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 벗어난 소박한 ‘美’ 보라
분별 벗어난 소박한 ‘美’ 보라
  • 김원숙 교수
  • 승인 2019.01.30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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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 선사와 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고흐의 소박한 삶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고흐는 이 작품을 자신이 그린 최고의 작품이라 평했다.

여기 그림 한 점이 있다. 흐릿한 기름 램프 불빛 아래서 저녁 식사를 하는 일가족. 누구의 손 하나가 잘못 놓여도 삐걱 소리를 낼 듯 소박한 나무 식탁에서 농부의 가족들이 둘러 앉아 있는 늦은 저녁이다. 큰 접시에 놓여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 따뜻한 차 한 잔이 그들 식사의 전부이다. 할아버지는 차를 따르고 있는 할머니에게 “할멈, 이거 맛있네 그려” 이런 표정으로 잔을 들어 보이지만, 할머니는 “영감탱이, 늘 먹는 걸 가지고 무신” 이러는 듯 차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곁에 앉은 젊은 여인은 남자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아무 말이 없다. 화면으로부터 등을 돌린 이 집의 어린 딸은 말없이 감자를 먹고 있다.

소박함 빛나는 ‘감자먹는 사람들’
화려함 보다 내면 아름다움 탐구
조주 선사의 분별여읨과 맞닿아

 고흐는 20대 초반, 네덜란드 뉘넨이라는 한 작은 마을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 오늘날 뉘넨은 ‘반 고흐 마을’이라 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그는 짧은 생애에 팔지 못한 그림들을 많이 남겼는데, 그 중에서 이 ‘감자 먹는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하는 가난한 농가의 소박한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이 그림 역시 고흐의 다른 많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세상엔 많은 아름답고 화려한 것들이 있으며, 세속의 눈으로 볼 때 값지고 귀한 것이 많다. 그러나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야말로 나에게는 최고의 그림”이라고 썼다.

브뤼셀에서 미술학교 수업시기를 보낸 후, 그는 파리를 거쳐 아를로 옮겨가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남프랑스의 눈부신 햇빛 아래서 그는 밝고 화사한 색채의 그림들을 많이 그렸고, 생 레미 정신병원 시절 이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짧은 생을 거둔다. 반 고흐는 자신의 여러 작품 중, 유독 어둡고 칙칙한 색채와 투박한 필치의 이 그림에 왜 그토록 애정을 가졌을까?

조주 선사께서 남기신 글 한 편을 읽어본다.

그래도 향을 사르며 예배하는 사람 있네

다섯 할멈 가운데 세 명은 혹이 달리고

두 사람의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

참깨와 차를 공양 올리다니 진귀한 일이네

금강역사여 팔뚝에 너무 힘을 주지 말게나

내년에 누에농사 보리농사 잘되면

나도 나한전에 공양 좀 올리려 하네.

晡時申 也有燒香禮拜人

五箇老婆三箇癭 一双面子黑遵遵

油麻茶 實是珍 金剛不用苦張筋

願我來年蠶麥熟 羅喉羅兒與一文

- 조주 선사의 12시가 중 신시

조주 선사의 12시가는 닭이 우는 축시부터 한밤중의 자시까지 어느 가을날의 하루를 노래한 열두 편의 모음으로, 신시는 12시가 중 8번째에 해당하는 시이다. 해거름 불당을 찾아와 예불 드리는 이는 온통 주름투성이 얼굴에 혹이 달린 할머니들이다. 그들은 진귀한 유마차를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고 있다. 금강역사는 5백 야차신(夜叉神)을 거느리고 천불(千佛)의 법을 수호하는 수문신장이다. 해질 무렵, 어둑해지는 일주문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을 법한 금강역사의 그 형세가, 고된 하루일과를 마치고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리는 늙고 주름진 얼굴의 노보살들의 소박한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조주선사는 금강역사에게 ‘늦은 오후 보살님들이 불전에 진귀한 차를 올리고 예불 드리니 얼마나 갸륵한가. 역사께서도 힘을 좀 풀고 쉬시게나’라고 말을 건넨다. 무릇 중생이 부처님 앞에서는 신분의 귀하고 천함이 없으며 부귀하고 가난함으로 구별되지 않기에 산문을 들어와 불공을 드리는 데는 왕후장상이 따로 없으며 세상의 신분이 미미한 사람 또한 따로 없다. 선사께서도 다만 그 모습에 일언일구를 더하기 보다는 누에치기와 보리농사가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육조 혜능 선사는 “만유제법(萬有諸法)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므로 분별심이 아닌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야 만유의 본체를 여실히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부처의 눈은 불전에 향을 올리고 엎드려 절하는 보기 흉한 혹 단 늙은이의 마음을 볼 뿐이다. 부처는 세속적인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별을 넘어, 일체의 분별을 여읜 진여를 바라보는 자다.

단촐한 빈센트와 테오의 묘지.

