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세 번째 워밍업

본격적 내면 검색의 시작
각자 삶의 가치를 주제로
잔잔한 질문 던지며 사유
내면의 언어를 풀어내보자

세 번째 워밍업은 내 몸과 마음의 안쪽을 저인망처럼 훑어 올리는 글쓰기이다. 나는 세 번째 워밍업 주제들을 만들기 위해 죽마고우를 위시하여 긴밀한 인연 18명의 남녀에게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의 요지는 이렇다.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주제 다섯 가지만 순위별로 적어서 답신해 주시면 고맙겠소. 1순위 사랑, 2순위 돈, 3순위 명예이런 방식으로 말이오. 물론 순서나 주제는 그대 마음대로 하시구려.”

24시간 안에 그들로부터 답신이 당도했다. 그중에는 이 질문 덕분에 내가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 사유하는 기회를 가졌다네라는 내용도 있었다. 18명 중 총 16명에게서 답변이 왔다. 2명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더 생각해볼게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나로서는 그런 내용마저도 귀중한 내면 뉴스였다. 고민 끝에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중년 남성의 얼굴을 떠올려보라.

나는 그들의 답신을 토대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주제부터 순서대로 정리했다. ‘세번째 워밍업은 이런 과정을 거쳐 순위가 정해졌다. 내 인연들이 성의껏 보내온 내용에 의하면, 삶의 1순위는 이었고 2위는 사랑()’, 3위는 인연이었다. ‘죽음이나 신념, 가치관18명 중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다. 직권으로 죽음’ ‘신념, 가치관이라는 주제를 투입했다. 그리하여, 글쓰기명상 창안자의 직권 상정 2가지를 포함하여 총 9개의 주제가 세번째 워밍업의 범주가 되었다. 그 주제를 중심으로 부속 질문들을 배치했다.

16명의 생각을 일반화하는 건 위험하다. 같은 논리로, 1순위 ’, 2순위 사랑’, 3순위 인연이라는 것을 보편적 순서로 간주한다면 이 또한 문제 있다. 나의 지인들이 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올렸을 때 나는 웬일인지 당혹스러웠다. 혐오와 배반감 같은 감정이 내 안에서 얼비치기도 했다. 돈과 당혹과 혐오와 배반감. 이것이 혹시 돈에 대한 내 무의식적 관념 아닐까. 아무튼, 내 삶의 중요도는 친구들이 보내온 순서와는 다르다. 당신은 나와 다를지 모르겠다. 그렇다. 순서는 그저 순서일 뿐이다.

, 사랑, 인연 등 <워밍업-3>의 주제와 세부 질문 따라 쓱쓱 응답하다보면 무심결에 내면이 드러난다. 당신의 깊숙한 무의식이 홀연히 등장하기도 한다. 얼씨구, 이게 뭐지? 이게 내 마음? 라이터 불 켜다가 눈썹 태운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걸으면서 연인 손 잡는다는 게 웬 아저씨 손 잡은 것처럼 에그머니나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하지만 당신의 어떠한 응답이든 흐르는 강물 따라 사라지는 거품 같은 한 생각일 뿐. 그러니 손 풀고 가벼이 써 가보자.

생애 내면검색 - (물질)

1. 나는 돈이 얼마 정도 있을 때 풍족하다고 느끼지?

2. 나에게 돈이 넘치게 풍족하다면, 구체적인 예상 사용처는?

3. 얼마가 됐든, 나에게 가장 돈이 많았던 시절의 주요 정서나 생각은?

4. 돈이 가장 궁핍했던 시절의 주요 정서나 생각은?

5. 내 인생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율은 ( )% 정도이다.

6. 내 인생에서 돈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 )이다.

7. 지금 내가 돈하고 대화 한다면?

8. 아무리 많아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생애 내면검색 - 사랑()

9. 나에게 이성간의 사랑은 대체로 어떤 순간부터 시작됐지?

10. 이성간에 우정이 유지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뭐지?

11. 사랑 없는 섹스나, 섹스 없는 사랑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본다면?

12. 나의 성욕을 촉발시키는 감각, 감정, 생각, 기억, 분위기, 이미지 등은?

13. 스킨십 할 때, 내가 강하게 애착하는 감각, 감정, 기억, 생각 등은 뭐지?

14. 지금의 내 삶에서 사랑이나 섹스의 중요도는 ( )% 정도다.

15. 내가 사랑이라는 추상적 현상에게 길든 짧든 한마디 한다면?

16. 이성간의 사랑에 대해 나의 생각을 마음껏 풀어본다면?

생애 내면검색 - 인연(동료, 친구, 도반)

17. 내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의 말, 몸짓, 표정, 음색, 체취, 옷차림은?

18.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의 말, 몸짓, 표정, 음색, 체취, 옷차림은?

19. 상대와 친근해졌을 때 주로 내가 잘 하는 말이나 태도는?

20. 늘 한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과 불편해졌을 때 내가 취했던 태도나 속마음은?

21. 나의 험담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주로 취했던 태도나 속마음은?

