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2. 달마의 선사상과 혜가
[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2. 달마의 선사상과 혜가
  • 정운 스님/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 승인 2019.01.3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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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실천’ 禪사상, 혜가로 이어지다
2조 혜가가 눈오는 날, 달마에게 팔을 잘라 보였음을 의미하는 소림사 경내의 ‘입설정’ 당우.
2조 혜가가 눈오는 날, 달마에게 팔을 잘라 보였음을 의미하는 소림사 경내의 ‘입설정’ 당우.

현대적 감각서 본 달마의 禪
달마가 중국에 들어온 무렵, 승주(480~560)뿐만 아니라 화북의 수행자들은 백골관(白骨觀)이나 부정관(不淨觀) 수행법을 닦았다. 이에 〈속고승전〉의 저자 도선은 ‘보리달마의 선법은 이론적인 반야(般若) 사상에 기초를 두면서도 벽관(壁觀)이라는 실천으로 새로운 경지를 펼쳤기에 대승벽관(大乘壁觀) 공업최고(功業最高)’라고 극찬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달마가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로 받들어지기도 한다. 달마의 선법을 전하는 최고의 문헌은 돈황본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인데, 이를 토대로 보자.  

‘이입사행론’서 달마 사상 종합
보원·수연행, 인욕 수행 의미해
무소구·칭법행은 무집착 실천
일상적 삶에서 실천 방법 제시

#이입(理入) 

“무릇 도에 들어가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으나 그 요문(要門)으로 이입(理入)과 행입(行入[四行]),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첫 번째는 이입이요, 두 번째는 행입이다. 이입이란 경전에 의해서 도(道)의 근본정신을 깨닫고 범부와 성인이 모두가 동일한 진성(眞性)을 가지고 있다고 깊이 믿는 것이다. 다만 객진(客塵[번뇌])으로 뒤덮여 있어 능히 나타나지 못한 것이니, 만약 망(妄)을 버리고 진(眞)으로 돌아가 벽(壁)과 같이 주(住)하여 스스로 마음을 관(觀)하여 자신과 상대가 둘이 아님을 깨달으면 범부와 성인이 하나로 평등해진다. 이에 여여부동(如如不動)한 경지에 머물러 언교를 따르지 않으면서 적연무위(寂然無爲)함을 이입이라고 한다.”

경전에 의해 도의 대본을 파악한다고 하여 자교오종(藉敎悟宗)이라고 본다. 즉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나 강을 건넌 뒤에 뗏목처럼 경전의 이론을 의지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확신을 가지라는 뜻이다. 경전에 의해 일체중생이 부처와 똑같은 본성을 갖고 있음을 깊이 믿는다는 것은 이론이 아닌 곧 실천인데, 이 실천이 곧 벽관(壁觀)이다. 한 마디로 대승경전에는 모든 중생이 본래성불ㆍ본각(本覺)임을 설하고 있으므로, 자신이 깨달아있는 부처임을 굳게 확신해야 한다. 이입이란 안심(安心)이며 안심이란 벽관이라고 할 수 있다. 벽관은 번뇌나 허망이 접촉할 수 없는 근원적인 마음인 안심의 상태에 되돌아가 안주하는 실천법을 말한다.

#행입(行入)의 4행                                    
달마가 수행자로서 네 가지를 실천하라고 한 내용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4행은 구체적인 실천 형태를 말하지만, 우리네 삶과도 밀접하므로 전문을 보기로 한다. 

“보원행(報寃行)이란 무엇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하느니라. ‘내가 과거 무시이래로 수만 겁 동안에 수행을 하지 않고, 원망하고 증오하는 일을 많이 지었으며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죄를 짓지 않을지라도 이는 전세에 지은 악업으로 인해 과보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이치를 마음으로 받아들여 인욕한다면, 원망하고 하소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경전에 이르대 ‘고통을 만나도 근심하지 않는다. 근본을 알고 통달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치와 더불어 상응해 원망을 체달하고 도(道)를 증득할 수 있다.” 

보원행 내용은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굳이 수행만이 아닌 삶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살면서 어찌 꽃길만이 펼쳐지겠는가? 인생은 가시밭길이 더 많은 법이다. 특히 사람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제일 많다. 이 때마다 상대방을 원망하면, 그 원한과 고통은 배가 된다. 그러니 원망과 증오·번뇌로운 그 어떤 것이든 자신의 전생업보 때문이니 ‘빚 갚는다’고 여기고, 인내하라는 뜻이다. 〈금강경〉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경을 수지하고 독송할 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과거의 업장을 한꺼번에 소멸하는 계기이니, 더 열심히 독송하라.’ 

