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질문이란 무엇인가

지난해 한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란 칼럼이 화제였다. 그가 던지는 근원의 질문에 사람들은 신선하고 당혹스러운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

명절에 가족친지가 모인 자리에서 ‘취직은 했느냐?’ ‘결혼은 안 하냐?’ ‘아이는 언제 낳느냐?’ 이런 질문이 날아올 때, ‘직업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 ‘후손이란 무엇인가?’ 라고 되물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작은 아버지나 고모가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 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좋고 나쁜 질문 차이 ‘관점’
상식·편견 깨는 것 ‘불교’
새로운 답 위한 정진 필요

되묻는 이런 질문은,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을 밀쳐내고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 그 교수의 선문답과 같은 유머는 명절을 앞두고 가족과 친지와의 상봉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젊은이들에게 청량한 깨달음과 용기를 주었다.

좋은 질문은 힘이 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자를 깨워 물어보라.

“당신이 누구야?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30년 넘게 내 옆에서 자고 있는 거지?”

남자는 짜증을 내며 “당신 치매 왔냐?”라며 돌아 눕겠지만 잠이 다 깨고 나면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정말 아침마다 이 침대에서 눈을 뜨는 나는 누구지? 저 여자가 낳은 아이들을 위해 평생 일하고 돈을 갖다 바치는 나란 존재는 뭐냐고?”

그 시간에 저 여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저 남자와 아이들에게 하루 세 끼 밥을 차려주고 빨래도 해주고 방 청소도 해주는 나는 누구지? 도대체 가족이란 게 뭐야?”

코치로서 바라보면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질문하는 사람과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 세 종류라고 해야겠다.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과 나쁜 질문을 하는 사람. ‘취직은 언제 하냐?’ ‘왜 아이는 낳지 않냐?’와 같은 질문은 답을 구하기보다 다그치고 몰아세우는 참견일 뿐이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할까? 답이 있는 질문도 있고 답이 없는 질문도 있다. 관점을 새롭게 하는 질문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사진도 찍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듯이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깨달음이 생긴다.

코칭에서 관점을 바꾸는 좋은 질문은 가장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다. 코치는 ‘왜?’ 라고 잘잘못을 따져서 묻지 않고 ‘무엇을?’‘어떻게?’로 다르게 생각하고 새로운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질문을 던진다.

묻지 않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명주는 4학년이 되었을 때 대학을 그만 다니겠다고 선언했다. 기겁을 한 부모는 몇날며칠을 설득하고 애원했지만 명주는 고집을 접지 않았다.

지방 소도시에서 수재소리를 들으며 자라난 명주에게 거는 부모의 기대는 컸다. 그 기대에 맞게 명주는 별다른 말썽 없이 서울의 유명대학에 입학했다. 부모는 전문직 임용고시를 준비하기를 권유했고, 명주가 착실하게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

명주는 대학을 그만두려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 어머니 설자여사는 코치를 찾아와서 몇 달째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딸아이를 만나서 왜 그런지 물어봐달라고 하였다.

이런 사례는 난감하다. 코칭은 본인이 원할 때 가능하다. 명주는 예상대로 코치를 만나기를 거부했다.

코치는 명주보다 부모가 먼저 코칭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재안했다. 명주가 대화를 단절하는 것은 부모의 교육방식을 이제는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명주의 아버지는 코칭이 필요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조금 소극적이긴 했지만 해보고 싶다고 했다.

설자여사는 첫 세션 60분 간 명주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부모 말을 듣는 딸이었는지를 말하면서 지금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눈물을 섞어 하소연했다. 그녀는 딸의 대화거부 이후 우울감이 극심하다고 했는데 신경정신과를 가느니 코칭을 받기로 한 것 같았다. 코치는 조용히 귀 기울이며 가끔 그녀가 하는 말을 되짚어 확인만 했다.

코칭의 시작은 경청이다. 코치는 피코치(코칭 고객, 코치이coachee 라고도 한다)에게 기존의 생각을 의심하고 성찰을 시작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 피코치의 스토리와 심리상태를 집중해서 듣는다.

누구나 자신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라포(rapport, 소통이 가능한 친밀감과 신뢰)가 형성된다.

두 번째 세션에서 그녀는 코치의 질문에 관심을 가졌다. 코치와 그녀 사이의 질문과 대답은 이랬다.

코치 : 어머니는 딸에게 무엇을 기대했나요?

설자여사 : 제가 바라는 게 뭐가 있겠어요? 명주가 행복하기만 하면 됩니다.

코치 : 딸의 행복을 위해서 어머니는 무엇을 하신 건가요?

설자여사 : 어려서부터 부족한 것 없이 키웠고 소문난 유치원과 사립학교에 보내려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고등학교 들어갈 때는 명주 대입 준비하느라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어요.

코치 : 명주는 어머니에게 어떤 딸이었나요?

설자여사 : 자랑스럽고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 딸이었죠.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시키는 건 다 열심히 했어요. 공부 잘하는 딸 두었다고 친구들과 친척들이 다들 부러워했습니다.

코치 : 따님을 많이 자랑스러워 하셨군요. 제가 부모라도 자랑스럽고 행복할 것 같아요. 딸의 행복을 위해서 뭐든지 했다고 하셨는데, 명주가 행복한 건 어떻게 아셨나요?

설자여사 : 명주가 행복한 거요? 주변 사람들이 다 칭찬하고 부러워하는데 당연히 행복했겠죠. 명주는 한 번도 불평하거나 엇나가지 않았어요.

코치 : 그러셨군요.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고 주변에서 다 칭찬하고 부러워하니까 명주도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셨군요. 명주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본 적은 있으신가요?

설자여사 : … 그렇게 물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 질문이 필요한가요? 뭐든지 다 해주고 저를 위해 살았는데.

코치 :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도 많지요. 따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을 한 번 생각해보실래요?

명주 어머니는 딸의 행복을 바라면서 딸에게 언제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묻지 않았다. 딸을 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곧 딸의 행복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명주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질문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이러니 네 마음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 나의 추측과 예단은 상대방에게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된다. 어머니는 그 후 이메일로 명주에게 지금껏 하지 않은 질문을 했고 아직 답을 받지 못했지만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그 다음 학기에 명주는 휴학을 했다. 그 시간은 명주가 부모의 행복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한 질문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위한 질문, 상식을 깨는 화두

선불교의 화두(話頭)는 상식과 편견을 깨는 질문이다. 딜레마와 역설로 가득 차 있는 물음이다. 그래서 화두의 의미를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선문답을 현실과 동떨어진 궤변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상식으로는 풀 수 없는 화두를 왜 만들었을까? 그건 상식을 넘어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무문 스님의 화두 모음집 〈무문관(無門關)〉은 문이 없는 관문이라는 뜻이다. 문이 없는 문이라니, 제목부터가 딜레마다.

여기서 문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의 문이다. 남들이 지나간 문을 찾을 생각이라면 무문관은 통과할 수 없다. 상식에 따라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답이 없는 딜레마겠지만 자신만의 삶을 찾는 사람에게는 쉽게 풀리는 것이 화두이다. 누구나 지나가는 문이 아니라 자신만의 문을 찾아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무문관의 화두를 붙든다. (강신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정답은 사람의 수만큼 많다. 자신의 답을 구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나는 대학에 가서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가? 결혼을 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는가? 돈을 벌어 나는 어디에 쓸까? 이 일은 나에게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나?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본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질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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