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緣’은 ‘맹구우목’과 같은 것
‘佛緣’은 ‘맹구우목’과 같은 것
  • 현불뉴스
  • 승인 2019.02.0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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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맹구우목(盲龜遇木)

‘눈이 먼 거북이가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통나무를 만나다’라는 뜻이다. 한역 〈잡아함경〉 15권에 있는 우화로서 ‘맹구우목공(盲龜遇木孔, 눈먼 거북이가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나다)’ ‘맹구치부목(盲龜令浮木, 눈먼 거북이가 바다에 떠 있는 나무를 만나다)’이라고도 한다.

해저(海底) 깊은 곳에 살고 있는 거북이는 100년 만에 한 번씩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 구멍이 뚫린 통나무를 만나야만 그 속에 머리를 밀어 넣고서 망망대해를 구경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가 있는데, 통나무를 만나지 못 할 때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이 비유는 인간으로서 태어나기가 어렵고(人身難得), 또 설사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부처님 법(法, 가르침)을 만나기가 마치 ‘눈이 먼 거북이가 망망대해에서 통나무를 만나는 것처럼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이 비유에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므로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수행 정진하라는 의미이다. 이것을 한자로는 ‘인생난득(人身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고 하는데, 〈열반경〉 〈화엄경〉 등 많은 경전에 나오며 신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에도 나오고 있어서 비교적 우리에겐 익숙한 사자성어이다.

그런데 100년에 한 번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거북이가 구멍 뚫린 통나무를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눈이 멀쩡한 거북이도 아니고, 앞을 보지 못하는 눈이 먼 거북이(盲龜)의 경우라면 그 가능성은 0%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불교를 만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상징적인 말이다.

불교의 여러 가지 가르침 가운데 팔정도가 있다. ‘팔정도(八正道, 八聖道)’란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여덟 가지 바른 길로서,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을 말한다.

나는 그 가운데 네 가지 곧 정견, 정어, 정업, 정업을 100%가 아닌 50%만 실천해도 그는 사회적 롤모델, 타인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풀이하면 올바른 사고와 견해를 지니는 것(正見), 가짜뉴스, 거짓말, 아부, 폭언, 비방, 불량 댓글 등을 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것(正語), 사기행각이나 도적질, 폭력, 살인 등을 하지 않고 바른 행실을 하는 것(正業), 의식주 등 생활에서 낭비, 사치하지 않고,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사용, 소유하며, 항상 깨끗하게 생활하는 것(正命). 이렇게 네 가지만 실천해도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인기 영합주의에 빠져서 명망은 있으나 인격 미달자가 적지 않다.

팔정도는 언행이나 행동규범의 전범(典範)이다. 따라서 종교적 색채를 떠나서 그 누구라도 실천 철학으로 삼아야 할 규범이라고 본다. 특히 불교도들에게는 더욱 ‘인생의 지침’이 되는 생활철학이다.

불교 경전에는 많은 비유와 우화, 예화가 나온다. 그 대표적인 경전이 〈백유경〉, 〈현우경〉, 〈법화경〉 비유품 등인데,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나 또는 외도들과 논쟁할 때에 직설적인 방법으로 가르치거나 논쟁하기보다는 비유나 우화, 예화 등을 들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설적인 논법보다는 간접적, 비유적인 논법이 타인을 이해, 설득시키고 가르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고 교육적이기 때문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은 딱 한 번뿐이다. 두 번은 불가능하다. 나는 이것을 늘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만일 조물주가 인생을 한 번만 더 살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준다면 후회 없는 아름다운 인생,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무엇 때문에 젊은 날 공부하지 않고 세월을 파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그리고 어학과 통기타를 배우지 않은 것이다. 어울리지 않겠지만 통기타를 가지고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 ‘베사메무초’를 분위기 있게 연주해보고 싶다. 아직도 늦은 건 아니다. 길은 길고, 언제든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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