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 백흥암 선원 동안거 현장

영천 은해사 산내암자인 백흥암 심검당에서 좌선에 든 비구니스님들.

이창재 감독의 다큐영화 길 위에서로 대중에 알려진 영천 은해사 산내암자 백흥암. 1년 중 초파일을 제외하고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좀처럼 들어가 볼 수 없는 백흥암이 동안거 해제를 앞두고 잠시 산문을 열었다. 해제를 하루 앞둔 218, 백흥암 선원의 정진 현장을 살펴봤다.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869)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조선 명종 1(1546) 중창되면서 천교화상이 백흥암으로 사찰명을 바꿨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백흥암의 백미는 바로 극락전과 수미단. 극락전은 조선 인조 21(1643) 건립돼 수차례 중수했다. 극락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각에 단청이 없어 고색창연한 멋을 자랑한다. 극락전 내부 단청은 그 색이 바래 절로 긴 역사를 실감케 한다.

백흥암 심검당에서 정진 중인 스님들.

수미단은 극락전 내에 수미산 형태의 단을 쌓아 그 위에 불상을 봉안한 대좌다. 상대·중대·하대 3단으로 구성된 수미단에는 용뿐만 아니라 각종 동물 등을 조각해 극락전보다 16년 앞선 1968년 보물 제486호로 지정됐다.

이런 백흥암에는 비구니선원이 안거철마다 운영된다. 선원장 영운 스님의 지도 아래 화두를 타파하고자 운수납자들이 용맹정진한다. 매 안거 때마다 20명 안팎의 수좌들이 방부를 들이는데 이번 동안거에는 13명의 수좌가 선원을 찾았다.

백흥암 선원에 방부를 들인 수좌들은 안거기간 동안 지혜의 칼로 번뇌를 잘라낸다는 뜻의 심검당(尋劍堂)’에서 하루 12시간 동안 화두 참구를 한다. 수좌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도량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2004년부터 백흥암에서 주석해온 선원장 영운 스님은 백흥암은 대중에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유명세를 얻은 것 같다면서도 많은 전각들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바람소리, 낙엽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어우러져 환희심을 느낄 수 있는 게 백흥암 선원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이어 사회에서 종교의 위기라는 말을 하지만 그렇게 보지 않는다. 2000여 수좌들이 전국 선원 곳곳에서 수행정진하는 기운이 한국불교를 살리고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며 각박한 삶으로 힘들어하는 현대인들이 타인을 조금만 배려하려는 마음만 가져도 갈등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남보다 잘나야 하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려 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보물로 지정된 백흥암 극락전은 일반적인 법당과 달리 단청이 없어 고색창연한 멋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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