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이야기] 4. 무아와 무상
[연기 이야기] 4. 무아와 무상
  • 김성규 영남대 의대 교수
  • 승인 2019.02.21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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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상대적… 절대는 없다
그림= 강병호
그림= 강병호

세상은 4차 산업혁명으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불교는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불교는 2600년의 역사 속에서 본질은 자꾸만 작아져 모래알만 하고 나머지는 여러 겹의 옷을 입은 상태로 변질되었다. 불교를 제대로 알고 있을 때에는 방생을 하든지 영가 천도를 하든지 모두 불교가 될 수 있다. 기복도 종교의 가장 아름다운 속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을 모를 때는 형식적이고 기복적인 것은 불교가 아니라 엉뚱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종교의 본질을 알 때는 어떤 껍질을 덮어 쓰고 있더라도 껍질은 종교의 본질을 포함한 더불어 상생하는 그 종교의 사회성이 될 수 있다. 존재하는 것들의 기본 속성인 무아와 무상의 개념은 불교를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이해를 해야 하고 체득을 해야 할 부분이다. 이것에 대한 인식이 완성되면 바로 부처인 것이다.

무상·무아 인식 완성되면
바로 견성… 부처 되는 길
공간 속 모든 것 서로 연결
시공간에 절대 없어 ‘상대적’
상대성 무상·무아 이해 도움

무상에 대한 인식
무상이라는 것은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몸뚱이 하나만 보더라도 계속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식할 수 있는 변화의 종착역은 멸이다. 죽고 없어지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는 이 상황이 결국은 시간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무상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는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무상을 알 수 있다.

무상이라 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해가기 때문에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변해 고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무상이고 무아인데 우리는 자꾸 내가 있다고 착각을 한다. 내가 있다고 착각을 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내가 있다는 착각만 하지 않으면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 탐·진·치가 생기는 것이다.

무아의 인식
그렇다면 무아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무아의 정의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연관되어 독립된 실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라고 한 것은 없다고 했지만 결국은 자신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심이 생기고 욕망이 생기고 애욕이 생긴다. 그 관계의 흐름을 알 것 같으면 우리는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훨씬 더 잘 이해할 수가 있다.

무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세상이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야겠다. 존재를 기본적으로 나누어 보면 책상과 볼펜 같은 생명이 없는 물체와 생명이 있는 것들이 있다. 
존재는 무생물인 물질과 생명으로 나눌 수 있으며, 생명은 육체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고 생명을 살게 하는 기본적인 생명작용과 좀 더 고차원적인 정신작용이 있다. 이것이 이 우주의 모든 존재라고 하면 동시에 모든 존재가 무아라는 것을 인식하면 된다.

우리 몸에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눈(眼)이 있어 대상을 볼 수 있고, 귀(耳)가 있어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코(鼻)가 있어 냄새를 맡을 수 있고, 혀(舌)가 있어 맛을 느낄 수 있다. 몸(身)이 있어 좋고 싫음을 느낄 수 있으며, 의지(意)가 있어 눈·귀·코·혀·몸으로 느낀 것들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다. 즉 우리 육신은 기본적으로 안·이·비·설·신·의인 6근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이 없는 무생물은 몸뚱이밖에 없는 것이며, 이것을 물질이라고 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안·이·비·설·신·의를 가지고 있으면 생명체이다. 의는 우리의 정신작용이며, 우리의 인식이다.

결국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부분은 없애고 우리가 볼 수 있고 감지되고 인식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는 것이 불교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출발이다.

미시세계에서 무아의 인식
무아의 개념은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에는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독립된 실체가 없다고 했을 때 물질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에서는 미시적인 세계도 있을 것이고 거시적인 세계도 있을 것이다. 미시적인 세계에서 물질은 그 물질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최소 단위인 분자가 있다. 그 분자 알갱이를 더 나누어 보면 원자가 있다. 원자를 더욱 더 쪼개면 쿼크라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입자가 있다. 지금은 쿼크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입증할 수 있는 힉스입자까지 설명되고 있다. 신의 입자라고 하는 것이 바로 힉스입자이다.

여기 물이 있다. 물은 어떤 원자로 이루어졌는지 보면 수소원자 2개와 산소원자 1개로 이루어진 ‘H2O’이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했는데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연결 되어 물이 된다. 그럼 이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리면 수소하고 산소가 없어질까?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물은 없어진다. 분명하게 산소와 수소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데 물은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니까 없어진 것이다.

