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길상사 일요특강...문진건 동국대 불교대학원 교수

주제 : 건강한 가족과 자기분화

서울 길상사(주지 덕일)는 1월 27일 서울 성북구 길상사서 문진건 교수를 강사로 초청해 일요특강을 진행했다. 문 교수는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을 주제로 “정서적으로 융합된 가족은 그만큼 불안정하기에 마음의 홀로서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있는 그대로 나와 상대를 바라본 뒤 서로 사랑해야 비로소 건강한 가족을 이룬다”고 강의했다.

문진건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학문연구소서 동서양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이후 한국에서 상담심리·불교심리학을 강의하며 동양의 정신문화와 서양심리학의 융합을 연구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인공지능 시대 심리상담과 불교적 대안’ 등이 있다.

정서적 밀착 지나치면
구성원 간 단절 야기해
상대방 감정과 거리 둬
‘마음 홀로서기’ 해보자


오늘 강의 주제는 ‘건강한 가족’입니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최초의 불교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어구가 반복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 부분을 ‘타인과의 관계를 멀리하라’는 뜻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대한 관계망 속에서 무수한 사람과 연결돼 있는 현대인의 생활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해석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회적 존재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멀리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이와 떨어져 홀로 가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처님의 말씀이 전한 뜻과는 어긋납니다. 
 

과한 의존으로 번진 불안
가족관계를 연구하고 가족문제를 치료하는 가족 상담에서도 이와 같은 주장을 합니다. 가족 상담에서는 가족 내 일어나는 정서적 괴로움의 원인을 잘 알아차린 뒤 합리적으로 다룬다면 건강한 가족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설 줄 아는 능력인 ‘자기분화’를 강조합니다.

가족은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무수한 말과 행동을 주고받고 감정을 교환합니다. 그런데 그만큼 상처도 받게 됩니다. 

가족관계에 관해 일생을 탐구했던 머레이 보웬(1913~1990)은 건강한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홀로서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보웬은 홀로서기를 ‘자기분화’라고 이름 지었는데, 자신 밖에서 생기는 정서적 압력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번뇌에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가족 사이에 건강한 방식으로 사랑하려면 자기분화, 즉 마음의 홀로서기를 우선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 가득한 가족의 모습이 무엇인지 물으면, 사람들은 흔히 희로애락을 공유하며 서로 의지하는 가족을 떠올립니다. 상대방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울고 웃고 상대에게 곁을 내줌으로써 의지하게 하는 것을요.

그런데 보웬은 이런 가족을 정서적으로 융합이 된, 밀착된 가족으로 보고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간주합니다. 그에 따르면 감정적 융합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부모 또는 자녀)의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상대방의 감정에 자동적으로 반응해 의존적인 행동이 나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분노가 어머니에게 전해지고, 자녀에게까지 순식간에 퍼져 가족 전체의 불안이 커지는 경우, 혹은 어머니의 슬픔이 아버지와 자녀에게 전달돼 온 가족이 침울해지고 온 가족이 슬픔에 빠져 있는 경우가 그런 예입니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서적 융합이 강한 가족은 그만큼 불안정합니다.

보웬은 삶에서 기쁨과 슬픔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밀착하려는 욕구와 홀로서려는 욕구를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령 한 사람이 가까이 가고자 할 때, 다른 한 사람은 멀어지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게 됩니다. 보웬에 의하면, 본능적인 두 가지 욕구를 잘 다루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홀로서기(자기분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불교에서 너무 끌리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는 중도를 행하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사실 너무 밀착된 가족 내에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투사하는 일이 더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밀착된 가족에서는 남편 또는 아내가 배우자에게 자신의 욕구를 강요하는 일이 흔히 일어납니다. 배우자의 괴로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상태를 배우자에게 투사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은 물론이고 본인도 더욱 불안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가족의 불안이 계속 지속되면, 부부는 오히려 거리감을 느끼게 되고 부부 사이는 멀어질 수 있습니다. 남편(아내)에게서 거리감을 느낀 배우자는 결국 불안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자녀에게 강도 높은 애착을 가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가족 모두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각자 홀로서기를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최근 인기 있는 TV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면, 자신의 불안을 딸에게 투사해 딸의 교육에 비정상적으로 집착을 보이는 어머니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극중 어머니는 남편과 소원한 관계와 시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소외감과 불안을 그대로 딸에게 투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상당히 불안하고 나약하니 끝까지 잘 보살펴줘야 한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자신의 불안이 딸에게 투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모녀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상당히 끈끈해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이 분화되지 못해 과잉관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딸이 어머니와 단절되고 싶은 욕구를 키우는 위험을 부르게 됩니다.