“수연행(隨緣行)이란 무엇인가. 중생은 자아가 없으며 인연의 업(業)에 따를 뿐이다. 고통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 모두 인연에 따라 받는 것이다. 만약 좋은 일이나 명예 등의 일을 얻으면 이는 과거세의 지은 선업으로 인해 금세에 받는 것이다. 이것도 인연이 다하면 없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어찌 기뻐할 것이 있겠는가. 좋고 나쁜 것도 다 인연에 따르며 마음에 증감(增減)이 없기 때문에 기쁜 일에도 동요하지 않고, 그윽히 도에 따라야 한다.”

명나라 말기 유학자인 육상객이 이런 말을 하였다. “초연한 마음가짐을 갖고, 사람을 대함에도 초연하며…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고, 실패하더라도 태연하라(自處超然 處人超然… 得意澹然 失意泰然.)” 살아가면서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나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힘든 역경이 있으면 이 또한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좋은 일이 생겨도 인연이 다하면 곧 사라질 것이니 너무 들뜨지 말라는 것이다. 사바세계의 삶이 어찌 내 뜻대로 되겠는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복되어 찾아오는 법이다. 이렇게 삶의 순역(順逆)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것도 불도의 실천이다.  

“무소구행(無所求行)이란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이 욕심 부리는 것을 구(求)라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참됨을 깨닫고, 이 진리로서 세속적인 것을 꺼리며 마음을 무위(無爲)에 두고, 몸을 흐름에 맡겨 움직인다. 공덕천과 흑암녀가 함께 다니며 서로 따른다. 삼계에 오래 머물러 있는데, 이곳은 마치 불난 집과 같다. 육신이라는 것이 다 고통인지라 누가 이곳에서 편안하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에 생각을 쉬고 구하지 말지니라. 경전에 이르대 ‘구함이 있으면 고통이요, 구함이 없으면 낙이다’라고 하였다. 구함이 없는 것이 바로 참된 도의 행(行)이다.”

〈유마경〉에서는 ‘법(法)을 구하는 사람은 일체법에 무언가 구하지 말라’고 하였고, 임제는 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무사(無事)라고 하였다. 이것이 무주(無住)요, 무심(無心)이다. 우리 일상의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다. 곧 삶에서 벌어지는 그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달마가 말하는 무소구행은 무엇이든 ‘추구하지 말라’가 아니라 지나친 집착을 삼가고 여여한 삶을 즐기라는 뜻이다.   

“칭법행(稱法行)이란 무엇인가. 자성이 청정하다는 이치를 법이라 하며, 이치라고 하는 것은 모든 형상이 공(空)이고, 번뇌와 집착도 없으며 피차(彼此)가 없는 것이다. 경전에 이르기를 ‘법(法)에는 중생이라는 것이 없다. 중생이라는 번뇌를 여읜 때문이다. 법에는 자아가 없다. 자아의 때(垢)를 여읜 연고니라.’ 이런 법을 의지하고, 법에 순응하는 것이다.” 

칭법행은 앞에서 말한 세 가지를 종합한다. 여기서는 두 가지가 담겨 있다. 첫째는 모든 중생이 본래 불성을 구족하고 있으므로 깨달아 있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 둘째는 공의 실천적인 측면에 입각해 공관(空觀)에 투철하여 6바라밀을 실천해야 한다. 〈금강경〉에도 똑같은 구절이 있는데,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이다. 이는 보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주상지계(無住相持戒)·무주상인욕(無住相忍辱) 등 6가지 바라밀을 주(住, 집착이나 관념의 의미)하는 마음 없이 실천하라는 뜻이다. 즉 집착심 없는 공의 실천을 제시한다.    

이와 같이 4행을 통해서 본 보리달마의 선사상을 종합해보면, 보원행과 수연행은 일상생활 속에서 인욕 수행을 말하고, 무소구행과 칭법행은 무집착의 실천을 가리킨다. 4행은 고요한 곳에서만이 아닌 일상적인 삶속에서 실천하는 방법 제시라고 볼 수 있다.

