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공양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마하시 선원의 스님들이 탁발을 하고 있다. 시주자들은 도로변에 대기하고 있다가 각자 준비해 온 음식물 등을 스님들께 올린다. 미하시 선원에서는 이 같은 탁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찾은 수행처는 미얀마 양곤의 마하시 선원이다. 마하시 선원은 외국인에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선원이다. 이 선원 이후에 많은 선원들이 연달아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수행처로 발전하였다. 이 선원은 마하시 스님을 초대 선원장으로 1949년에 개원하였다. 양곤의 도심지에 계단(戒壇) 건물, 법당과 설법전, 출재가, 남녀와 외국인 구분의 여러 선방과 숙소, 공양간과 기념관 등이 도량 곳곳에 산재해 있다. 현재는 약 500여명 대중이라지만 많게는 약 3천여 명의 수행자가 상주한다. 

미얀마 도착 후 처음 찾은 선원이다. 이 선원이 미얀마의 관문에 위치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미얀마 수행처의 대표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미얀마인은 물론 전세계인이 가장 많이 거쳐 간 미얀마 수행처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얀마 각지는 물론 거의 전세계에 분원이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도 가장 먼저 마하시 수행처의 위빠사나가 소개됐다. 미얀마 선원에 오래 머물며 공부하는 한국의 스님이 알려 준 바에 의하면 마하시, 쒜오민, 빠옥, 모곡, 빤디따라마, 참메 등의 선원이 중요한 수행처라고 가르쳐줬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가장 많이 찾는 수행처라 한다.

언젠가 점심 공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툰툰(TunTun)을 만났다. 그는 미얀마인으로 한국에 체류한 경험으로 한국말을 잘한다. 한국 수행자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차량을 운행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 수행처 순위를 물어보았다.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빠옥총림이라고 했다. 다음이 쒜오민, 빤디따라마 그리고 현재 이곳의 마하시라고 한다.

이외에도 참메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그는 이러한 수행처에 머물렀던 한국의 여러 스님들과 재가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는 이름이 많다. 어떤 이는 한 수행처에 오래 머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여러 수행처를 두루두루 거치며 공부한다고 한다. 나는 여러 이유에서 빠옥을 마지막 거쳐야 할 수행처로 계획하고 왔지만 빠옥에 많이 가고 마하시가 네 번째라는 이야기는 의외였다.

마하시 선원은 지난 2011년 12월 14일에 입방해 이듬해 1월 22일에 빠옥총림으로 떠나기까지 약 49일 머문 도량이다. 오후에 도착하여 바로 자띨라(Jatila) 선원장 스님께 방부를 들였다. 삼배를 하고 미얀마식으로 앉아 스님의 지도를 받았다. 스님은 먼저 삼귀의와 오계 그리고 팔재계를 빠알리로 선창하시며 따라 낭송하게 하였다. 그리고 의미를 설명해 주시며 이어서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지도가 이어졌다.

다시 시봉 드는 재가자를 따라 선원 사무실로 안내되어 외국인 숙소인 4호실을 배정받았다. 1인 1실로 화장실에 모기장 침대와 책상과 탁자가 비치되어 있다. 이렇게 독방을 배정받는 것은 의외였다.

선원의 하루 일과표는 수행처 건물의 입구와 로비 등 여러 곳에 게시되어 있다. 일과표에 따라 일상이 반복적으로 시작되고 종료된다. 새벽 3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의 좌선과 경행, 그리고 5시 아침 공양 후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좌선과 경행을 한다. 다시 12시부터 좌선과 경행을 반복하다 밤 9시가 되면 선방의 공식 일정은 모두 종료된다.

외국인 선방에 감독 스님과 관리 스님이 있지만 선방에서 같이 좌선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감독과 관리만 한다. 선원의 규정을 어기면 시정할 수 있도록 알려주거나 선방에 지각할 때 찾아와 문을 두드려 주기도 한다. 이러한 생활이 매일 반복된다. 또한 일주일 단위로 정기 수행점검일은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3시 30분에 있다. 정기법회는 일요일 오후 3시 30분에 행해진다. 또한 선원 청소일은 월요일 아침공양 이후로 모두가 선방 곳곳을 쓸고 닦는다.

이곳 외국인 남성 선방은 대략 15명 정도로 유지됐다. 방글라데시 스님, 말레이시아 스님과 싱가포르 스님, 한국 스님 4명, 일본 스님이었다. 가끔 유럽인 스님도 오갔다. 한국의 재가자는 3~4명 정도였다. 여성 선방에는 한국인이 약 6~7명으로 비구니 스님과 재가자가 거의 반반이었다.

새벽 3시가 되면 도량의 곳곳에서 기상 신호의 소리가 들린다. 바로 간단한 세수만 하고 2층의 선방에 오른다. 입실과 동시에 부처님께 삼배만 드리고 바로 정해진 자신의 좌복에 앉는다. 예불은 드리지 않는다. 좌복은 천장에 매달린 모기장 안에 준비되어 있다. 미얀마는 어느 선원이나 모기장이 주어진다. 불살생 지계와 모기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출가와 재가가 함께 앉고 일어서 경행을 한다. 경행처는 선방과 연결되어 바깥에 설치되어 있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좌선과 함께 경행을 닦을 것을 자주 말씀하신다. 인도불교 수행전통에
서는 평지에 20보에서 45보 이내로 반복하며 도는 방향도 정해져 내려온다. 이는 우리나라 선방과 비교되는 점이 있다.

마하시도 독립된 경행처를 설치하고 있음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이는 현재에도 인도 불교 유적이나 문헌에도 증명된다. 인도 유학 시 미얀마 스님들은 강의 중간 중간에도 일정한 장소를 잡아 놓고 경행을 한다. 마치 동물원의 사자가 우리에서 반복적으로 왔다갔다하는 모습처럼 여겨졌다. 이는 나 또한 습관이 되었다. 

