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석 달의 안거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선방에서는 죽비를 놓고 큰 절 대중과 산내 선원, 암자의 식구들까지 온 산중의 대중이 모여서 전체 산중의 쓰레기도 줍고 청소까지 마쳤다. 잠시 여유있는 차담 자리가 마련되었다. 어른 스님들께 “덕분에 한철 잘 살았습니다”고 감사 인사를 드리니 “왜, 어디 가느냐”고 물으셨다. 너무 진지하게 말씀을 드린 것인가! 아차 싶었다.

그러면서 “방을 빼느냐”고 한 말씀 던지신다. 그저 한 철 잘 산 것 같아서, 스스로 대견하고 대중 스님들이 너무 고마워서 인사말씀을 드렸다가 호된 법거량을 당한 것이다. 
 

겨울 석 달 안거가 지날 무렵
보성 큰스님의 부고를 들었다

1989년 비구계산림서 처음 친견
사투리·시골노인 풍모와는 달리
수행·경륜 두루 갖춘 율사셨다
어디 갈지 모를 젊은 승려들을
어린 소 다루듯 능숙히 이끌어

두루 듣고 알기에 당신은 일생을 
‘平常事’를 챙기며 살아오셨다
마지막 가르침 가슴에 울려온다 
“정진 또 정진하라. 오직 이것 뿐”


“아이고, 저는 이 산중에 뼈를 묻을 생각입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라고 엄살을 부렸다. 완전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산중에 대중으로 만족스럽게 철을 지냈다는 기쁨과 고마움이 새삼스럽다. 이제 해제가 하루 남았을 뿐이다.

해제법회를 겸한 마지막 포살을 위해 대중이 모이고 있을 때 송광사 방장 보성 큰스님의 부고가 전해졌다. 담담하게 “때 맞춰 가셨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몇 년 전 스님께서 무척 위급한 상태라는 소식을 듣고 난 뒤 이미 한 차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 뒤로 당신의 건강이 무척 양호해져서 이전과 다름없이 대중과 지내신다는 소식에 마음이 편안해졌지만 언젠가 스님께서 떠나실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던 것이다. 


1989년 가을 비구계산림에서 스님을 처음 뵈었다. 정확한 소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수계산림 전체를 총괄하셨다. 투박한 사투리에 꼬장꼬장한 말투 그리고 시골 노인 같은 당신의 인상은 여유있고 차분할 거라는 일반적인 율사의 이미지와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은 수행과 경륜을 두루 갖춘 어른이셨다. 신심 충만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운을 주체 못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젊은 승려들을 노련한 농부가 어린 소를 다루듯 진솔함으로 능숙하게 이끌어 주셨다. 

한 번은 당신께서 수계대중에게 말씀을 하시는데 강당 바깥에서 어린아이가 울면서 투정부리는 소리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대중의 분위기가 무척 탁하고 부담스러워졌지만 당신은 오랫동안 외면하고 말씀을 이어가시더니 마침내 한 말씀하셨다. 

“아이고, 뉘집 아가 시끄럽게 울고 떠드노. 스님들 수계산림하는데…. 누가 가서 조용히 좀 시키라.” 

그 순간 대중은 폭소를 터뜨렸고 탁하고 부담스럽던 분위기는 확 바뀌어 버렸다. 길게 참은 당신의 인내도 존경스러웠고 때맞춰 투박하게 던진 한 말씀도 진솔하고 좋았다. 이때 이후로 수계 대중은 율사 스님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게 되었다. 상상 속의 율사 스님을 버리고 실재 진면목의 율사 스님을 보게 된 것이다. 이후 스님을 무척 친근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법장 스님께서 총무원장을 역임할 당시 총무국장으로 방장실에 인사를 가게 되었다. 마침 보성 스님께서는 붓글씨를 쓰고 계셨는데 인사를 받으시고는 붓글씨를 계속 쓰셨다. 잠시 지켜보고 있었더니 스님께서 글을 한 폭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름을 쓰고 승납을 물으셨다. 

20년이 조금 안 되고 당신께 비구계 산림을 살았다고 말씀드리니 이름 아래 화상(和尙)이라고 쓰시겠다고 했다. 부담스러운 호칭이라고 말씀드리니 “아니야, 충분해. 능력과 자격을 갖추었으니 당당하게 받아”라며 그리 써주셨다. 

수덕사 대중·조계종 중앙종회 차석부의장 주경 스님

한참이나 어린 후학조차도 존중해주시는 당신의 자상함에 존경의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두루 듣고 알기에 당신은 일생을 평상사(平常事)를 챙기며 사신 분이다. 평상심이 아니면 어찌 평상사를 챙길 것이며, 평상사를 챙기지 못하면 어떻게 평상심을 말할 것인가. 평상사로 살아온 당신의 마지막 가르침이 가슴에 울려온다. “정진하고 또 정진하라. 오직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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