요셉 보이스 등이 있다. 존 케이지는 미술사적으로는 마르셀 뒤샹의 정신을 계승하였으며, 정신적으로는 선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백팔번뇌〉는 1998년 열린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행사 중 하나였던 ‘국제 멀티미디어 아트쇼’의 출품작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백남준은 108개의 모니터로 8.15광복과 해방공간의 혼란, 동족의 참화였던 6.25전쟁을 표현했고, 199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사를 담고 있으며, 동시대의 동서양 문화 역사 등을 아울러 보여 주고자 했다.

백남준은 일제 강점기였던 1932년 서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비록 유복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유년 시절을 보내기는 했으나, 광복과 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에게 나라와 민족의 역사적 질곡은 번민으로 다가왔다. 동경대 미학과 졸업논문이 ‘아르놀트 쇤베르크 연구’였던 걸 보면, 그는 애초 시각예술 장르보다는 음악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음악가의 꿈을 안고 떠났던 독일 유학에서 그는 일군의 전위 예술가 그룹과 조우하게 되었고, 1963년 첫 개인전을 출발점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차츰 알려나갔다. 그가 떠났던 1951년은 전쟁의 참화가 나라를 폐허로 만들었던 시점이라, 1980년대 이후 일련의 작업을 위해 다시 찾은 모국의 모습은 그의 마음에 적지 않은 감회를 일으켰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 〈백팔번뇌〉는 백남준 개인의 번뇌이기도 하며, 자신의 여정과 정신적 고뇌를 이야기한 하나의 연대기처럼 느껴진다.

작품 앞에 서면, 백 여덟 개의 화면들이 만들어내는 현란한 파노라마에 잠시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 하나하나의 TV 모니터는 인간의 오감과 희로애락의 감정이 빚어내는 온갖 번뇌들을 보여준다. TV라는 매체가 작동하는 원리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 명멸하는 이미지들은 무의미하고 분절된 찰나들의 무한한 반복이기도 하고 (실제로는 약 1/20초로 나눠진 전자공학적인 여러 프레임들의 연속), 동시에 삶에서 부딪치는 수많은 사건들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회하는 윤회전생처럼 펼쳐진다. 백남준의 미디어작품 〈백팔번뇌〉를 지켜보고 있자면,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근원의 자성이 천진불이라
오음의 뜬 구름이 부질없이 가고 오며
삼독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하도다.

法身覺了無一物(법신각료무일물) 
本源自性天眞佛(본원자성천진불) 
五陰浮雲空去來(오음부운공거래) 
三毒水泡虛出沒(삼독수포허출몰)
- 永嘉 玄覺, 〈연등회요(聯燈會要)〉권30
 ‘증도가 證道歌’ 중에서

당대의 승려였던 현각(665~713)이 조계(曹溪)의 혜능(慧能)을 찾아 문답을 통해 깨치고 그 깨친 경지를 노래한 시가 중 한 구절처럼 떠오른다. 마치 영원한 바다에 모든 것이 속절없이 오가는 생멸변화의 뜬구름과 번뇌의 물거품만이 일었다 사라짐을 마주하는 듯하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백남준은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고 말했다.  기원전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Ὁ βίος βραχύς, ἡ δὲ τέχνη μακρή)”라는 경구를 뒤집어 이야기한 것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는 익혀야 할 의술은 많은데 인생이 짧다는 의미였다. 영어 ‘아트(art)’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테크네(τχνη)’는 의술, 건축술, 요리술, 전술, 정치술, 처세술, 웅변술, 경작술 등 기술일반까지를 포함하는 용어였다가, 18세기 이후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의 다른 여러 기술, 즉 수공예나 기계적 기술과 구별하여 오늘날 회화, 조각, 건축, 문학, 연극, 무용, 음악과 같은 예술 장르를 가리키는 미예술(fine arts)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백남준에게 기술이든지 예술이든지 그것은 인간의 삶만큼이나 본시 덧없고 무상한 것이었다.

동양에서 온 작은 체구의 한 청년이 서구 예술 세계에서 이목을 집중시킨 계기는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개최된 첫 번째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었다. 이 전시에서 그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했는데, 이 해는 또한 마키우나스가 플럭서스 선언문을 세상에 내놓은 때였다. 플럭서스 작가들이 주요한 표현 수단의 하나로 사용했던 퍼포먼스, 행위예술이 이러한 우연적 특질, 덧없고 일시적인 특질을 나타낸다. 

모든 새로운 예술 사조는 그 새로움에 대한 충격으로, 혹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사람들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흔하다. 플럭서스 자체가 “기존 부르주아의 병폐와 지적이고 전문적이며 상업화한 문화를 추방하라”고 선언하며 일어났지만, 역설적으로 예술의 지위를 덧없고, 일시적이며 폐기 가능한 것으로 전락시켰기에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부정적 양상과 유사한 자체 모순을 지닌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석굴암 본존불을 형상화한 ‘백팔번뇌’.

서양 문명사의 흐름은 한편으로 기독교적 신앙을, 다른 한편으로는 플라토닉한 이상을 가지고 항구적이며 영원불멸한 존재인 신 또는 관념적 이데아를 추구하는 정신적 경향이 주류였다. 반면, 동양의 정신세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생멸하는 삼라만상의 이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 불가의 사상이 그러하며, 노장사상이 그러하다. 플럭서스의 작가들은 동양사상에 심취하였고 이를 자신들의 작업에 반영하기를 원했다.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백팔번뇌〉를 비롯한 많은 비디오 아트 작품에서 보듯 부서지는 것, 깨어지는 것, 덧없이 흘러가고 사라지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그들의 창작 의도 가운데 하나였다. 백남준은 플럭서스 그룹의 동료들과 함께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예술이 만나는 지점을 처음으로 마련하였고 미술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2006년 백남준 타계 이후 2007년 2월부터 그의 유골함은 서울 봉은사 법왕루에 있고, 세계 곳곳의 수명이 다한 부품들로 인해 하나씩 꺼져 가는 그의 작품을 놓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란이 무성하다. 현재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들 대부분은 정상적으로 가동하기가 쉽지 않다. 옛 방식의 브라운관은 일정한 수명이 있는데, 요즘은 그런 것들을 생산하는 곳이 없어 수명이 다하면 새 것으로 조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은 짧다’는 그의 말처럼 백남준이 만든 작품 역시 덧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 다만, 생전에 황병기 선생을 충격에 빠트렸던 그의 말을 회상하자면, “예술이 오래갈 필요가 있느냐”고 특유의 무심한 말투로 한마디 던질 것 같다. 세상에 불변하고 영속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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