이처럼 마하시는 좌선과 경행이 각각 1시간씩 반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어떤 요기(수행자)는 경행하지 않고 좌선을 계속하거나 아니면 어떤 요기는 경행을 더 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경행보다 좌선하는 데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하였다.

마하시 선원의 특징은 경행의 시간이 다른 선원에 비해 많이 배정되어 있다. 경행처가 다른 선원과 달리 독립공간으로 따로 설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경행처에서 또는 도량에서 많은 이들이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마음속으로 ‘오른발, 왼발’의 동작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면서 걷는다. 이러한 경행의 모습과 함께 일거수일투족이 아주 진중하다.

공양을 위해 줄을 서는 데에도 아주 천천히 동작을 알아차리며 공양간을 향해 움직인다. 공양간 문턱을 넘는 데도 식탁에 앉는 데도 숟가락을 사용하는 데도 천천히 알아차리며 움직인다. 좌선 시에는 주로 호흡에 따른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도록 하는 것이 마하시 공부의 특징이다. 마찬가지로 선방을 나와 침대에 들 때까지 그리고 취침 후 기상부터 바로 동작에서 주의를 놓치지 않고 계속 알아차리는 것을 훈련시킨다.

미얀마 수행처는 어느 곳이나 불교 전통에 따라 오후 불식한다. 저녁을 먹지 않고 대신 오후 5시 즈음에 주스 등을 함께 마실 수 있도록 제공된다. 이 때문에 공복을 적응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고통이 따른다. 거의 한 달가량 오후가 되면 공복에 시달렸다. 계속되는 공복감에 집중은 안 되고 오로지 먹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침대에 들며 내일 일어나면 먹을 수 있다는 기대로 잠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왜 수행 중에 많이 먹지 못하게 하는지, 그 이유를 차츰 알게 되었다. 배부르면 졸음도 문제일 수 있지만 세밀한 포착 능력이 무디어진다. 배고프면 무척이나 예민해져 우리의 심신 현상을 아주 세밀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된다. 먹는 것으로 잠에 취하거나 떨어지지도 않는다. 좌선이 잘 되면 공복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진대사를 최소화한 가운데 오랫동안 먹지 않고 잘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사유 활동을 하거나 많이 움직이면 공복감에 무척이나 힘들고 괴롭다. 특히 틈틈이 메모하는 습관이 나의 공복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부처님이 왜 수행 중에 오후 불식하도록 하였는지 이제야 몸으로 알게 되었다. 적게 먹고 적게 자면 심신의 현상에 대한 맑고 세밀한 안목이 생기고 성적인 본능으로부터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가 지속된다.

선방에 머무르며 매우 인상적인 불교전통 가운데 하나는 공양과 탁발문화였다. 직접 참여하여 체험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큰 공부였다. 공양청에서 공양은 말 그대로 대중공양이었다. 선원장 스님은 물론 선원의 모든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들었다. 국내에서는 청화 스님 주석 시의 태안사가 생각났다. 음식은 우리나라와 달리 생선과 육류도 올라왔다. 이러한 음식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알게 된 것은 탁발을 참관해 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침 6시 이전에 공양을 마치면 스님들은 곧바로 가사를 수하고 도량의 정중앙에 일렬로 선다. 발우를 가슴에 안은 채 맨발이다. 정면에 고정된 시선과 침묵으로 단정하게 서면 감독 스님이 한 스님 한 스님의 위의를 점검한다. 탁발 행렬은 합장정례로 독경 후 일주문을 지나 민가로 내려간다. 어찌나 장중한지 처음에는 탁발 행렬의 뒤쪽에서 조심스럽게 따라다니다 언제부터인가는 중간과 앞을 다니면서 탁발의 전모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시주자들은 도로변에 대기하고 있다가 각자 준비해 온 음식물 등을 스님들께 차례차례 공손하게 올린다. 시주자 또한 신발을 벗고 주걱으로 쌀밥을 한 스님 한 스님께 정성스럽게 배분한다. 어떤 이는 보시 후 스님들이 떠날 때까지 합장한 채로 있거나 또는 땅바닥에서 삼배를 올리기도 한다.

스님들의 발우에는 주로 쌀밥을 올리지만 반찬과 찌개류는 정인(淨人)이 뒤따르며 수거한다. 이렇게 탁발로 수거된 음식물은 점심공양으로 선원의 수행자나 정인들에게 평등하게 재분배된다.
그리고 보시자들 또한 이를 안다. 왜냐하면, 탁발하는 중간 중간에 사찰의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가 밥과 과일 또는 다른 보시물을 큰 용기로 모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양물은 대부분 그 날 소비할 수 있는 조리된 음식과 간단한 생필품이다. 보시물을 축적할 수 없도록 하는 계율 때문이다. 또한 스님들의 편의를 위해 보시물을 한꺼번에 선원으로 배달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모든 스님에게 똑같이 차례차례 배분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그리고 여러 스님에 보시하는 것으로 공덕을 두루 짓는다. 그래서 스님들도 쌀밥 한 덩이씩 여러 보시자에게 받지 한 사람으로부터 한꺼번에 모두 받지 않는다. 또한 돈을 바로 올리는 경우도 드물게 볼 수 있는데 곧바로 따르는 정인이 수거해 버린다. 원래 계율 상 스님들이 직접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돈은 따로 사찰운영에 사용된다.

마하시 선원에서 선방과 함께 대중공양과 탁발이라는 살아있는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무척 기뻤다. 무엇보다도 미얀마 서민의 피와 땀이 나의 일용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러한 일용식이 스님의 탁발을 통해 나에게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은 한층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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