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法은 심신 건강, 질병예방의 방편
佛法은 심신 건강, 질병예방의 방편
  • 임종욱 소설가
  • 승인 2019.02.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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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藥師如來)와 사인사질(斯人斯疾)

질병만큼 큰 괴로움은 없다
언제 사람은 나이가 들어 늙어버렸다고 느끼게 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이들이 성장해서 애인을 집에 데려오거나, 결혼식에 자신이 혼주로 참석하게 되면 세월의 흐름을 실감할 듯하다. 또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의 언덕이나 강가가 문득 떠올라 아련한 그리움에 메마른 미소가 스쳐도 그런 기분이 들 것 같다. 더 이상 맡을 역할이 없어져 퇴직하고, 임기가 차서 은퇴하는 처지가 되어도, 젊은 시절은 가뭇없이 지나버렸고 조락(凋落)의 시간만 내게 남았다고 여겨지겠다. 아내나 남편의 얼굴에 언젠가부터 주름살이 느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왠지 모를 허탈감에 마음이 흔들려도 늙었구나 하는 울적한 회한에 빠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몸이 병들어 아프거나 주변 친지들의 와병 또는 부고가 전해질 때만큼 하염없이 세월의 무정함을 절감할 때가 있을까.

고통서 중생 건진 부처님
죽음은 내세 삶 여는 문
이웃 고통 살피는 지혜 얻길

지난해부터 얼추 일 년 사이에 그간 알고 지내던 분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자주 접했다. 아직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어도 치유할 수 없는 병환으로 희망을 놓아버린 지인의 사연도 심심찮게 귓전을 스쳤다. 얼마 전에는 남해에 내려와 자주 뵙던 한 작가의 문상을 다녀왔다. 건강이라면 늘 자신감에 넘쳤던 그 분은 덜컥 암에 걸리더니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건너가 버렸다. 게다가 그 기간 동안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모습이라니.

질병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잘 모를 것이다. 죽음의 고통보다 더 크고 잔혹한 것이 질병 때문에 찾아오는 통증이라고들 한다. 죽음의 고통은 생명이 끊기면 함께 사라지지만 질병의 고통은 병이 나을 때까지는 더욱 악착스러워지는 데다 치유되어도 후유증에 따른 고통은 여전히 남는다. 질병의 고통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병을 가리키는 ‘질(疾)’이라는 글자가 ‘미워하다(질시疾視)’는 의미로도 쓰였겠으며, 고통이 얼마나 빠르고 계속 이어졌으면 ‘빠르다(질주疾走)’는 뜻으로도 쓰였겠는가.
세상의 모든 종교는 결국 질병과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도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이 빚어낸 산물이란 생각이 든다. 시간의 흐름은 강철도 녹슬게 만들고 단단한 바위도 모래로 만드는데, 하물며 피와 살과 뼈로 만들어진 연약한 사람의 몸이야 감당할 재간이 없는 게 당연하다. 서양의 종교는 영생(永生)의 논리를 내세워 신국(神國)에 가면 영원한 안식과 평화가 있다면서 죽음의 공포를 지우려고 한다. 모든 액운을 신의 무한한 섭리와 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으로 푸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참 실용적이고 속 편한 대안이다. 내게 던져진 절박한 불안을 타자의 처분에 맡기고 일시적일지라도 안도할 수 있으니, 그도 한편으로는 유익해 보인다.

동양의 종교가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의타적이기보다는 능동에 가깝다. 남의 도움보다는 나의 노력을 앞세운다. 유교는 죽음보다는 삶에 충실하라고, 그러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도교는 죽음이 두렵다면 아예 안 죽으면 되지 않느냐고 갈파하더니 장생술(長生術)이나 신선술 등을 설파하면서 이를 통해 불사의 길을 모색하라고 권한다. 불교는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바로 윤회(samsÆra)다.

질병과 죽음도 하나의 과정이다
이 사상은 〈미린다팡하(彌蘭多王問經)〉라는 경전에 그 의미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단다. 이 경전에 따르면 윤회는 “이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죽고, 이 세상에서 죽은 사람은 저 세상에서 태어나며, 저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저 세상에서 죽는데, 저 세상에서 죽은 사람은 다시 다른 세상에서 태어난다”는 간결한 인과관계로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이야기했다. 과일나무가 열매를 키우고, 그 열매 속의 씨가 땅에 뿌려져 다시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듯이 윤회는 끝없이 이어진다고 한다. 다만 선업을 쌓아 선과를 얻으면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악업을 쌓으면 악과를 받아 축생(畜生)이나 그보다 못한 미물로 태어난다고 해서 자기 갱신과 수행에 힘쓰라고 일깨운다.