여기서 부처님께서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짐으로써 저것이 없어진다’는 생멸의 원리가 설명된다. 이 생멸의 원리와 생멸의 구조는 6근·12처·18계 연기를 공부할 때 구체적으로 나온다. 생은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 관계가 끊어져버리면  산소와 수소가 그대로 있어도 물은 없어져버린다. 이것이 바로 멸이다.
멸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져 단절된 상태이다. 물이 없어졌다고 해서 수소와 산소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물질세계의 미세한 입자에서 무아의 관계를 살펴보니 독립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독립되었을 때는 멸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우주에 모든 것은 연관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연관되어 존재할 때는 물이 그냥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만 관계가 끊어져 버리면 물이라는 것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우주에서 무아의 인식
우주의 거시적인 세계를 살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있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예전에는 지구가 이 우주의 가장 중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지구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태양계 주위를 돌고 있는 조그마한 덩어리에 불과하다. 태양계가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했는데 천체망원경으로 살펴보니 태양계라 하는 것도 은하계의 구석에서 돌고 있는 한 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에서 볼 때 태양이라는 것도 하나의 입자밖에 되지 않는다. 태양계와 같은 것들이 이 은하계 속에는 약 1000억 개가 있다.

현재까지 천체 망원경으로 인식한 우주에는 이 은하계와 같은 것들이 약 1000억 개 가량 존재한다고 한다. 무아와 무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현대 용어로 바꾸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아와 무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
이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 존재로 있다 하면 시간이라는 것은 느낄 수 없다. 공간의 움직임이 시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것이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동쪽 하늘을 보면 해가 떠오른다. 또 저녁에 서쪽을 보면 해가 진다. 수만 년이 지나도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내가 만 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항상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질 것이다. 어마어마한 우주가 항상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인식하면 이것으로부터 시간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시간이라는 개념도 우리가 이해하고 우리가 인식하는 것 속에서 시간이며 우주 속에서 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

지구에서 북극성을 바라본다고 하자. 빛의 속도는 1초에 30만km를 달린다. 북극성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오는데 700년이 걸린다. 우주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대 속도가 빛의 속도이다. 30만km로 달리는 빛이 700년을 달려야 우리에게 도달한다. 북극성은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구와 북극성의 중간 400광년 위치에서 임의의 사람이 보고 있다고 가정하자. 오늘이 2019년 2월 25일 저녁 7시이다. 지금 저 밤하늘에 북극성이 폭발했다. 우리 지구에서 볼 때 이 북극성은 2019년 2월25일 7시에 폭발했지만 실질적으로 북극성은 700년 전에 폭발한 것이다. 북극성에서 볼 때는 700년 전인 1319년 2월 25일 7시에 폭발한 것이다. 중간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북극성을 쳐다보았을 때는 1719년 2월 25일 7시에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주에서 시간을 인식할 때 절대적인 시간은 없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도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상대성의 개념은 무아와 무상을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한 방법이 된다. 우리는 물질계를 이야기 하면서 어떻게 무아를 이해를 할 것인가? 하나의 물 분자를 생각해보더라도 연관되어 있어서 이 연관이 끊어지면 물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

공간이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물질들이 놓여있는 집합체가 모여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공간을 잘 이해하면 무아를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뉴턴의 만유인력을 생각해보자. 하나가 움직이면 그 힘이 다른 곳에 끝없이 미친다. 모든 물체는 다 연관되어 힘 속에서 함께 놓여 있다. 또 하나가 힘을 내면 다른 것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뉴턴이 밝혔듯이 바로 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힘이 작용하고 있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 정신세계도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인식함으로써 무아라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내 속에 있는 본질적인 부분을 이해함으로써 자비 광명이 쏟아지고 그 자비 광명을 인식하면 열반적정이 된다. 이제까지의 설명으로 무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공간과 시간은 하나이며 한 점의 확산이 공간을 이루고 이 움직임을 시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원래 시공간은 하나인 것이다. 이것이 물들기 전의 성품을 본래성품이라 하며, 청정이라 한다. 청정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가 청정법신이다. 그래서 본래성품은 일심이며, 청정이며, 빛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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