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머문 곳, 암자
① 경남 산청 정취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저마다 각자의 ‘자리’가 있다. 꽃들이 피고 져온 자리, 새들이 살아온 자리, 숲이 지켜온 자리, 중생이 걸어온 자리, 깨달음으로 가는 불보살의 자리 등 그 자리는 자리마다 불가설불가설전의 시간과 무궁무진의 까닭으로 있어온 인과의 설법이다. 그 자리 하나하나에 깃든 시간과 까닭의 끝에 우리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니 옮기는 자리마다 더욱 깊은 시간과 더욱 선명한 까닭 속에 있어야 하리라. 그 뜻이 쉽지 않음으로 우리는 길과 길 사이에 불전을 세우고, 산기슭마다 불보살을 모셔왔다. 그 길과 산을 잇는 불보살의 자리를 찾아 쉽지 않은 뜻에 다가가 본다.

해발 450m 벼랑 끝 암자
산청9경 중 8경 정취암 조망
선재가 만난 29번째 선지식
정취보살 모신 관음성지

산 밑으로 여명이 번져오고 이내 능선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산허리를 돌자 멀리 산기슭에 암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앙상해진 숲이 겨울을 나고 있고, 계절을 타지 않는 바위 밑에 전각들이 모여 있다. 암자는 나무를 베지 않고 터를 잡았다. 바위가 내어준 벼랑 끝에 새처럼 앉아있다. 경상남도 산청의 명산이자 진산인 대성산. 산은 오래 전, 나무를 기르지 않는 작은 터에 암자 하나를 들였다. 해발 450m, 정취암이다.

산청8경, 정취암에서 비경을 보다
작은 암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일주문이 따로 없다. 암자의 끄트머리가 보이는 자리에서 합장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산문의 경계는 세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는 경계인 것 같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에 따라 마음가짐이 다르듯이 산문으로 들어서는 순간은 작은 의식이 아닐 수 없다.
겨울바람에 실려 온 풍경소리가 객을 맞아준다. 풍경소리도 겨울을 나고 있다. 멀리 가지 못했다. 작은 마당을 맴돌다 이내 바람이 되었다. 풍경소리가 사라진 자리로 산을 오르면서 보았던 전각들이 커다랗게 다가온다. 벼랑 끝에 앉은 전각은 이제 파란 하늘에 안겨 있다. 전각 덕분에 파란 하늘 곁에 서본다. 발밑으로 지나온 길과 지나온 풍경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것들을 바라보는 일은 사라진 시간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다. 그 기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이며, 그 기회들로 삶은 고개를 숙인다. 정취암에서 내려다보는 산청의 풍경은 산청9경 중 제8경으로 꼽히는 비경이다. 황매산의 능선들도 보이고 바람의 모습까지도 보이는 듯하다. 모든 것들이 다 보이는 듯했지만 산 아래서 힘겨웠던 것들은 산 위에서 보이지 않았다. 힘겨웠던 이름도 힘겨웠던 기억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비경’일까. 그래서 암자가 있는 것일까. 하기야 어디 정취암 뿐일까. 불전을 뒤로 하고 바라보는 세상은 모두가 비경이리라. 아침을 기다렸던 산새들이 서로를 부르며 숲을 깨운다. 멀리 줄을 지어 늘어선 능선들의 끝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새들은 더욱 요란스럽게 서로를 부르고 도량의 전각들이 선명해진다.

정취보살의 관음도량, 극락으로 가는 길
정취암은 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이다. 정취암을 품고 있는 대성산은 일명 둔철산이라고도 한다. 산이 크고 넓어 곳곳에 사찰이 흩어져 있다. 대성산 정상 근처 기암절벽에 자리한 정취암은 그 모습이 아찔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그 모습으로 정취암은 ‘절벽 위에 핀 연꽃’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큰법당인 원통보전이 아침 햇살을 받는다. 원통보전에는 관음보살을 모셨는데, 정취보살이다. 정취암은 한국 사찰 중에서는 유일하게 정취보살을 모신 관음성지다.

정취보살은 관세음보살의 화현이라고도 하고,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선재동자가 구법수행 중에 만난 53선지식 중 29번째 선지식이다. 〈화엄경〉을 보면 정취보살은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선재가 찾아가기도 전에 직접 관자재보살이 계신 곳에 나타나는데, 도착하자마자 세상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몸에서 엄청난 광명을 놓으니 해와 달과 별, 번개의 빛이 무색하다. 정취보살의 광명 앞에 그 어떤 광명도 빛을 내지 못한다. 정취보살의 광명은 모두 육도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비추어 그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비장하면서도 장엄한 광명이다. 그 모습을 바라본 선재는 정취보살에게 보살도의 행과 보살의 길을 묻는다. 정취보살이 법을 전한다.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는데, 그 이름이 넓은 문 빠른 행의 해탈(보문속질행해탈ㆍ普門速疾行解脫)이다. 이것은 오직 선지식과 부처님의 가피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동방 묘장세계의 보승생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왔으며, 많은 부처님을 공양하고 많은 중생들을 구제해왔다.”

