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밥벌이의 가치

또 다시 ‘문제는 경제다’. ‘먹고사니즘’이 최우선의 화두다. 돈이 안 돌면 집안의 어른은 말발이 안 먹히고 나라의 대통령은 지지도가 떨어진다.

요즘 결혼정보회사 배우자 일등급의 첫 기준은 본인과 부모의 자산이다. 직업의 의미나 가치보다 소득을 더 따지더니 이제는 고단한 밥벌이를 안 해도 되는 부자가 더 좋은 조건이 되었다.

속으로야 어떻든 재물을 탐내면 배금주의라며 은근히 경멸하던 우리가 내놓고 돈을 숭배하고, ‘돈 많이 버세요’가 최고 덕담이 된 결정적인 시점은 아마 IMF(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가 아닐까.

글로벌 시장으로 대한민국의 경제가 편입되면서 평생직장이 사라진 그 시절 이후 보통 사람의 가치관은 확 뒤집어졌다. 돈을 벌지 못하면 사람이든 학교든 기업이든 무능하고 쓸모없는 퇴출 대상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직장인 회의감 느낀 은영씨
삶의 풍족 대신 가치의 빈곤 느껴
일에 대한 가치 찾게 조언

오늘도 밥벌이를 하러 가는 그대

은영은 다이어리 코칭 고객이다. 대기업 계열사인 유통업체 대리로, 주말에도 특근이 잦은 그녀에게는 첫 면담 이후 다이어리를 쓰게 하고 이메일로 코칭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은영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꿈꾸던 외교관 시험을 준비했으나 엄청난 경쟁에 차차 눈높이가 낮아졌다. 기업 공채로 방향을 바꾼 그녀는 졸업을 미루면서 수십 군데에 이력서를 넣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힘겹게 취업에 성공했다.

입사 후 한동안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없을 정도로 일에 시달렸지만, 생활비와 부모님 용돈을 제하고도 저축을 할 수 있고 복지카드와 의료비가 지급되는 대기업 사원의 신분이 안전한 열차를 탄 것처럼 쾌적하고 자부심이 느껴졌다.

차차 일을 더 잘하게 되었고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대리로 승진하면서 더 큰 원룸으로 옮겼고, 연월차 휴가를 모아 1년에 한번은 해외여행을 다닐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5년차로 접어들면서 그녀는 출근 시간마다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 전날 팀장이 지시한 일을 오늘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차 안에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졌다. 단지 월급을 받기 위해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바치는 자신이 밥벌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렇다고 직장을 놓을 수도 없다. 이만큼이라도 누리며 남들 보기에 구차하게 살지 않는 게 어디인가.

“출근길에서부터 클라이언트와 팀원들과 수많은 교신을 하고, 책상에 앉으면 모니터에 숫자를 채워 넣으면서 그날의 목표치와 실적을 확인한다. 업무용 단체 대화방이 여덟 개나 된다. 질문에 답을 하고 그 답을 위해 다른 방으로 가서 질문을 하고 숫자를 옮겨 쓰고 사이사이 팀장의 채근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하고 미팅자료를 조사한다. 종일 사무실 안을 뱅뱅거리다 점심을 후딱 먹어치우고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면 하루가 저문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팀원들과 저녁을 배달시켜 먹으면서 비슷한 종류의 일들을 처리한다. 운이 좋아야 저녁 8시경에 사무실을 벗어나다.”

“회사는 강남에 있고 집은 강동의 서울 끄트머리에 있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퇴근하면 파김치가 된다. 뉴스를 검색하고 드라마나 스포츠 중계를 보다가 잠이 들고 뒷날 허겁지겁 일어나 또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주말에는 밀린 잠을 보충하고 쉬어야 한다. 여가 활동이라야 기껏 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정도다. 쉬는 틈틈이 수 십 개의 질문이 올라오는 대화방에 답을 해야 하고 여차하면 매장으로 나간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일요일 오후부터 슬슬 월요병이 도진다. 결코 즐겁다고 할 수 없는 업무의 반복과 판매실적을 채워야 하는 불안감 속에서 판에 박힌 인사말과 농담을 나누고 팀장에게 깨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들. 이런 일상을 보내려고 십 수 년을 수험서에 파묻혀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세월을 보냈나? 자괴감이 든다.”