이처럼 죽음이라는 육신의 소멸과 그 소멸의 징조인 질병의 고통을 털어내고자 여러 답안이 나왔는데, 여전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무뎌지지 않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니 질병과 죽음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으니, 새로운 결실을 위한 발걸음의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간이라면 피하지 못하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직접 목격하자 세상의 모든 부귀와 명예를 버리고 깨달음을 얻고자 출가를 단행했다. 그래서 해탈을 이루었다. 돌이켜보면 늙음은 세월이 가져오는 당연한 부산물이고, 죽음은 내세의 삶을 여는 문이라 항상 열려 있다. 다만 만물은 늙어 죽지 못하고, 늙고 ‘병들어’ 죽으니 대자대비한 손길을 거둘 수 없었다. 질병은 죽음도 부르지만 죽음을 고통스럽게 맞도록 부추긴다. 질병은 예방도 가능하고 또 때로 치유할 수도 있다. 질병은 막무가내로 덮치기도 하지만, 인간의 안이한 태도나 무지 때문에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늙음은 아주 천천히 오는 변화이고, 죽음은 느닷없이 닥치는 변화이다. 그것이 빠르든 짧든 거기에 맞춰 대처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런데 질병은 대처가 쉽지 않다. 질병이 오면 몸과 마음이 다 아프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한없이 큰 깨달음으로 해탈의 세계로 만물을 이끄셨지만, 질병으로 고통 받는 중생의 아픔도 외면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정사에 머물며 법문을 베풀면서도 환자들이 신음하는 병실을 방문하는 일을 거르지 않으셨다. 거기서 사람들이 버려둔 병든 수행승을 발견하자 손수 돌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돌보는 일은 나의 시중을 드는 일과 같다.” 그 시중이 어찌 물질적인 헌신만을 뜻하겠는가. 부처가 되는 그 모든 수행을 비유한 것이었다. 병자를 돌보는 수행으로 부처가 되라는 일깨움이었다. 

석가모니께서는 질병의 고통에서 중생을 건지고자 약사여래(藥師如來)라는 또 한 분의 거룩한 부처와 동행했다. 약사여래는 세상에서 질병으로 고통 받는 중생들의 수호신이다. 약사여래는 보살의 몸으로 수행하면서 12가지 대원(大願)을 세웠는데, 일곱 번째 대원이 제병안락(除病安樂)이었다. 모든 병을 없애고 즐거움에 편안하도록 하겠다는 서원이었다. 약도 없고 의사도 없이 고통에 문드러지며 죽음만 기다릴 때 병자가 자신의 명호 ‘약사여래’를 한 번이라도 들으면 몸과 마음이 절로 편안해질 뿐더러 아무런 장애도 없이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꼭 병들고 나서야 약사여래를 찾는 것도 좋지만 건강할 때 약사여래를 거듭 외며 상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바로 질병을 예방하는 방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질병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자
공자도 병든 이의 실상을 안타까워하며 그 고통을 무한히 연민하고 동정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보면 “스승께서 삼가신 일들은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시는 것과 싸우는 것, 그리고 질병이었다(子之所愼 齊戰疾)”는 구절이 나온다. ‘제(齊)’는 몸과 마음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배려한 태도를 말하고, 싸움 때문에 상처를 입으면 질병으로 악화될 수도 있으니, 결국 사람이 살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이 질병에 걸리는 것이라고 공자는 믿었던 듯하다.

〈논어〉 옹야편(雍也篇)에 보면, 제자 염백우의 문병을 갔을 때 그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깊이 탄식한 대목이 실려 있다.

“염백우가 중병에 걸렸다. 스승께서 문병을 하실 때 창문 너머로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럴 수는 없는데, 운명이로구나.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伯牛有疾 子問之 自六執其手曰亡之 命矣夫 斯人也 而有斯疾也 斯人也 而有斯疾也)”

염백우는 덕행이 안연과 민자건에 버금간다는 칭송을 들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질병에도 소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뜻밖에 ‘문둥병’이라는 몹쓸 병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고 말았다. 아끼던 제자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만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저 손을 잡고 위로하면서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고 하소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공자도 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증세가 상당히 위중했는지 제자 자로가 귀신에게 빌어보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이에 공자가 의문을 나타내자 예전에도 천지신명에게 빈 일이 있다면서 강권하니, “그 일이라면 내가 빈 지 오래되었다.(丘之禱 久矣)”(〈논어〉 술이편)면서 거절의 뜻을 나타냈다. 귀신에게 빌어 치유를 꾀하는 어리석음을 꾸짖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병에 걸리도록 조심하지 않았던 자신의 불찰을 탓한 말로도 들린다.

올해는 간지로 따져 돼지의 해라고 한다. ‘돼지’가 좋은 비유로는 잘 쓰이지 않는 동물이지만, 돼지는 무엇이든 잘 먹고 잘 소화시켜 항상 건강한 짐승이기도 하다. 병을 모르고 사는 삶이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큰 축복 가운데 하나라면, 부처님과 공자의 사람의 고통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본받으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로 ‘돼지’를 부적삼아 초심을 지키는 태도도 지혜의 실천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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