반면 건강한 가족은 문제가 생기면 일단 자신의 감정과 상대방의 감정을 구별할 줄 압니다.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난 불안한 마음이 누구 것인지 구별할 줄 안다는 말이죠. 그리고 해당 감정으로부터 떨어져 홀로서기(자기분화)를 한 다음, 가족 내 불안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합니다. 
 

번뇌와 나 사이 거리두기
우리는 번뇌와 본래의 마음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데, 흔히들 감정에 휩싸이면 그 능력을 잃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혼동하고, 자신의 감정이 자신의 생각인 줄 알게 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어리석음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방법으로 불교가 제시하는 가르침과 보웬의 이론은 다르지 않습니다. 감정과 생각을 구분할 줄 알고 타인과 자신의 감정을 분리시킬 줄 아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제 강의를 듣고 있지만 마음은 집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집에 걱정거리가 있다면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이 지금하고 있는 생각을 감정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지금 절에 왔다’ ‘강의를 듣고 있다’고 생각은 일어나지만 자신의 감정이 편한지, 불편한지, 기쁜지, 즐거운 지는 잘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건드리면 마음 상태에 따라 반응하게 됩니다. 감정 상태는 알아차리지 않은 채 그때 기분에 따라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괜찮다고 말할 뿐입니다. 내 감정 상태를 혼자서 그대로 볼 줄 아는 것, 다른 사람과 연관되지 않은 그 상태로 보는 것이 바로 홀로서기예요.

다시 말해 내 가족이 기뻐서 스스로가 기쁜 게 아니고, 자신 혼자 가만히 있을 때 ‘나’의 감정이 어떤지 볼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속을 떠나라는 이야기가 아닌, 내 마음에서 홀로서기를 하라는 것이죠. 불교는 더 나아가 정서적 번뇌의 원인에서 마음을 떼어놓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고 말입니다.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이 순간 마음에 생긴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남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구분하고,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생각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든지 홀로서기를 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능력은 끊임없는 연습 즉, 수행을 통해 길러집니다.

마음의 홀로서기를 위해 두 번째로 할 일은 주변의 영향을 주는 것들을 차단해보는 일입니다. 먼저 가족에 대한 걱정부터입니다. 가족들이 나에게 주는 영향력을 잠시 차단해보세요. 물리적으로 가족들에게 떨어져 있으라는 게 아닙니다. 가족들과 같이 있어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겁니다. 인도 대승불교의 뛰어난 수행자이자 학자였던 산티데바 스님은 사랑을 무척 강조했습니다. 〈입보리행론〉에서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우리에게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시간에 투사를 통해 상대방을 알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의 감정에 투사하게 되면 진정으로 상대방의 모습이 어떤지 보지 못하게 됩니다. 척 보면 아는 법은 없어요. 다른 말로 하면 내 마음이 투사되고 있는 거예요. 척 보니 아는 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수행을 통해 마음을 투사하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는 말은 삶에 대한 냉정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감정과 사고를 분리함으로써 번뇌에 휩쓸리지 않는 합리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뜻이죠. 합리적인 마음으로 홀로서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비로소 건강하게 사랑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이 걱정이 많다고 여기는 것은, 내가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은 내 마음 속 걱정이 많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의 걱정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지 않은 시간 속에서 진정으로 가족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홀로서기와 사랑하기를 양 바퀴로 삼아 가족이라는 수레를 행복한 삶의 원천으로 이끌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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