22. 감정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사람에게 지금 내 감정을 마음껏 표현한다면?

당신은 위 3가지 주제를 만나 글춤을 췄다. 그렇다. 그냥 막춤 추듯 적으면 된다. 생각이 나지 않으면 그냥, ‘생각은 안 나고 짜증만 난다라고 써도 좋다. 이런 가벼운 응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다. 뭔가 근사한 글발을 생산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관념을 벗어던지는 힘, 말이다. 나의 내면을 알몸 그대로 백지 위에 드러낼 수 있는 뻔뻔함 혹은 대범함을 획득한다. 누가 볼 것도 아닌 글이다. 당장에 찢거나 태워질, 참으로 수명 짧은 내면 소식이다. 그러므로 다소 무책임해도 좋다. 그냥 깊은 숨 내쉬듯 후우하면서 적어보라.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페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1986, 제자 50여 명을 실험군과 통제군으로 나눠서 하루 15분씩 나흘간 글쓰기 실험을 한다. 비밀보장을 전제로 한 이 실험은 두 집단이 추후에 질환 등으로 병원에 갈 확률을 도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실험군에게 글쓰기를 통해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 드러내기를 주문했다. 통제군에게는 일기나 메모 같은 일상적이고 피상적인 글을 쓰도록 했다. 실험 후 어느 일정 기간이 지나자 페니베이커는 두 집단의 병원 출입을 추적 조사했다. 소위, 추후 실험이다. 결과는 실험군이 통제군에 비해서 신경성 질환 등으로 병원에 갈 확률이 43%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기나 편지글 등 일상적인 글쓰기에 비해 자기만의 비밀이나 상처를 드러낸 사람의 치료효과가 그만큼 높았다는 것이다.

내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 소모임은 최근 들어 은근히 굳어져가는 규칙이 하나 있다. 그날 모임에서 말수가 가장 많았던 사람이 밥값 일체를 쏘는! 아내에게서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딱, 감이 왔다. 적지 않은 밥값을 기꺼이 지불하는 동창의 마음이 짐작됐기 때문이다. 세상 천지에 누가 그의 생각과 감정들을 이렇게 맛있게 소화시켜줄 것인가. 그날의 밥을 쏘는동창은 죽마고우들의 성원에 힘입어 가슴에 맺힌 온갖 감정이나 생각들을 마음껏 풀어냈을 터였다. 그 시초는 중국에서 돈깨나 만져본 사업가 친구가 오늘은 나 혼자 떠들어댔으니 내가 쏜다!” 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시부모와의 마찰, 자녀 문제 등, 상대적으로 과격하고 열렬히 떠들어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스스로 밥을 사게 된 것이다. 이때 친구들의 역할은? 그저 수학시간처럼 멍 때리고 있으면 밥값을 한 게 아니다. 한일전 축구 경기처럼 광적인 응원과 추임새로 친구 가슴에 맺힌 온갖 감정과 생각의 쓰레기들을 소각시켜주어야 한다.

집단 치료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일까. 영화 <아바타>에서 죽음에 이른 그레이스 박사를 회생시키기 위해 나비족들이 손에 손잡고 대지의 신에게 흐느끼며 기도하는 노래를 기억하는가. 그런 장면이 영화에만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식당에 가서 유심히 살펴보라. 중년을 넘어선 남녀가 시공을 초월하여 초등학생 같은 표정으로 집단치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치료적 발설의 실행 프로그램으로 진입하고 있다. 드러내면 치료된다.

우리는 세 번째 워밍업에서 돈과 사랑과 인연의 소소한 측면을 툭툭, 가벼운 잽에 가격당하는 챔피언처럼 점검해보았다. 어떤가. 맞아볼만하지 않은가. 이런 <워밍업>을 통해 나만의 사연이 저 깊은 곳에서 봄날의 배암처럼 또아리를 풀고 반응해온다면, 글쓰기명상 워밍업은 나름 내용 있는 몸풀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실로 말하면, 우리는 위와 같은 질문에 별로 노출돼 본 적이 없다. 누가 물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질문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 삶의 중요도에서는 1, 2, 3 등일 수 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가벼운 잽을 계속 더 맞아보자. 혼곤한 잠에 빠진 나의 영혼이 푸른 정맥을 꿈틀거리며 각성의 머리통을 곤두세울 때까지 내면의 언어를 풀어보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지금 건강’ ‘(직업)’ ‘가족따위의 점검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생애 내면검색 - 건강

23. 내 생애 가장 건강했던 시기와 그 당시 태도, 언어, 인간관계 등은?

24. 심신의 불건강을 겪었던 상황과 그로인해 얻은 것, 잃은 것은?

25. 좋건 나쁘건 현재 건강상태의 큰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은?

26. 향후 건강을 잃었을 때 취하고 싶은 태도나 원하는 조건은?

27. 나의 건강을 유지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구체적으로)?

28. 내가 건강할 때 주로 취하는 태도나 말, 행동, 습관적 모습은?

29. 심신이 불건강할 때 주로 취하는 태도나 말, 행동, 습관적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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