그래서 정취보살을 모신 정취암은 극락으로 가는 길목 중에서도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원통보전에 들어서면 선재동자에게 법을 전하고 있는 50cm 남짓한 키의 정취보살상을 만난다. 극락을 품은 보살의 눈을 바라보며 극락을 꿈꿔본다.

현재 원통보전에 모신 정취암목조관음보살(경남 문화재자료 314호)은 조선 효종 5년(1654)에 정취암의 중창조인 봉성당 치헌선사가 재현해 새로 조성한 것이다. 정취암의 정취보살상은 신라의 범일 스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스님은 당나라에서 만난 신라 출신 사미와의 인연으로 낙산에 불전을 짓고 정취보살상을 모셨다. 백여 년이 흐른 후 몽고가 침략하여 정취보살상을 양주성으로 옮겼고, 다시 기림사의 각유대사가 어부(御府, 궁의 창고)에 옮겨 모셨다. 그리고 고려 공민왕 3년(1354), 화경거사와 경신거사가 정취암을 중수한 후 궁궐에 모셨던 정취보살상을 다시 모셔왔다. 이후 전각에 화재가 있어 보살상이 소실됐고 지금의 보살상을 새로 모신 것이다.

연꽃무늬로 장식된 대좌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상은 불신(佛身)과 엎어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낮은 대조가 하나의 목재로 조성됐다. 자세는 등을 세우고 머리 부분을 약간 앞으로 내민 모습에 가부좌를 하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은 중앙에 큰 화불(化佛)과 앞뒤로 불꽃무늬 장식이 달려 있다. 후대에 따로 만들어 부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얼굴은 네모반듯하며 턱이 둥근 형태이고, 가늘고 긴 눈, 완만한 콧등, 입술, 양 끝에 양감을 주어 미소를 머금은 모습 등이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비교적 짧은 목에는 삼도가 엷게 그려져 있고, 옷 주름선은 대체로 간략하다. 반가부좌하여 드러난 오른발 밑으로 보이는 군의자락을 종아리와 평행하게 드리운 것이 특징이다.

원통보전 뒤로 돌계단을 오르면 응진전과 산신각이 나온다. 정취암 산신각의 산신탱화(경남 문화재자료 243호)는 호랑이를 타고 행차하는 산신을 협시동자가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 순조 33년(1833)에 제작됐다. 산신각 밖에 조성되어 있고 전각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응진전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소나무숲이 발길을 붙잡는다. 응진전 처마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소나무 숲을 지나면 정취암을 품고 있는 바위 끝에 닿는다. 너럭바위에서 잠시 긴 호흡으로 서면 발 아래로 암자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암자와 함께 펼쳐진 사바가 다시 한 번 비경으로 다가온다.

의상의 불사, 고승대덕의 요결처
정취암은 통일신라 신문왕 6년(68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동해에서 아미타부처님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비추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다른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대사가 두 줄기 빛을 좇아 금강산에 원통암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를 세웠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조선 중기의 기록에는 ‘정취사’로 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 사이에 조성된 불화 화기에는 ‘정취암’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의 개혁의지를 실현하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간섭을 극복하려는 개혁세력의 주요 거점이기도 했다.

금강산 못지않게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린 대성산에 그 터를 잡은 정취암은 창건 이래로 많은 고승대덕들의 요결처(了結處)였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고암 스님도 한 때 주석하며 정진했다.

극락을 꿈꾸는 자리
산기슭의 작은 벼랑 끝에서 극락으로 가는 길을 열고 중생을 기다리는 작은 암자. 그 뜻깊은 보살의 도량에 석양이 번져온다. 불가설불가설전의 시간 끝에 다시 찾아온 오늘 하루가 그 설명할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다시 사라져간다. 산새들이 다시 서로를 부르고, 깊었던 시간과 선명했던 세상의 까닭들이 보살의 미소와 함께 내일을 기약한다. 극락으로 가는 길, 정취암에서 극락을 꿈꿔본다.

정취암 가는 길
정취암은 해발 450m 벼랑 끝에 자리하고 있지만 암자 앞까지 도로가 나있어 승용차로 암자까지 갈 수 있다. 산청 IC로 나와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간다. 정취암을 약 2.5km 앞둔 지점에 정취암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그곳에서 약 800m 오르면 정취암으로 갈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산청합동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한다. 노선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인 정취암은 통일신라 신문왕 6년(68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정취암 목조관음보살.
산청8경 정취암 조망.
정취암으로 갈 수 있는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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