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송광사서 2천여 대중 참석
“계율·수행 확립한 수행자” 추모
후학들 ‘정진’ 유훈 새기길 다짐
2월 24일 초재·4월 7일 7재 봉행

2월 22일 봉행된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 대종사 다비식. 종단 계율 체계 확립과 총림 수행 가풍을 평생에 걸쳐 이끌어온 보성 대종사를 추모하기 위해 2000여 대중이 운집했다.

정진하고 또 정진하라. 오직 이것뿐이다.”

후학들에게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유훈을 남기고 원적에 든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 대종사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222일 송광사에서 사부대중 2,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엄수됐다.

오전 10시 명종 5타로 시작한 영결식은 삼귀의례에 이어 영결법요, 행장소개, 육성법문과 함께 추도입정, 영결사, 법어가 진행됐다.

2월 22일 봉행된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 대종사의 영결식. 장례는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

이날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원로의장 세민 스님이 대독한 법어를 통해 대종사께서는 조계산을 지혜와 덕행으로써 원융화합을 이루어 내고, 효봉 노사와 구산 선사의 선풍이 오롯이 살아있는 출격장부(出格丈夫)의 조계산문으로 확립했다보성 대종사의 아흔 둘의 성상(星霜)은 오직 종단의 계율체계와 수행가풍의 정립과 애민중생을 위한 올곧은 이정이었다라고 추모했다.

이어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추도사에서 보성 대종사는 종단 초대 종정 효봉 스님과 은사인 구산 스님, 그리고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모두 이은 올곧은 수행자로 살아오셨다. 스님은 종단 초대 법계위원장으로 법계 제도를 안착하시고 전계대화상으로 후학들의 수계를 주관했으며, 송광사 방장으로 청정한 발심과 수행의 목우가풍 전통을 이어 대중들을 산실에서 경책해 오셨다고 대종사의 생애를 추모하며 우리 종도들은 오직 화합하고 혁신하며 종문을 일신하여 미래불교의 길을 열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2월 22일 봉행된 보성 대종사의 영결식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 세민 스님이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의 법어를 대독하고 있다.

영결식 직후 보성 대종사의 법구는 500m 떨어진 연화대로 이운됐다. 2,000여 대중들은 법구를 따라 나무아미타불를 염송하며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뒤따랐다.

다비장에 도착한 법구는 연화대에 안치되어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거화와 함께 세속의 인연을 다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2월 22일 봉행된 보성 대종사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보성 대종사는 1928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8세에 구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0년 해인사 창섭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상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1950년 범어사 수선안거 이후 해인사, 송광사, 파계사 등 제방선원에서 30안거를 성만했으며, 구산·동산·효봉 스님을 시봉하고 정진하면서 종단 정화불사에 동참하였다.

1962년 통합종단 발족이후 총무원 총무국장, 해인사 교무국장, 송광사 율주, 송광사 주지, 종회의원 등 종단의 소임을 두루 역임하였고, 조계종 초대 법계위원장으로 추대되어 호계원 재심호계위원, 초대 대종사 품서, 조계종 행자교육원 초대 유나, 원로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97년 송광사 조계총림방장에 추대되어 송광사의 승풍진작을 위해 헌신했다. 인연을 따라 수행을 지도하고 선정을 즐기며 정진하던 중 지난 218일 삼일암에서 세수 92세 법납 75년에 원적에 들었다.

한편, 보성 대종사의 초재는 224일 오전 10시 송광사에서 봉행된다. 이후 477재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송광사에서 열린다. 310일에 열리는 3재만 부산 관음사에서 봉행한다.

영결식 직후 보성 대종사의 법구가 다비장 연화대로 이운되고 있다.
보성 대종사의 다비를 지켜보는 문도 스님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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