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출가제, 중앙·현장 ‘온도차’
출가진흥의 한 방편으로 지난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조계종 은퇴출가제도가 첫 사미·사미니계 수계자 배출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은퇴출가를 관장하는 각 교구본사들은 제도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중앙과 현장의 온도차가 뚜렷한 것으로 조사됐다.
은퇴출가 행자 현재 17명
특수출가임에도 적지 않아
첫 수계자 배출도 다가와
현장인 교구본사는 부정적
습의·은사 설정에 어려움
제도 보완 필요성 대두돼
우선 조계종 교육원에 따르면 지난해 은퇴출가를 통해 출가, 현재 행자생활을 하는 이들은 총 17명이다. 오는 2월 23일부터 3월 6일까지 진행되는 제56기 사미·사미니계 수계교육에는 이 중 10명의 행자들이 은퇴출가 시행 최초로 계를 받을 예정이다. 이 같은 숫자는 최근 일반출가자 인원이 한 해 150명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은퇴출가자 비중이 적지 않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이 많은 후배 부담”
하지만 정작 은퇴출가 행자등록과 교육을 담당하는 교구본사들은 은퇴출가에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몇 명 되지 않는 나이 많은 행자들을 관리하기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A교구본사 은퇴출가를 담당하는 한 스님은 “은퇴출가자는 승려생활의 기초인 습의에 어려움이 따르고 그 숫자도 적다”며 “나이 많은 후배가 편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이제는 거의 모든 본사가 은퇴출가자를 받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B교구본사 스님도 “제반사항이 구축되지 않은 채 은퇴출가자를 받아들이긴 어렵다. 은사 스님을 모시기에도, 다른 행자와의 대중생활에도 걸리는 문제가 많다”고 고충을 호소한 뒤 “교구본사는 중앙에서 만든 출가제도를 떠안은 셈이다. 이로 인한 부담은 본사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은퇴출가는 신청서와 증빙서류를 갖춰 교구본사에 신청하고, 교구본사는 출가 가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본지 취재결과 일부 교구본사들은 내부적으로 은퇴출가를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은퇴출가에 대한 교구본사의 부정적 여론이 제도에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풀이된다.
C교구본사 관계자는 “솔직히 은퇴출가자도 몇 명 없지만 무엇보다 사중에서 불편함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출가 안내는 하되 우리 본사에서 은퇴출가자를 받지는 않는다”고 내부사정을 설명했다.
이처럼 많은 교구본사들이 나이 많은 행자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고 있지만 교육원 통계에 따르면 은퇴출가 문의는 여전히 적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교육원에 접수된 출가문의 44건 중 은퇴출가 관련 문의는 10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도 보완 필요성도
이와 더불어 현재 은퇴출가를 시행 중인 교구본사에서는 중도 퇴사율을 낮추기 위한 제도의 보완을 당부하기도 했다. 교육원에 따르면 지난해 26명이 은퇴출가 했으며, 이 중 9명이 중도 퇴사했다. 표본은 적지만 일반출가자 중도 퇴사율 26~27%보다 다소 높은 수치다.
E교구본사 교무국장 스님은 “지난해 다른 본사에서 출가하지 못해 찾아온 은퇴출가자가 두 달 정도 행자생활을 하다가 돌아갔다. 호적정리를 위해 가족들을 찾아갔다가 해결하지 못한 채 속세로 돌아간 것”이라며 “일반출가자는 출가 6개월 이전에 호적을 정리해야 하지만 은퇴출가자는 행자생활 중에 해도 된다. 다시 가족을 만나다보면 굳은 의지가 흔들릴 수 있어 미리 정리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F교구본사 관계자는 “은퇴출가는 일반출가에 비해 행자·사미기간이 더 길다. 65세에 출가하면 최소 71세가 돼야 구족계를 받을 수 있는 셈”이라며 “은퇴 이후 사판보다 이판에 집중해 수행생활을 장려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법계와 선거권 등이 제한돼 관심이 적을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에 따라 은퇴출가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현장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종단차원의 논의 절차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래 전부터 ‘회향출가’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는 “은퇴출가는 특수출가이기 때문에 여생을 사찰에서 회향하고, 봉사하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스님을 신분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구족계를 제외한 별도의 수계규정을 두고, 비승비속과 같은 유연한 출가제도처럼 운영해야 본질을 해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