하루는 조주 선사께서 절간 마당을 쓸고 계셨다. 스님 한 분이 “대선지식께서 어찌 손수 마당을 쓸고 계시나이까?”하고 묻자 선사는 “티끌은 밖에서 들어오느니라”하고 대답하셨다. 뜻을 알 수 없는 선사의 대답에 그 스님은 재차 “마당은 깨끗한데 어찌 티끌이 있겠사옵니까?”하고 물었다. 조주 선사께서는 “여기 티끌이 또 하나 들어와 있구나”하고 대답하신 후, 묵묵한 비질을 계속하셨다. 마당을 쓰는 일에 선지식이 어디 있으며, 천한 머슴이 어디 있겠는가? 선사는 꾸짖거나 하나하나 설명하지는 않으나, 마당 쓰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그 분별심이야말로 티끌이라 일러 주신다.

인상주의, 후기인상파로부터 시작되는 서양 미술사의 모더니즘은 이전 시대의 미술 사조와 달리, 빛이 사람의 눈에 닿아 일으키는 감각자극과 내면의 주관적 감정의 표현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전의 사조가 종교적, 정치적, 역사적 주제로 서사적 이야기를 담아왔다면, 고전 미술과 달리 모더니즘에 이르러서는 회화의 주제 선택이 자유롭게 해방되었다. 이제 회화는 화사한 빛으로 충만한 색채와 그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차를 마실 때 왜 차를 마셔야 하는지, 어디서 왔기에 차를 마셔야 하는지, 이 찻잎의 종류는 무엇인지 굳이 이유를 따지지 않고 그저 잔에 담긴 차의 향과 색 그리고 차를 내 온 이의 마음을 음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그림을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 종교, 정치 또는 사회의 온갖 지식 등을 통해, 이유나 논리를 찾아야만 그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빛과 어두움 그리고 그것이 전달하는 인상만을 통해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예술 감상 태도가 바로 인상주의의 끽다거(喫茶去)가 아닐까 여긴다.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에두아르 마네, 오귀스트 르느와르, 에드가 드가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화사하고 아름다운 색채와 필치를 보여주는 반면,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거칠고 투박한 붓질로 갈색과 회색, 검은 색조로 그려졌다. 이 그림은 당시 호평받던 조화로운 색조나 완벽한 구도, 이상적인 공간과 인체묘사를 중요시했던 고전주의 미술양식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주제적 측면에서도 고흐의 그림에서는 신화 속 아름다운 신도, 역사화의 용감한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다. 고흐는 그리 선호되지 않던 농민들의 초라한 일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기존 화단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았다. 절친했던 동료화가 라파르트는 이 그림이 인체의 비례가 맞지 않고 그림 전체가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비판했는데, 이것을 계기로 고흐는 그와 절교한다. 후대에는 고흐와 함께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며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폴 세잔마저 당시에는 바로 곁에서 고흐가 듣고 있는 줄 모르고 ‘미친 사람이 그렸거나, 나는 전혀 인정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그림’이라 혹평하다 나중에 그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가게를 떠났다는 일화도 있다. 이처럼 이 그림은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가까운 동료나 유사한 미술사조에 속하는 화가들이 보기에도 어떤 가치를 부여하기엔 턱없이 형편없는 그림이었다.

가난한 화가가 생계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그림을 그려야 했음에도, 그가 이와 같은 주제의 그림들을 그렸다는 사실은 바로 세상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화폭에 담기 위함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성공한 화상이자 유일한 조력자였던 동생 테오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외양간 그림이 퇴비 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해로울 일은 없다. 외양간은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농촌의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 들판의 잘 익은 밀이나 감자 그리고 퇴비와 비료의 향기가 풍긴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라고 썼다.

고흐에게 미술은 그의 삶 자체였다. 고흐의 영혼은 노란 밀밭 위 날갯짓하는 까마귀와 같았다. 세상의 관습과 편견,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기성의 관념, 애착 그리고 모든 기쁨과 슬픔을 내려놓은 채, 서른 일곱 해 삶을 거두고 어두운 푸른 하늘을 날아올랐다. 찰나의 삶, 고뇌와 번민 그리고 작은 깨달음을 담은 여러 통의 긴 편지 그리고 다수의 그림들…. 그는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과 사물을 바라보았으며, 이런 내적인 정서를 독특한 그 자신만의 색채와 필치로 구사하였다.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을 사랑하는 최상의 방법은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고 썼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세상의 고통 받고 슬픈 모든 영혼을 신에게 인도하기를 원했다. 그에게 구원은 일체의 고통 너머 밝은 깨달음의 세계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고흐 작품.

외양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미와 추를 구분하는 고정 관념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속박하여 스스로를 감옥으로 이끌고, 내면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한다. 고흐 이후 이제 현대예술은 외부 대상을 닮게 그리려는 재현(representation) 대신 마음의 문제를 표현하는 것이 되었다. 비록 반 고흐가 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가졌을지라도 불교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접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분별심을 내려놓은 곳에서 비로소 얻어지는 깨달음처럼, 반 고흐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소박한 작품 앞에서 참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난다. 조주 선사의 공양도,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도 분별을 벗어나 ‘깊게 여며진 아름다움’을 바라보라 경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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