달마의 法은 혜가에게 
앞에서 달마의 제자들에 대해 언급했었다. 달마의 법을 받은 2조 혜가(慧可, 487~593)를 만나 보자. 혜가는 달마를 만나기 이전부터 출가자 신분으로서, 꽤 늦은 나이에 출가했다. 혜가는 희(姬) 씨요, 향산사(香山寺) 보정 스님에게 출가했다. 40세 무렵, 선정 속에서 ‘큰 선지식이 있거늘 여기에만 있느냐’는 소리를 관(觀)하고, 자신의 이름을 ‘신광(神光)’이라 고친 뒤, 달마를 찾아 귀의했다. 당시 인도에서 온 외국 성인을 스승으로 정하고, 법을 구하고자 했으니 혜가의 안목 또한 높이살 만하다. 눈발이 날리는 속에서 혜가가 스승 달마에게 예를 표하고, 달마에게 물었다.

“스님, 저의 마음이 너무 편안치 못합니다. 스승님께서 편안케 해 주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그러면 너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리라.”
“마음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覓心了不可得).”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해 마쳤느니라.”
-〈경덕전등록〉 中   

위의 선문답을 ‘안심(安心)법문’이라고 한다. 규봉 종밀(780~841)도 〈선원제전집도서〉에서 달마를 선종의 개조(開祖)라고 보았는데,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음이란 곧 안심을 말하는데, 달마의 안심은 곧 능가종(楞伽宗, 胡適(1891∼1962)박사가 붙인 종명)의 근간이요, 멀리로는 중국 선종에 흐르는 핵심적인 물줄기다.

달마의 〈오성론(悟性論)〉에서는 “탐진치 3독이 곧 불성으로서 3독 이외에 다시 별도로 불성이 없다”고 하였다. 또 〈유마경〉에서는 “번뇌와 악을 지닌 인간의 현실이 곧 해탈을 달성하고 성불하는 기초가 된다”고 하였다. 고원이 아닌 진흙탕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번뇌 자리에 불성이 자리 잡고 있다. 번뇌를 끊고 나서 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을 얻을 필요도 없는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열반을 찾을 필요도 보리를 구할 필요조차 없는 근본 마음자리가 안심이다.    

그는 달마에게서 ‘혜가’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는 스승 대신 마을에 내려가 걸식, 탁발을 해다가 스승을 섬겼다. 어느 날 혜가가 달마에게 물었다.

“스님, 어떻게 공부해야 도를 얻을 수 있습니까?”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리는 마음이 없으며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만 도에 들어가느니라.”(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퓰壁 可以入道)
-〈속고승전〉 ‘습선편’

밖의 인연을 끊고, 안의 마음도 쉬어야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 예전에는 예사로 보았는데, 절실히 공감된다. 혜가는 6년간 스승을 섬기며 달마에게 가르침을 받고 법을 전해 받았다. 달마가 입적하자, 그의 유골을 강기슭에 묻었다. 혜가는 업도(?都, 현 하북성 임장현과 하남성 안양시 일대)에서 선법을 진작하며, 교화에 주력하였다. 그런데 당시 주변 사람들은 혜가의 선법을 마어(魔語)라고 하며, 그를 비방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을 전한 도의(道義) 국사(?~825)와 유사하다. 조계종의 종조인 도의국사가 당나라에서 서당 지장(西堂智藏, 738~817)으로부터 법을 받고 돌아와 선을 말하자, 사람들이 ‘마어’라며 비난하였다. 그래서 선각자는 외로운 법!   

달마에게 법을 받은 2조 혜가의 선사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구절이 있다. 향거사(向居士)가 자기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뒤 혜가에게 해답을 구하였다. 혜가는 “무명(無明)과 지혜(智慧)는 서로 다르지 않으니 만법이 모두 이와 같다(無明智慧等無異 知萬法卽皆如)”고 대답하였다.

즉 ‘무명과 지혜, 번뇌와 보리는 같은 것으로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무명과 지혜, 중생과 부처를 구별하는 것은 두 가지 견해에 집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스승 달마의 선사상과 같은 것이요, 이 사상이 후대 조사선의 선사상이다. 호(好)·오(惡), 명(明)·암(暗), 번뇌·보리, 생사·열반, 옳고 그름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곧 하나인 자리이다. 또한 안심 자리가 불안한 마음자리요, 무명의 자리가 바로 지혜인 자리이며 중생이 곧 부처이다. 혜가는 달마의 가르침(安心)을 계승해 이견(二見)에 집착하지 말 것을 설하였다.

혜가에겐 여러 제자가 있었는데, 법은 승찬(?~606)에게 전해졌다. 혜가는 법을 승찬에게 전하고, 업도에서 천민들과 어울리며 막행막식하였다. 이런 혜가를 이해하지 못한 대강사 변화법사가 재상에게 밀고를 함으로써 혜가는 처형당해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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