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덕산시중화 평창 4

[評唱 4]

雪竇一似古人 先拈他兩人語道 “此二老宿 雖善裁長補短 捨重從輕” 且道 甚?處是裁長補短處 什?處是捨重從輕處. 此兩箇分明點檢德山. 雪竇拈來 욇甚?却道 “要見德山 亦未可” 雪竇後面也 只要見德山 這些子也難. 後來人便邪解道 “法眼圓明 只是裁長補短 捨重從輕” 只管作露布 有什?交涉.雪竇拈道 “德山似箇什? 如?外將軍相似 有威有權 ?他有箇劒 當斷不斷時 也不招其亂” 雪竇如此拈也 有錯會者不少.

설두는 마치 고인(古人)과 같아서 먼저 두 사람의 말을 염(拈)해서 말하기를 “이 두 노숙(老宿)이 비록 긴 것을 재단해서 짧은 것을 보완하고, 무거운 것은 버리고 가벼운 것을 따르는 것을 잘했다”고 했다.

자, 말해보라! 어디가 긴 것을 재단해서 짧은 것을 보완한 곳이며, 어디가 무거운 것을 버리고 가벼운 것을 따른 곳인가?

이 두 마디 말은 분명 덕산을 점검한 것인데, 설두는 염하면서 어째서 도리어 “덕산을 보고자 했지만 역시 보지 못했다”고 했는가? 설두가 뒤에서 다만 덕산을 보고자 했다는 이것이 조금 난해하다. (그런데) 뒷사람들이 그릇되게 알고 말하기를 “법안과 원명이 다만 긴 것을 재단해서 짧은 것을 보완하고, 무거운 것을 버리고 가벼운 것을 따랐을 뿐이다”고 단지 주장(露布, 일반에게 널리 퍼뜨림)할 뿐이니,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설두가 염해서 말했다.

“덕산이 어떤 사람과 같은가? 마치 변방의 장군과 같아서 위엄도 있고 권위도 있다. 그에게는 하나의 검이 있는데, 마땅히 끊어야 할 때 끊지 않아도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검이다.”

설두가 이렇게 염(拈)을 했는데도, 역시 잘못 알고 있는 이가 적지 않다.

雪竇前面拈了 ?什?又拈道 “諸人要識新羅僧? 只是撞著露柱底球漢” 諸人且道 什?處是 這僧球處. 人多情解道 “等他德山道 ?是什?處人 當時便以坐具劈面?” 癡人若如此 德山便放?也. 且道 畢竟什?處是這僧球處 師便打.

설두는 앞에서 염(拈)을 마쳤는데, 어째서 또 염해서 말하기를 “대중은 신라 스님을 알고자 하는가? 단지 노주에 부딪친 눈 먼 놈이다”고 했는가? 자, 모두들 말해보라! 어디가 이 스님이 눈 먼 곳인가? 사람들이 많이들 정식(情識)으로 이해해서 말하기를 “저 덕산이 ‘그대는 어디서 온 사람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때 좌구(坐具)를 정면으로 던져버렸어야 했다”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만약 이와 같이 했다면 덕산은 누구라도 바로 놓아줬을 것이다.

자, 말해보라! 필경 어디가 이 스님이 눈 먼 곳인가?

선사가 (선상을) 쳤다.

선문염송집의 덕산시중화에 대한 원오의 송(頌)을 소개하며 1칙을 모두 마친다.

대장장이(大冶)가 금을 불리는데 / 홀연히 번개가 쳐, 봄을 놀라게 하네. / 초목엔 빼어나게 싹이 트고 / 찬란한 빛은 나날이 새롭네./ 털 끝 만큼의 힘도 쓰질 않고 / 천하의 기린을 잡아 / 온전한 위엄으로 죽이고 살리기를 자재하니,/ 천고에 눈부시게 빛나 달(氷輪, 달의 異名)과 같네.

말이 두 개의 말뚝이 되어도 말에 안목(眼)은 살아있고 / 용두사미가 되었지만, 손가락으로 손가락을 깨우치네. / 기둥에 부딪친 눈 먼 납승, / 목구멍이 막혀 숨도 내쉬지 못하네. / 머뭇거리며 찾으면 만산(萬山, 첩첩이 둘러싸인 산) 만큼이나 벌어지니, / 웃고 우는 혀끝이 삼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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