 가치 매트릭스의 주요 키워드 30개 

권력, 도전, 탁월성, 리더십, 명성, 모험, 신념,

성공, 전문성, 인정, 균형, 조화, 끈기,

도덕, 신뢰, 정의, 성실, 자비, 책임, 배려,

성실, 아름다움, 독창성, 명랑, 우정, 열정,

부유함, 안정, 용기, 지혜

 

밥벌이는 경제력 이상의 의미가 있어야

“비교적 조건이 나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월급 외에 흥미도 의미도 없다. 전직을 하자고 해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갈 데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경우의 코칭이 가장 까다롭다.

코칭은 변화를 위한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목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하지만, 우울증으로 옮겨가기 쉬운 상황이기도 하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적성에 맞는 업종을 희망했으나 취업전선에서 거듭 실패하다가 겨우 취업에 성공하니 애초의 희망사항은 배부른 투정이 되어버렸다.

꿈을 꾸어야 하는 청소년 시기에 성적에 맞춰 전공과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세대가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두 번째 관문이 취업이다. 경제력이 뭣보다 우선인 사회에서, 경제 독립으로 기본의 자존을 지켜야 하는 이들에게 직업에서 밥벌이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코칭하기는 쉽지 않다.

은영은 인생의 가치라는 단어를 새삼스러워 했다. 적성과 흥미는 탐구해봤으나 자신이 어떤 가치를 소중히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녀는 경제력 이상의 의미를 직업에서 찾지 못하고 있었다.

10여회의 이메일이 오간 끝에 은영에게 두 가지의 미션을 주었다. 코칭 목표를 피코치가 찾지 못할 경우 코치는 개입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 나간다. 힘들게 번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자기 존중과 행복감을 느끼는지 아는 게 지금의 은영에게는 중요하다. 돈을 쓰는 재미를 알아야 돈을 버는 재미가 생기고 버는 과정의 고단함을 기꺼이 참아낼 수 있다.

은영에게 준 미션은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를 찾는 것과, 돈을 그 가치에 맞게 소비하는 방법이었다.

가치 매트릭스 결과 은영의 최우선 가치 3개는 조화, 자비, 책임이었다. 두 번째 미션을 위해 우리는 은영의 가치에 맞는, 돈 쓰기 코칭을 이어나갔다. 자연스럽게 은영의 코칭 목표는 〈인생의 가치에 맞게 돈 쓰는 의미를 느끼기〉가 되었다.

은영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거쳐 자비에 집중했다. 좋은 차를 사고 멋진 여행을 하기 위해 일하는 이상의 큰 가치를 찾고 싶다고 했다. 보다 큰 가치를 추구할 때 삶의 의미를 깊이 느끼게 된다는 사실은 심리학자들도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왔다. 최우선 가치에 자비를 선택하는 은영이 단지 안락한 생활을 위한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이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붓다가 불교정신의 핵심인 자비를 위해 실천하고 가르친 첫 번째 바라밀은 보시였다. 자신만을 위해서는 깨달음이 오지 않으니 타인을 보라는 뜻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깊이 느끼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덧없고 변덕스럽고 만족을 모르는 욕망에 휘둘리고 만다. 자기를 넘어서는 타자를 향한 사랑이 자비의 시작이라면, 소유를 내려놓고 타인에게 나누는 보시는 자비의 실천이며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은영은 자비와 보시의 가치를 이해한 후 실천할 계획을 세웠고, 그 용도로 적금을 새롭게 들었다. 그녀는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직장생활에서 잃어버렸던 주인의식을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금강경〉에는 ‘붓다는 배가 고프면 나가서 걸식을 하고 걸식이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갔다(還至本處)’는 글귀가 있다.

“걸식이 끝나면 거처로 돌아갔다는 이 말은 얼핏 평범하지만 사실은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법문이다. 일은 최소한의 먹고 입을 것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생활의 노예가 되지 말고 내가 있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페이융 〈금강경의 지혜,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물론 붓다의 걸식은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대중에서 보시를 경험하게 하는 수행의 하나지만, 일에서 밥벌이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현대인에게는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잊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커다란 조직에서 작은 존재로 쳇바퀴처럼 일한다고 해도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이어 나간다면 자신의 본래 자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고 실천하기 위해 일을 한다는, 그 자유와 존엄의 느낌으로 우리는 버틸 힘을 갖는다.

깨어 있는 대부분을 시간을 차지하는 일이, 단순한 밥벌이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면 이전과는 다른 일상으로 다가온다. 은영은 다이어리를 계속 쓰고 있으며, 후속 코칭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 부디스트 코칭에 나오는 인물은 사례의 공개에 동의하신 분들이며, 이름은 가명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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